2018.03.26
내가 크루즈승무원이라는 세상 생소하고도 낯선 직업을 용기를 가지고 도전 할수있었던 이유. 어쩌면, 나에게 ‘배’라는 공간이 그닥 낯설지만은 않아서.....
내가 이 곳에서 버티고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처음에 이 직업을 선택할때 기대했던 ‘세계 여행하면서 돈벌기’가 아니라, ‘엄빠의 마음을 느끼고 경험하기’가 오히려 주된 이유가 되었다. 세계 여행하면서 돈버는건 딱히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거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더 중요한 삶의 가치들이 많다는걸 깨달았고, 그것들을 배워가는 중이다.
이 곳의 배 생활을 통해, 표현 할수없을 만큼 엄빠의 삶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약 16년전. 나오미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2년간 우리 가족은 배에서 살았다. 그 당시에는 그 배가 엄청 커 보였는데, 간만에 사진 찾아보고 크루즈랑 비교해보니 완전 통통배다...ㅠㅠ
이 배는 아빠의 꿈이였다. 아프리카 곳곳을 다니며 무상 수술 및 치료를 현지인들에게 제공하고, 그들의 생활에 필요를 채워주는 따뜻한 의료선교 배였다. 어쩌면 이 배가 정말이야말로 세상의 빛과 소금인, 더 ‘큰’ 배였구나 싶다.
매순간, 지금 나의 배 생활을 자꾸 그 당시 엄빠의 배 생활은 어땠을까 대입해서 생각하게 된다. 지금 내가 생활하고 있는 크루즈는 10배 이상은 크고, 럭셔리하고, 월급주고, 싱글이여도 1인실이고, 관광지만 돌고, 승무원들에게 주어지는 해택도 꽤 된다. 엄빠가 탔던 배는 작고, 낡았고, 월급은 무슨 오히려 선교 헌금을 내면서 탔고, 아프리카 오지만 골라 다니고 (물품 채우러 6개월에 한번씩 유럽 들린거 빼고), 우리는 가족 단위여서 가족끼리 쓸수있어서 다행이였지만, 싱글들은 최대 네명씩 한 캐빈에서 지냈단다.
제일 존경스러운 부분은, 초등학교 1학년인 나 그리고 유치원생 동생을 키우면서 배 생활을 했다는 것. 나는 여기서 내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엄빠는 더 어려운 곳에서 가정을 지켰다. 아니, 지켜낸 그 이상이다. 내 인생 만 23년을 돌아봤을때, 그 당시 배 생활이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곳에 와있기에 엄빠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조금은 더 깊이 느낄 수 있고, 공감대가 생김으로 엄빠를 더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고맙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너무 고맙다.
여전히 크루즈 생활은 쉽지 않고 매일 하선을 꿈꾸지만, 이런 깨달음을 얻은거 만으로 벅차도록 감사하고 또 감사하기에 크루즈 승무원을 선택한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사소한 배용어 조차 이해해주는 엄빠.
어느 승무원 엄빠가 보딩 겡위이 드릴 머스터스테이션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