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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미 Jan 26. 2021

간호의 길은 어쩌다가?

그전에 크루즈승무원의 길은 어쩌다가?

어쩌다 크루즈승무원?


크루즈 승무원, 그중에서도 Guest Relations Officer (GRO)로 일하면서부터 이 모든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 GRO는 흔히 말하자면 호텔에서 프론트와 같다. 한마디로, 크루즈 여행을 온 승객들에게 요술램프 지니와 같은 역할을 하는 부서이다.


크루즈 승무원은 내가 정확히 2016년 8월부터 꿈꾸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교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막 학기를 시작하기 직전에 예상치 못하게 생겨버린 꿈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예상치 못했던 꿈이 마냥 설레고 반갑기만 했다.


나는 대학에서 생명과학 그리고 상담심리 복수전공을 했다. 3년 반의 대학 과정을 마무리하고 졸업 전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취업과 진학의 갈림길에 서서 고민을 하던 중, 정말 뜬금없이 지나가던 인터넷 기사로 알게 되었던 직업이 '크루즈 승무원'이었다. 하지만 이 뜬금없이 존재를 알게 된 직업이 그렇게까지 강렬하게 마음속에 남아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자연계열 학생으로는 상상의 상상도 못 했던 꿈을 품게 되었지만, 오히려 상상도 못 했던 꿈을 마음 가득히 품게 되어서인지, 마지막 학기를 정말 알차고 기쁘게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주변 친구들과 교수님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으로 정말 다양했다만, 나는 그 반응들 조차도 재미있게 누렸던 것 같다.


그렇게 2016년 12월, 대학생 신분의 막은 내렸고, 본격적으로 크루즈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을 진지하게 시작했다. 그러다가 무작정 서비스 경력부터 쌓자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호텔에 지원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중에 얼떨결에 합격하게 되었던 호텔이, 내가 2017년 2월 졸업식을 치르자마자 바로 그다음 주에 칼입사를 하게 되었던 5성급 호텔이 되었다.


대학교 4년 내내 쌩얼 츄리닝 패션에 안 감은 머리 질끈 묶고, 도서관과 실험실에서만 추하게 생활하던 내가, 하루아침에 단정한 스커트 유니폼에 스타킹을 신고, 풀메이컵에 승무원 머리까지 장착하고 출근하는 5성급 호텔의 호텔리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2017년 상반기 그리고 하반기 각각 다른 호텔에서 짧은 경력은 쌓고, 두 번째 호텔에서 일할 때부터 ICCT Korea(국내 크루즈 공식 채용 파트너)에 정식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원하고 면접보고, 떨어지고, 또 면접보고하면서 2017년은 흘러갔고, 2017년이 다 흘러가기 직전 11월 말에 Celebrity Cruise의 Silhoutte호로 승선 날짜를 당당히 받게 되었다. 그렇게 2017년의 마무리는 부산에서 해양 교육받고, 서울에서 비자받고, 건강검진하고, 포항에서 짐을 싸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승선 준비를 했다.


2018년 2월, 나는 드디어 크루즈 승무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아니, 꿈을 이루었다. 꿈을 이루었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뿌듯하고 기분 좋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설레고 기대되는 2018년이었다. 그때 당시를 되돌아보면, 참 신기하게도 쫄보 덩어리인 내가 승선 전에는 겁도 걱정도 거의 안 했던 거 같다. 그만큼 내 마음이 너무 설레고 기대에 가득 부풀어 채워져 있어서 걱정이 들어설 틈이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


승선하고 나서는 '크루즈 승무원 일기'에 종종 기록해둔 것처럼 정말 다사다난했고,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에 희로애락의 감정을 매일마다 뽕을 뽑았다는 말만큼 표현을 할 방법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모든 부서가 그렇진 않고, GRO 부서, 즉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서에서 일하는 기준에서 말하는 것이다. 크루즈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감정이 엄청나게 소모되는 직업이었고, 감정에 예민한 나는 크루즈 적응기에 그런 것들을 스스로 소화시키기가 많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승선 초창기에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내가 삶을 사는 건지 삶이 나를 사는 건지 하면서 적응을 했다면, 두 달 정도 지나고서부터는 확실히 배 생활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내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지금 상황의 나에 대한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들을 하기 시작했다. 크루즈 승무원의 매력은 그냥 마력이구나.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이다만,  내가 이 매력에서 정말로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면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다만, 솔직히 GRO로 일하는 승무원으로는 그다지 창창한 미래가 그려지지는 않는 직업이다. 그래서 나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고, 크루즈 승무원 그 이후의 목표가 없으니 괜히 현재 삶에서 의욕 있게 살아갈 이유도 없게 느껴졌다.


참고로 남들이 보는 나는 현재 삶에서 최대한을 즐기고 누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실이고, 나 자신도 나를 그렇게 설명한다. 하지만 현재를 즐기고 누리기 전에 나는 '삶의 목표'라는 베이스가 있어야 한다. 어떠한 꿈이나 목표가 있어야만,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크루즈 승무원이라는 목표를 이루어 현실이 되면서 나에게는 삶의 목표가 사라지게 된 셈이었다. 그리고 결국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들로 인해, 내가 너무나도 간절히 꿈을 꾸었던 크루즈 승무원이라는 자리를 온전히 누리지는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다 미국 간호대?


