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오미 Aug 26. 2021

네 번째 대학에서...

첫 학기 그리고 두 번째 학기를 마치며... :)


'나오미의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작곡한 멜로디가 한 박자씩 느려진 것도 빨라진 것도 아니었고, 그 누구보다 공들여서 작곡했던 나만의 멜로디가 조금씩 수정된 것도 아니었다. 완성된 내 노래를 이제 부르기만 하면 될 거 같았는데, 불러보지도 못한 체, 하루아침에 누군가 내 작업지에 제목만 남겨두고 다 찢어버림과 동시에, 아예 새로운 곡을 써놓은 셈이었다.


제목만 여전했지, 그 노래는 내 노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노래를 불러야 할 사람은 나였다.


좌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이상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만 같은 마음에 Let your will be done을 고백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한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다시 처음부터 학교를 다니며 지금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보니, 처음에는 정말 분에 가득 차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을 했다면, 지금은 인간이 신경 쓸 수 없는 세세한 디테일까지도 포함한 모든 것이 그분의 뜻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분의 뜻대로 흘러가는 시간에 거주하고 있고, 지난 1년간 내가 마지못해 노래하고 있었던 그분이 작곡하신 노래는 완벽하고 완전했음을 고백한다. 드디어... 그리고 이제야...


참 다행이다.



"야. 대학 4개 다녀본 사람 나와봐. 대학원 말고 대학 말이야."


2020년 한 해, 코로나로 인해 의도치 않게 유난히 주변에서 불평불만이 많이 들렸는데, 그럴 때마다 장난 반 진심반으로 그들에게 자주 내뱉었던 말이다. 처음에는 내가 대학을 4개째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기가 차도록 불만이어서 뱉기 시작한 말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람들 놀려 먹는 데에 유용하게 써먹다가 오히려 이 타이틀이 제법 마음에 들어버리기까지 한다. 어쩌면 내가 놀림을 당해야 할 일로 내가 역으로 남을 놀리고 있다니, 아이러니하다.


나의 4번째 대학 생활의 시작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였지만, 막상 1년이라는 시간을 마무리하고 돌아보니,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만은 않았다. 온전히 마음을 비워내고 시작을 했고, 기대를 티끌만큼도 안 하고 시작해서인지, 생각보다 좋은 점들이 많이 보였다. 물론 코로나 덕도 컸다. (내가 코로나를 욕할 수만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코로나로 인해 첫 학기는 전체 비대면(실습 과목 포함)에 기말고사 때만 학교에 들어갔었고, 두 번째 학기는 대면과 비대면 병행이었어서 학교를 아마 5주-6주 정도 다닌 거 같다. 일 년 중에 학교를 평균적으로 다니는 기간 32주인 거에 비해 5-6주 다닌 거면 솔직히 날로 먹고 거저먹은 거 인정하는 바이다.


심지어  번째 학기는 기말고사 전공 10과목을 3 앞두고 있는 시점에, 갑자기 확진자 수가 급상승해버리는 바람에  과목이 과제로 대체되기까지도 했다.ㅎㅎ  외에도  좋은 장학금 다행이고, 학교 위치가 한적한 자연 가득한 곳인 것도 마음에 들고, 근처에 마음 편한 친구들이 살아서 좋고, 마음 맞는 편입 동기들도 생겨서  다행이었다.


부모님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코로나 때문에(덕분에) 학교 공부를 날로 먹는다 거저먹는다 뭐라 하시지만, 나는 오히려 '미국에서 개고생 한 거 치면 이 정도는 보상받아야지!'라고 외치며 즐기고 누리고 있는 것 같다. 2019년에 몸고생 마음고생 꽉 채워서 했던 거 생각하면 이 정도는 내가 온전히 누려도 된다는 보상심리 덕에 혼자 집콕 생활을 하면서도 코로나 블루까지 멀리할 수 있지 않았다 싶다. 이걸 바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할 수 있는 건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학교 간호 공부가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로 공부하는 거부터, 한동대와는 너무나도 다른 학교 문화, 학과 문화, 교수님과의 관계, 동기들과의 관계, 등 여러 가지 적응해야 할 마음의 숙제들이 많았다. 그래도 신기했던 것이, 무언가를 공부하고 배운다는 것이 재미있다는 마음은 아마 머리털 난 이후로 처음 경험하지 않았나 싶다. 수업 중에 교수님들의 현장 에피소드를 듣고, 실습을 하며 주사기를 만지고, 마네킹에 수액을 꽂으며 간호라는 공부에 흥미와 재미를 제법 자주 느꼈다.


무언가 특별히 못하거나, 특별히 모나지도 않아서 혼난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아, 남에게 혼나는 것을 제법 두려워하는 사람인데, 이곳에서는 혼나도 쫓아가서 배우는 재미를 아-주 사알짝 맛보았다. 심지어 쫓아가서 묻고 알려달라고 했는데, 가르쳐주지 않으면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왠지 그럴 때마다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내가 돌고 돌아서 지금 이 길을 남들보다는 느리게 걷고는 있지만, 틀린 길을 걷고 있지는 않는구나..' 하는 위로가 되는 감정이었다.


-

여전히 남은 임상 실습, 남은 공부, 먼 미래의 국시, 졸업, 등 여전히 걱정도 겁도 두려움도 많지만, 나 자신을 더 단단히 믿어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나 자신에 대한 기대도 하고 있다. 아무래도 간호라는 공부 과정을 더 깊게 경험함으로 인해, 새로운 감정들을 많이 느낄 수 있었던 한국에서의 첫 1년이었다.


나는 2019년을 마무리하며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뒀었다.
"2019년은 365일 중에 300일 이상은 거뜬히 울었으니, 2020년은 365일 중에 65일만 울게 해주세요."

2020년을 돌아봤을때 나는, 열흘도 안 울었던 한 해가 되었다.
그리고 2021년은 더도 덜도 말고, 2020년만 같기를 기도하게 되었다.


앞으로 내가 경험하게 될 모든 환경과, 인연과, 감정들이 참 기대가 된다. :)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으로 돌아와서 세 번째 편입, 4번째 대학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