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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뢰딩거의 나옹이 Nov 26. 2019

펭수에게 입덕할 수밖에 없는 이유

펭수의 세계관에 나를 대입시켜 바라보기

본 글은 방송학 전공자인 글쓴이가 펭수 덕질을 하다가 사심으로 펭수 세계관을 분석해본 내용입니다.


남극이라는 먼 곳에서 한국까지 헤엄쳐서 온 펭수는 참 씩씩하고 밝다. 크리에이터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때론 찡하기도 하다. 가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외로움을 표시할 때는 가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구독자가 몇 명 없을 때부터 크리에이터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던 펭수를 보면, 대학 졸업 후 취업의 문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내 모습이 겹쳐진다. 2030 뿐만이 아니다. 4050도 마찬가지다. 사회생활을 오래 한 만큼 이제 세상을 알만도 한데, 쉬운 일이 하나 없다. 이젠 펭수가 나를 좀 안아줬으면 좋겠다. 펭수의 세계관에 빠져들어 나 자신을 대입시켜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펭수에게 입덕하게 된다.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펭수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세계관’이다. 사전적 의미의 세계관은 ‘자신이 사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세계관'은 게임이나 픽션 분야에서 사용되는 의미로, ‘배경 설정’이라는 뜻을 갖는다. 작품에서 묘사되는 세계 그 자체를 말한다. 즉, 세계관은 작품의 시나리오를 이루는 시간적, 공간적, 사상적 배경으로서, 작품의 이야기와 작품 속 캐릭터를 구상하는 뼈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 속 세계관은 사실 우리가 사는 세계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블’의 세계관이 그 예다. 빅뱅 이전의 세계관을 묘사하거나, 미래 시점의 세계관을 창조한다. 반대로,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세계관을 구축하는 경우도 있다.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나, 실제 프로 선수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된 스포츠 게임 등이 이에 속한다. 오롯이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든, 현실을 기반으로 하든, 뚜렷하고 창의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관 설정이 해당 콘텐츠의 성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자이언트 펭TV>는 너무 가상 세계를 기반으로 하지도, 너무 현실의 세계를 다루지도 않는다. 현실 세계와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도, 또 너무 현실에서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다.

 

펭수의 세계관은 무엇인가


<자이언트 펭TV>가 세계관을 설정한 방식이 흥미롭다. 기획을 하는 시점에 이미 ‘남극에서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 한국으로 온 10살의 자이언트 펭귄’이라는 세계관과 캐릭터를 구축했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세계관을 점차 강화해나가는 방식을 활용한다.


펭수의 세계관은 주제곡에서부터 살펴볼 수 있다.


(G I A N T 펭!) 워-오- 자이언트 펭TV / 워-오- 자이언트 펭TV / 아아 놀랐다면 미안 이런 펭귄 처음이지 / 자이언트 펭~펭~에~(SOO) / 남극에선 혼자였지 남과 다른 덩치 / 원래 그래 특별하면 외로운 별이 되지 / 한국에선 노는 게 제일 좋은 펭귄 / 뿌르르? 삐리리? 암튼 스타라며 / 노는 건 내가 제일인데 한 번 볼래 / 아 구걸하려던 건 아냐 자이언트 펭TV / 음 그래도 구독하면 내가 잘할게 / 난 너의 평생 친구 자이언트 펭수 /워-오- 자이언트 펭TV / 워-오- 자이언트 펭TV / 난 하나뿐인 210cm / 자이언트 펭귄 크리에이터 펭 펭! / Yo, 자이언트 펭TV, Let's 구독


주제곡에서 드러나는 세계관은 먼저 210cm의 큰 키를 가진 자이언트 펭귄인 펭수가 주인공이라는 설정이다. 그런데 이 펭귄은 남과 다른 덩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향인 남극에서는 ‘혼자’였다. 그래도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긍정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 특징이다. 뿌르르인지 삐리리인지 모르는 ‘암튼 스타’인 뽀로로 때문에 한국을, 그리고 EBS를 목적지로 선택했으며, “노는 건 내가 제일”이라는 자신감도 있다.


EBS는 펭수의 세계관을 적극 알리기 위해 홈페이지에 자기소개서를 정리해서 올려두기도 했다. 자기소개서에서는 주제곡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나이와 현재 사는 곳이 추가되었으며, 헤엄을 쳐서 왔다는 사실과 존경하는 인물(나 자신) 등이 언급된다.


펭수의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한 캐릭터 설정


초반에 <자이언트 펭TV>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가운데 일산 초등학교 방문 전 펭수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있다. 이 영상의 초반부에서는 펭수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의 모습이 담겨 있다. ‘촬영 하루 전 일산 EBS’라는 자막이 나오면서 진행되는 이 영상에서는 펭수의 세계관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펭수를 구성하는 중요한 세계관 중 하나는 펭수가 남극에서 한국으로 왔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영상에서는 헤엄을 쳐서 오는 모습을 CG로 넣어줌으로써 설정에 쐐기를 박는다. 


펭수의 헤드폰은 김명중 사장님이 준 것이기 때문에 헤엄쳐서 오는 장면에서는 헤드폰이 없는 것이 세계관 콘셉트에 좀 더 적합하다고 본다.


또, 이 영상에서 펭수는 “남극에서 친구들이 많았나 봐요”라는 질문에 머뭇거리다가 “아... 잘 못 지냈어요. 너무 커가지고 저랑 안 놀아주더라고요. 눈이 왜 이러냐고 눈을 왜 이렇게 뜨냐고. 나 그냥 뜬 건데”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이 같은 세계관을 접하며 두 가지 측면에서 공감한다. 먼저, 개성을 죽이며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 모두는 개별적 존재로서 특별함을 가지고 있는데, 사회는 그런 개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른 펭귄들과 다르게 '자이언트'하다는 이유로 친구를 사귀지 못한 펭수에게 감정 이입되는 이유다. 또,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건 비단 펭수만이 아니었다는 사실로부터 위안을 받는다. 현대사회에서는 인간관계의 피로도가 너무 높다. "친구가 없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펭수를 보면서 나만 힘든 것은 아니었다는 메시지를 수용하게 된다.