나에게는 크루즈 승무원이라는 자리를 누리고 즐기기 위해서는 새로운 목표 또는 꿈이 필요했다. 그러던 시기에 같은 회사지만 다른 배를 타고 있는 한국인 언니랑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 언니랑 나는 승선 전에, 한 달 차이의 승선 날짜와 심지어 같은 배를 배정을 받았었다. 그래서 ICCT대표님을 통해 소개를 받아 알게 되었고, 같이 크루즈 생활을 할 줄 알았지만 막판에 일이 꼬이는 바람에 아쉽게도 내가 다른 배로 배정을 받게 되었다. 둘이 다른 부서에 다른 배이긴 했지만 둘 다 첫 컨트렉이였고, 각자 배에서 유일한 한국 승무원이었기에, 알게 모르게 서로를 제법 의지하게 되었다. 만날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맞으면 종종 통화를 하고 카톡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공감하고 의지하며 배 생활을 함께 적응해 나갔던 언니다.


그 날은, 언니랑 평소보다 조금 더 길고 깊게 통화를 했다. 서로를 공감하기도 하고, 각자 다른 부서에서 일하기 때문에 각자 부서에 대해서도 얘기하게 되면서 언니 소속 부서에서 언니가 하는 일에 대해 조금은 더 깊이 알게 되었던 거 같다. 아 맞다, 언니는 크루즈 간호사 승무원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알게 모르게 크루즈 간호사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더 생기기 시작했던 거 같다.


되짚어보니, 크루즈에서 근무 중에 나는 동료들보다 의외로 병원으로 내려가야 할 일이 많았다. 특히 카리브해 시즌에는 스페인어밖에 할 줄 모르는 손님들이 많아서 종종 병원에 내려가서 통역을 했었고, 그러면서 크루즈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그리고 간호사들과 대화 나눌 기회도 여러 번이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제법 가까워졌고, 가까워지다 보니 농담 반 진심 반으로 "너 생명과학 전공했다면서? 너도 병원에서 일하는 거 잘 생각해봐. GRO보다는 훨씬 나을걸?"이라는 말도 듣게 되었다.


'병원, 의사, 간호사,..' 나에게 전혀 낯선 단어들이 아니다. 아니, 사실은 나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친숙한 단어들이다. 부모님 두 분 다 의료 봉사자로 20년째 일하고 계시고, 봉사자이시기에 나 또한 자라면서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경험하고 도울 기회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의료계 가정에서 자라면서 영향은 안 받으래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학 전공을 생명과학 그리고 상담심리를 선택했던 이유도 사실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의료 봉사자로 평생을 받쳐 일하시는 부모님이 참 존경스러운 분들이셔서. 그리고 나도 그런 멋있는 의료인이 되고 싶어서.


방학때마다 부모님의 일을 도와야하는게 우리집 규칙이라...


첫 컨트렉을 마치고 집에 와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크루즈 승무원을 계속한다면, 어떤 삶의 목표 그리고 삶의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정말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크루즈 승무원의 삶을 여유 있게 누리고 즐기고 싶어서 고민했다. 그렇게 집에서 밤낮으로 풀리지 않을 고민만 했다. 그 당시에는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속이 꽉 막히고 답답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나에게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계속해서 고민이 진행되던 중, 하루는 아빠랑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다가 대뜸 "너도 크루즈 간호사 해보는 건 어때?"라고 하셨다. 아빠의 말을 듣자마자 처음 들었던 생각은 "에이... 내가???? 갑자기??". 그리고 그 생각을 아빠한테 그대로 전했다. 그랬더니 돌아왔던 아빠의 대답은 "크루즈 승무원도 갑자기였잖아.."였다. 그러고 보니 그랬네...


나는 무언가 결정을 할 때 '내가 할 수 있을까?'를 기준으로 고민하기보다는 '내가 못할 이유가 뭐야?'를 고민을 한다. 그리고 내 기준에서는 내가 크루즈 간호사를 못할 이유가 딱히 없다는 결론이 내려짐과 동시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자 모드로 전환이 되어버렸다. 무조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내 최대 단점은 겁과 두려움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지만, 그 단점과 중화를 이루는 장점이 걱정을 미리 사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미리 하지 않을 뿐, 상황이 닥쳐오면 이 세상 가장 위대한 겁쟁이 쫄보가 된다.)


새로운 도전이 무섭긴 하지만, 오히려 관심 있는 무언가가 생겼을 때 시도조차 해보지 않으면 언젠가 후회하게 될 내 모습이 더 겁나서 호텔리어, 크루즈 승무원, 그리고 크루즈 간호사가 되기 위한 과정까지도 일단은 시작부터 했던 거 같다.  


시도하지 않고 후회하느니, 차라리 시도라도 해보고 실패하는 게 낫겠다 싶었고, 모든 실패에는 값진 교훈이 따르기 때문에 어쩌면 적군의 군복을 입은 아군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어차피 그분은 나의 아무것도 낭비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에, 안되면 안 되는 거고 되면 감사한 거라고 늘 마음속으로 기억하자는 나 자신과의 약속으로부터 이 모든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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