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오미 Jan 26. 2021

크루즈승무원? 크루즈 간호사?

크루즈에 간호사도 근무한다고? 크루즈에도 병원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아무래도 내 기준에서 나보다 멋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올려다보게 된다. 물론 안 좋게 생각하면 '끝없는 욕심'으로 보일 수 있지만, 좋게 생각하면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거 같아서 나름 괜찮은 인간의 본능적인 특징인 거 같다. 내가 크루즈 간호사를 해야겠다는 결심도 이런 이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크루즈 간호사라는 직업이 크루즈 GRO(Guest Relations Officer)인 내 기준에서 멋있어 보였고, 엄청나게 능력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눈에 그들이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던 계기는 예전에 언급했듯이, 감사하게도 내가 '다양한 언어'라는 장점을 가진 덕분에 우리 부서의 다른 동료들에 비해 Medical Team(크루즈  병원)으로 내려갈 일이  많아서부터 시작됐다. 여러  내려가서 통역했던 작고 작은 기회들이 모여, 크루즈 내의 간호사와 의사 승무원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눌  있게 되었다. 그렇게 대화를  번씩  번씩 나누다 보니,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의료인의 길을 선택했고 지금은 어떤 마음과 책임감을 가지고 이곳에서 생활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들이 점점 멋있고 대단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짝사랑 중인 여고생 마냥 그들을  주시해서 관찰을 하게 되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싶어 낯가림을 무릅쓰고 다가기도 했었다.




나도 크루즈 간호사가 되고 싶다


크루즈 내의 Medical부서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가까워지다 보니, 그들이 일하는 부서와 내가 일하는 Guest Relations 부서가 현실적으로 상상 이상의 거리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크루즈에서 일하는 같은 승무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부서라고 이렇게까지 대우에 차이가 있었구나 싶은 정도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이 정말 멋있는 것과는 별개로,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현실적인 차이점들이 너무나도 불공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론 두 부서 간의 차이점이 워낙 많아서 하나하나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을 흔들었던 특정 포인트들을 한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도 크루즈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첫 번째 이유가 근무 기간 및 휴식기간 그리고 회사에서 제공되는 복지였다. 사실 크루즈 승무원이라면 정규직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계약직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Contract라고 '계약'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하지만, 퇴사를 하거나 잘리지 않는 이상 대부분 계약이 이어져서 first contract, second contract, 등의 명칭을 쓴다. Celebrity Cruise 회사의 내가 소속되어있던 GRO부서 기준으로 평균적인 컨트렉 기간은 6-7개월 그리고 휴가 기간은 1-2 달이다. 휴가가 길어서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6-7개월 동안 주 7일에 3교대 근무를 하다 보면 2달이 결코 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왜냐면 결국에는 죽어나는 스케줄로 죽기 직전까지 일 시키다가,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주말을 합쳐서 휴가라고 퉁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물론 무급 휴가이다.


하지만 메티컬 부서에서 일하는 승무원들의 평균적인 근무 기간은 3-4개월 그리고 휴가는 1달-1 달반이며,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 이틀은 쉬는 날이 있다. 이렇게 보면 엄청나게 큰 차이는 아니여 보일 수 있지만, 6-7개월 동안 단 하루의 쉼도 없이 연속으로 감정적인 서비스 일을 하다 보면 몸, 마음, 정신 셋 중에 하나는 병들어 휴가를 맞이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나도 첫 컨트렉을 마치고 10키로가 빠져있었고, 그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막판에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도 너무 많이 받아서 대인기피증까지 제법 심하게 생겼었다. 그러다 보니 메티컬 부서의 근무 시간과 휴가 기간의 조합이 부러울 수밖에...


두 번째로 가장 흔들렸던 부분은 월급 또는 연봉이었다. 어쩌면 속물 같아 보일 수 도 있는 반면에, 드디어 나도 현실 세계를 직면한 거 일수도 있다. 나는 돈을 많이 벌어서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 부분 또한 제법 흔들렸다. 사실 처음부터 흔들렸던 것은 아니다. 크루즈에서 근무하는 동안 메디컬 부서의 대략적인 연봉을 알고 있었지만 (GRO보다 최소 2-3배) '우아 쟤네 좋겠다..' 정도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향해 누군가의 한 마디가 내 뒤통수를 후려친 듯 머리가 멍해졌다. "너 15년은 일해야 쟤네 5년 일한 만큼 버는 거네..?". 내 사고방식으로는 생각도 못했던 계산이어서 황당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고 그때부터 마음이 제대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15년과 5년의 차이의 시간이라면, 내가 대학을 재입학하고 졸업해서 경력을 쌓고 돌아와도 이득인 셈이니까.


그리고 제일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크루즈 이후의 보장된 안정적인 삶이었다. 이 부분은 예전에도 언급했듯이, 내가 근무했던 Guest Relations 부서는 아무리 오래 일을 해도, 결국 쌓이는 경력은 특별한 기술의 경력이 아닌 '서비스 경력'이다. 물론 크루즈에 계속 발을 담그고 있을 거라면 경력을 쌓아서 프론트 직원에서 매니저 또는 디렉터로 승진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내가 크루즈 승무원을 그만둔다면, 그 이후의 삶은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GR부서의 승무원을 그만두면, 두 번 다시 서비스직은 안하리라 마음이 컸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만약 내가 크루즈 간호사로 일하게 된다면 내가 원하거나 계획한 만큼 크루즈에서 일하고 나서 어느 순간 배에서 일하는 간호를 그만둔다 한들, '간호'라는 기술에 대한 경력은 어딜 가나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육지에서도 그 이후의 삶이 안정적이고 보장이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사실 이 세 가지 이유 외에도 내가 지금의 마음을 먹기까지 한 몫한 이유들이 많지만, 일단은 내가 크루즈 간호사가 하고 싶은 제일 큰 세 가지의 이유를 정리해보자면 이런 이유와 고민들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 그리고 사실 "아직은 20대니까"라는 말도 제법 큰 이유가 되어줬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