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방송학 전공자인 글쓴이가 펭수 덕질을 하다가 사심으로 펭수와 무한도전을 비교·분석해본 내용입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펭수로 이끌었다. 보자마자 입덕해서 3일 만에 정주행을 마쳤다. 공식 영상은 몇 번씩 봤고, 펭수 팬들이 편집한 영상들도 다 봤다. 자기 전까지 펭수를 붙들고 있다가 일어나서도 펭수 영상부터 본다. 펭수 얼굴만 보이면 클릭부터 한다. 이제는 펭수 표정이 보인다.
펭수는 이유 없이 그냥 좋은 게 맞다. 그래도 왜 좋은지 한 번 분석해 보기로 했다. <자이언트 펭TV>는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MBC <무한도전>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봤다. 회별로 정해진 포맷이 없으며, 특징적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제작진과 티격 대격하며 케미를 발산하는 것도 비슷하고, 시민들과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것도 공통점이다. ‘도전’이라는 서사구조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이끌어간다는 측면도 닮았다.
매주 일정한 시간에 방송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대부분 정해진 포맷이 있다. 방송 프로그램은 편성표에 따라 정해진 방송 시간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포맷을 정해두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미 높은 시청률을 거둔 프로그램의 경우 성공을 보장해주는 명확한 공식이 존재하기에, 방송사 입장에서는 포맷을 고정함으로써 안정된 시청률을 달성하려 한다. 이것이 텔레비전 서사의 지배적인 특성이다.
이러한 공식을 깨고 성공한 프로그램이 바로 <무한도전>이다. <무한도전>은 전형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서사구조를 깨뜨렸다. 반복과 순환은 텔레비전 미학을 규정하는 중요한 미적 특성인데, 이러한 미학을 전복시키며 합의된 서사를 깨뜨린 것이다. <무한도전>은 ‘시리즈’라는 형식을 차용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매주 다른 포맷과 내용으로 방송됐다. 그러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팬덤을 형성했다.
<자이언트 팽TV>도 마찬가지다. 매주 다른 포맷으로 방송된다. 프로그램 내용은 펭수가 주인공으로 나와 크리에이터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는데, 형식은 매번 다르다. 현장 예능(‘야유회’, ‘낚시’), 콩트(‘매니저가 도망갔다’), 드라마(‘펭귄 극장’), 시사고발(‘펭수가 알고 싶다’), 교양(‘도서관’, ‘펭수vs뽀로로’), 스포츠 예능(‘이육대’), 직캠(‘요들송 라이브’, ‘펭수쇼’), 뮤직비디오(‘겨울왕국’, ‘토이스토리 OST’) 등 다양한 장르의 포맷을 차용한다. 반복성은 진부함과 지루함으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텔레비전의 미학을 전복시키며 합의된 서사를 깨뜨렸다는 점이 <자이언트 팽TV>가 <무한도전>과 닮은 점이다. 정해진 포맷 없이 매주 새로운 내용이 방송되기 때문에 다양한 연령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맷이 고정돼 있지 않아도 보는 사람에게 혼란을 주지 않는 이유는 바로 ‘캐릭터’다. <무한도전>에서는 등장인물들이 프로그램 안에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간다. 출연자들은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캐릭터를 부여받고, 이는 프로그램의 중심 서사를 구축하며 희극성을 강화해나가는 기제로 작용한다. 비일상적이고 다소 과장된 캐릭터로 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자이언트 펭TV>에도 ‘펭수’라는 특징적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포맷이 바뀌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고정 출연자’다. 출연자는 고정되어 있고 포맷에 변화를 주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캐릭터는 어떤 미션이 주어졌을 때 그것에 대해 반응을 하게 되는데, 반응이 곧 캐릭터가 된다. 펭수는 유튜브에 올라온 첫 화부터 독특한 캐릭터를 발산했다. ‘머랭쿠키 먹방’이라고 제목에 영상에서 펭수는 쿠키는 먹지 않고 쿠키를 날개로 다 부순다. 일산초등학교 방문 영상을 찍을 당시 유튜브 구독자는 30명(30만 명 아님)이었는데, ‘이것은 전설의 시작’이라는 자막이 달린다. 경쟁자는 자기 자신 뿐이라는 자존감 높은 펭수는 이때부터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펭수 뿐만 아니라 매니저들도 ‘고정 출연자’로서 캐릭터를 강화해나간다. 이제는 PD가 된 전 박재영 매니저나, 퇴사를 했는데도 계속 소환되는 전원배 매니저가 그 예다. 펭수가 유일하게 ‘님’ 자를 붙이는 이슬예나 PD와 펭수에게 ‘안녕하세요’ 마사지를 받은 임문식 PD도 프로그램에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특징적인 캐릭터를 전면화시킨 점이 <무한도전>과의 공통점이며,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을 애정하는 경우,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호기심을 갖는다. ‘메이킹 영상’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제작의 과정을 그대로 노출하고, 그것을 기획한 사람들에게도 카메라를 비추는 것이다. <무한도전>을 떠올리면 유재석을 비롯한 멤버들이 가장 먼저 생각나지만, 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김태호 PD다. 김태호 PD는 제작진이지만 프로그램의 서사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곤 했다. 진행되는 중간에 개입을 하거나, 프로그램 전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자이언트 펭TV>의 경우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한다. ‘박째영’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박재영 매니저가 그 예다. 펭수와 박재영 매니저 사이에 촉발되는 대립구도는 <자이언트 펭TV>를 극화하는데 하나의 중요한 플롯으로 작용한다. 편집의 과정을 거치며 위와 같은 구도는 더욱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펭수와 티격 대격하면서도 애정을 드러내는 박재영 매니저의 ‘츤데레’ 같은 면은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구독자들은 2기 매니저들을 거부(?)하고 자꾸 박재영 매니저를 댓글로 소환한다. 박재영 PD 외에도 퇴사한 전원배 매니저를 비롯해 ‘야유회’ 편에 나온 이들 제작진들 간의 케미는 프로그램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하나의 장치로 활용된다.
