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하게 뽕 뚫어 놓은 구멍 ep7.

숨 쉴 구멍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길 수도 있다.

by surpriseme



“숨 쉴 구멍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길 수도 있다.”




‘친구들을 초대하면 안쪽 방에 재우고,

남편의 서재엔 커다란 러그를 깔아야지.‘


상상은 마음을 부풀린다.

아무리 일을 하고 또 해도

커다래진 마음은 고단함을 잊게 한다.

기쁘게 준비했고, 마침내 첫 집들이를 열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해 늦은 저녁까지 함께 먹고 웃고 떠들며 서로의 삶을 축복했다.

손을 흔들며 헤어지던 순간,

이 집에서의 새로운 삶의 막이 올랐음을 느꼈다.


다음 날 아침, 왕할머니와 친정 부모님이 트럭 가득

실어온 잔디를 마당 구석구석에 깔았다.



그 순간에도 화목 보일러가 한계치를 넘어

점점 달궈지고 있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화재 보험도 아무런 안전망도 없는 우리는

맹수가 코앞까지 다가온 줄도 모르고

천진하게 풀을 뜯고 있는 초원의 동물 같았다.



불은 화목보일러에서 시작 됐다.

시공사의 부실 공사 때문이었다.


지붕 공사를 하며 굴뚝이 지나가는 자리엔

보강 처리가 들어갔어야 했는데,

그냥 구멍 하나 덩그러니 뚫어 놓고

굴뚝을 그대로 통과시킨 거였다.


일회용 커피컵 뚜껑에 빨대를 꽂으려

푹 뚫은 구멍처럼, 허술하고 위험하게.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불이 나고 처음 몇 주는 오히려 들뜬 기분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아드레날린이 솟는 느낌이랄까.


너무도 거대한 미션이 눈앞에 떨어졌고,

나는 또다시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로부터 받는 공감 섞인 위로는 낯설었고,

동시에 따뜻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평생 그런 공감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기분 좋게 당황했다.


특이한 가정환경 속에서,

나는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를 외줄 타듯 살아왔고

누군가의 공감은, 내게 늘 너무 먼 언어였다.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감정을 이입하지 못했고,

늘 어딘가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야

누구에게 대입해도 충분히 안쓰럽고,

당연히 힘든 이 상황에 놓이니까

사람들은 나를 닿을 수 있은 사람으로 봐주었다.

안타까워했고, 배려해 주었다.

그 따뜻한 시선과 말들이 포근했다.


그 정도의 위로로 위기를 반가워할 정도면,

나는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공감에 굶주려 있었던 걸까.


팔이 잘려도 아프고, 종이에 손이 베여도 아픈데.

아픈 티를 내지 못하는 사람.

결핍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는 껍질 속에 갇혀서,

어디 한구석이 비어 있어도

’ 여기가 비어있어요 ‘ 하고 말하지 못하는.


’ 채워 주세요 ‘라고 손을 뻗는 게 죄처럼 느껴졌고,

감정을 인식하는 순간마다 죄책감이 몰려왔다.


나는 내 결핍을 외면하며 살아왔고,

외면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외로움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불이 나고 나서야,

나는 조심스럽게 그 빈자리를 바라볼 수 있었다.


비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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