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내 집을 삼켰고 소방수는 딸기를 먹었다. ep.6

손에 쥐고 있던 희망을 놓자, 이성이 깨어났다.

by surpriseme



불.

불을 아빠의 몸에서 나던 익숙한 냄새로 기억했다.

하지만 그날 마주한 불은,

내가 이전에 알던 따스한 불이 아니었다.


아빠는 말했다.

"불은 다가갈 수 있을 정도로 작아야 해.

그래야 사람들이 모여. “

아빠의 가르침대로 우리 가족은 캠핑할 때도

큰 캠프 파이어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 불이 빨간 숯이 되어 사그라들 때까지

서로의 얼굴을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아담한 모닥불만 곁에 두었다.


그래서인지— 그날 지붕을 집어삼킨 거대한 불길은

너무 낯설었다.






2020년 봄,

새로 이사 간 집 마당에서 오전 작업을 마친 나는,

쑥국을 끓이고 있었다.

멸치다시마 국물에 된장만 살짝 풀어 넣은 봄쑥은,

삼삼하게 속을 풀어주는 맛이었다.

간을 본 지 10분쯤 지났을까.

마당으로 나간 나는, 당구를 치고 있던 아빠와

남편 곁에서 눈가에 스치듯 반짝이는 불꽃을 봤다.



"불이야!"



남편이 호스를 잡아당겼지만 너무 짧았다.

불기둥은 순식간에 지붕을 접수하고,

하늘 향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119에 신고했다.

그러나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 때문에

소방차는 먼 길로 돌아와야 했다.

마을 사람들도 모여 도우려 했지만,

불길은 이내 우리의 손을 벗어났다.

남편은 가스통을 언덕 아래로 굴려 폭발을 막았다.

하지만 서재에서 안방으로,

거실로 퍼져나간 불은 멈출 줄을 몰랐다.




발을 동동거리던 내가 일순간 멈춘 건,

어떤 감각 때문이었다.

자잘한 사고에 익숙해지면 생기는 감각,

사고의 크기를 가늠하는 육감.

그 감각이 속삭였다



"이건 우리가 감당할 수 크기가 아니야."






열흘 전 이사 온 집이었다.

겨우 손에 넣은 집.

이제부터 여섯 가족의 이야기가 담길 공간.

하지만 이제, 그 집에서 꿀 꿈은 끝이었다.

손에 쥐고 있던 희망을 놓자, 이성이 깨어났다.

휴대폰을 꺼내,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게 될지도 모를 불타는 집을 영상에 담았다.




"귀금속도 없고, 구할 것도 없구나. “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아이들 매트리스가 번뜩 떠올랐다.






결혼하고, 유학을 앞두고

이 땅에 처음 왔을 때 생각했다.

‘이런 곳에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0년 후, 네 아이를 홈스쿨링하고 있던 우리는

정말로 그 땅과 집을 살 기회를 얻었고

영혼을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 땅과 집을 샀다.


나는 아이들에게,

새 집에 어울리는 아늑한 잠자리를 주고 싶었다.

삼단 접이식 매트리스를

패밀리 침대처럼 깔 계획이었지만, 돈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반지를 팔았다.

"설마, 결혼반지를 팔고도 매트리스를 못 사겠어?"

동네 금은방에 전해주고받은 돈은 6만 원이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며 피식 웃게 되는 ‘6만 원.’

그렇게 어렵게 산 매트리스인데,

그 귀한 걸 내버려 둘 순 없지.


불이 아직 옮겨 붙지 않은 아이들 방으로,

나는 옷으로 입과 코를 막고 뛰어들었다.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내 매트리스들아,

내가 왔다!'


창문을 활짝 열고, 무겁고 큼직한 매트리스들을

하나씩 창밖으로 던졌다.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 순간, 나는 소방수였다.

아이들 매트리스를 불타는 집에서 구해낸 소방수.

세 개의 매트리스를 구출한 나는,

숨을 몰아쉬며 다시 집안을 훑었다.

놓친 건 없나.

소방수는 불현듯 냉장고 속

아직 싱싱한 딸기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흠.. 소방수은 왜 그 와중에

딸기가 당겼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연기를 헤치며 냉장고로 달려갔다.

딸기를 품에 안고, 화염에 휩싸인 집을

슬로 모션처럼 걸어 나왔다.

큰 일을 당했을 땐,

싱싱한 무언가를 먹는 게 본능이었을까.

머릿속에 낀 연기가 환기되라고.



아무튼.

매트리스를 구한 소방수는 새빨간 딸기를 삼켰고,

그 보다 더 빨간 불은 소방수의 작은 집을 삼켰다.


그렇게— 우리 집은 사라졌다.

그리고, 모닥불 같던 삶은 그날

거대한 불길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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