한편, 이 영상에서는 ‘매니저’라는 표현도 처음으로 등장한다. 제작진 인터뷰를 보면, 펭수가 제작진을 부를 때 ‘매니저’라고 지칭하기로 미리 정했다고 한다. 펭수가 의자에 앉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매니저를 부르고, 이러한 장면은 이후로도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반복된다. 펭수가 제작진을 '매니저'로 지칭하는 방식을 통해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펭수의 캐릭터가 구축된다. 이러한 캐릭터가 구축되었기 때문에 PD에게 오라 가라 하거나, EBS 사장님을 "김명중"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일관된 캐릭터와 세계관으로 수용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펭수의 세계관은 어떻게 강화되고 있는가


펭수의 세계관은 회를 거듭하면서 점차 강화되고 있다. 그중에서 세계관 강화에 일조한 에피소드 하나를 선정하였다. <펭수가 알고 싶다>라는 주제로 진행한 ‘[단독] 펭귄 의혹 전격 해부’ 영상이다. 이 영상의 아래에는 “진짜 지독한 세계관”이라는 댓글이 달렸으며, 이 댓글은 약 6천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펭수가 알고 싶다> 오디션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은 서사구조를 따른다.


1) (스튜디오) <그것이 알고 싶다> 형식을 차용한 이동현 기자의 오프닝

2) (EBS 내부) <자이언트 펭TV> 제작진 인터뷰

3) (야외) 닮은꼴 당사자인 개그맨 김민교 인터뷰  

4) (체육관) 닮은꼴 당사자인 양치승 관장 인터뷰

5) (EBS 내부) 펭수 밀착 취재 시작 : 샤워하고 나오는 펭수 확인

6) (EBS 내부) 펭수 밀착 취재 지속 : 소품실에서 자는 펭수 확인

7) (EBS 내부) 펭수 밀착 취재 지속 : 옷장에 있는 펭수 확인

8) (EBS 내부) 펭수 직접 취재 

9) (동물병원) 엑스레이 판독 결과 펭귄임이 밝혀짐


이 에피소드에서는 EBS 이동현 기자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동현 기자가 실제 탐사 보도를 하는 것처럼 펭수를 밀착 취재하는 모습이 극의 전개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펭수가 알고 싶다> 에피소드에서는 기자의 밀착 취재 스토리가 세계관을 강화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기자는 “펭수가 카메라가 켜져 있을 때만 펭귄 일지 모른다는 의혹이 퍼지고 있다”는 의혹을 적극적으로 취재한다. 펭수와 닮은꼴인 ‘사람’ 두 명을 찾아가 인터뷰했고, 잠입 취재 형식을 빌려 펭수를 밀착 감시한다. 성과가 없자 결국 직접 인터뷰를 시도한다. 기자가 실제 취재하여 리포팅을 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결국 엑스레이 촬영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전문가(수의사)가 엑스레이 촬영 결과를 보더니 “펭수는 펭귄이 맞다”라고 진단한다.


이 에피소드는 “펭수는 펭귄이다”, “펭수는 펭수다”라는 세계관을 공고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펭수가 직접 나와 구독자들에게 영상 편지를 띄운다. 펭수는 펭귄이 맞으며, 펭귄 그 자체로 사랑해 달라는 메시지다. 이제 우리는 펭수가 인형탈 연기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눈치 챙겨”라고 하면서 펭수를 펭수 그 자체로 사랑해달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펭수는 뭐다? 펭수다.


펭수의 세계관을 존중하는 방식


이렇게 구축된 세계관은 이제 <자이언트 펭TV> 제작진의 것만이 아니다. 팬들 또한 펭수의 세계관을 지키고 확장해나가는 데 동참하고 있다. 그렇기에 펭수의 세계관을 존중하지 않는 타 방송사의 일부 연예인들에게 펭수의 팬들이 항의하는 일도 벌어진다. 펭수를 ‘인형 탈 쓴 연기자’로 대하면서 펭수 내장(?)의 정체를 밝히려고 하거나, 펭수의 성별을 남녀 중에서 확정하려고 하는 등 세계관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를 비판한다. 


반대로, 펭수의 세계관을 존중하며 펭귄을 펭귄으로 대하는 출연자들은 큰 호응을 얻는다. <여성시대>의 진행자인 개그맨 서경석, 가수 양희은이 대표적이다. 펭수를 그 자체로 대하면서 펭수가 평소 좋아한다고 말한 녹차와 빠다코코넛을 준비하여 펭수와 펭수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여성시대> 방송분에는 “펭수의 세계관을 존중해줘서 고맙다”, “게스트를 배려하면서 부드럽게 진행해서 좋다”, “우리 펭수를 펭격적으로 대해주신 여성시대 관계자분들 감사하다” 등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펭수의 세계관을 존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펭수를 펭수로 대하면 된다. 




저도 펭수한테 쓰담 받고 싶어서 한 번 그려보았습니다.


매거진 <펭수의 미학>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펭수가 제 글을 볼 때까지 발행합니다. 성덕이 되고 싶습니다. 펭수가 제 글을 볼 수 있도록 공유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펭수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의 좋아요댓글도 큰 힘이 됩니다. 

펭수 일러스트를 배경화면으로 사용하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그라폴리오 (클릭)에서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PC용 배경화면과 모바일용 배경화면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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