<자이언트 펭TV>가 <무한도전>과 닮은 점은 시민들과 활발히 소통한다는 점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시민들이 출연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 두 프로그램의 경우 적극적으로 시민들을 끌어들인다. <무한도전>의 멤버들은 미션을 수행할 때 대중교통을 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시민들에게 밀착하여 다가갈 기회를 늘린다.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시민들의 피드백을 받고, 그 피드백을 또 방송 내용에 반영하여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펭수는 <무한도전>보다 더 진화한 소통 능력을 보여준다. <자이언트 펭TV>의 에피소드들은 기본적으로 시민들과의 소통을 기본 전제로 삼고 있다. 펭수는 늘 먼저 시민들에게 다가간다. 셀카를 예쁘게 찍는 법을 알려 달라고도 하고, 명절을 앞두고 한강에서 잔소리 반대 시위를 하기도 한다. 펭수의 소통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몰래카메라 편에서는 어린아이와 의리 지키기 게임을 하고, 구독자 이벤트 편에서는 아저씨에게 구독 버튼을 눌러달라고 간청한다. 일산 초등학교에서 만나 친해진 근원이 친구는 <자이언트 펭TV>에 최다 출연하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TV 프로그램은 상호작용을 중시하기보다는 방송국 안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송출하는 의미가 강했다. 그러나 유튜브로 패러다임이 넘어오면서 시청자, 구독자들과의 상호작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와썹맨>이나 <워크맨>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비슷하다. 박준형과 장성규는 소통의 달인이다. 모르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구면인 듯 대화한다. 이처럼 사람들과의 소통 능력은 프로그램의 인기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자이언트 펭TV> 공식 홈페이지의 프로그램 소개를 보면, “스타 크리에이터가 꿈인 펭수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그린다고 되어 있다. 펭수가 크리에이터가 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본 프로그램의 기본 서사구조다. 이렇게 보면 <자이언트 펭TV>의 서사구조는 우리의 인생 여정과 매우 흡사하다. 펭수를 보며 우리가 희로애락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펭수는 뽀로로와 BTS를 뛰어넘어 우주대스타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도전해 나간다. 펭수가 인생 여정의 길목에서 마주치는 상황들에 대해 우리는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다.
이는 <무한도전>과 비슷한 서사구조다. <무한도전>은 멤버들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은 오프닝, 해프닝, 클로징의 구조를 가진다. 미션이 주어지고(오프닝), 미션을 해결해 나가며(해프닝), 미션에 대한 평가를 제시(클로징)한다. 시청자들은 멤버들이 도전하는 과정에서 함께 호흡하며 그들을 응원하고 같이 성장한다.
도전의 서사구조를 가진 프로그램은 많지만, <자이언트 펭TV>와 <무한도전>은 좀 더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타인과의 비교를 통한 목표 달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 주요 서사라는 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비롯한 다른 프로그램의 경우 도전의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어도 ‘타인과의 경쟁’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오락적 요소는 높을지 몰라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약간의 불편함을 준다. 하지만 <무한도전> 멤버들과 경쟁자가 ‘나 자신’이라는 펭수는 실제로 자기 자신과 경쟁한다. 어제보다 나아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펭수를 ‘무해함’이라는 단어와 연관시키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펭수는 <무한도전>처럼 우리를 도전의 여정에 동참하게 하면서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게 만든다.
매거진 <펭수의 미학>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전 글 직장인이 펭수에게 열광하는 이유 가 1만 뷰를 달성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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