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잭슨 폴록 인가
언젠가 아들이 물었다.
“엄마, 하나님은 왜 시간 밖에 있으면서
사람은 시간 안에 넣어두었어?”
맞아. 우리는 시간 안에 있어.
하나님은 그 시간의 밖에 계시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보면 화폭 위에
어떤 색을 먼저 얹는지는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색들이 조화를 이루어
어떤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지는
그림이 완성된 뒤에야 비로소 한눈에 보인다.
시간 속에 있는 우리는 아직 그 ‘완성’을 모른다.
나는 내 삶의 화폭에 얹히는
색의 명도와 채도, 농도에 따라
어둠에 짓눌리기도 하고
밝음에 휩쓸려 천진하게 웃기도 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의 삶 위에
그분이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울고, 또 웃는다.
시간 안에 산다는 건 참 무능한 일이다.
나는 무능을 싫어해.
그래서 삶이 더 괴로운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일어난 일들에 반응하는 것뿐이니까.
그런 나에게, 어린 시절은 선물 같았다.
아빠, 모닥불, 집 앞의 사슴 떼.
그 기억들은 내 세포에 새겨진
따뜻한 유전자 지도가 되었고,
이후 삶의 굴곡에 반응하는 방식이 되었다.
나의 정서의 설정이 ‘따듯함‘이라는 것에 감사해.
2020년 모닥불과는 사뭇 다른
또 다른 ‘불’을 마주했다.
부모의 품을 떠나 세상에서 마주한 불과
길 한복판에서 차에 치여 숨이 끊긴 사슴 같은 건..
그런 장면은 정의하기 어려운 색이었다.
잭슨 폴록의 그림처럼,
여러 가지 물감이 폭탄처럼 투하되었으니까.
어지러운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나는 한 번 숨을 고르고,
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나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일어난 일에 반응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나는 신처럼 될 수 있다.
시간을 오가고, 공간을 넘나 든다.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로서
나는 그런 자유가 있다.
그 자유를 마음껏 사용하려 한다.
어린 시절, 그리고 신혼을 지나
이제 나의 폭풍 같은 삶의 이야기를
불이 났던 그날부터 다시 이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