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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뢰딩거의 나옹이 Nov 08. 2019

퇴사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없는 사람

본 글은 제가 퇴사를 경험하면서 퇴사할 수 있는 사람과 퇴사할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해 본 글입니다.


글쓴이는 27살, 그리고 34살에 각각 퇴사를 감행하였다. 두 직장 모두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 직장이었다. 고용 안정성이 매우 높았다. 첫 직장을 그만둘 때에는 이직할 곳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고, 다시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그만두었다. 공백 기간은 1년 5개월로 다소 길었다.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둘 때에는 프리랜서로 살기 위한 방향성을 가지고 퇴사했다.


내가 퇴사한 이유


내가 최근 퇴사한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100세 시대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보통은 사람 때문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 같은 경우는 일 때문에 퇴사를 고민하게 되었다. 공공기관이다 보니 순환보직으로 인사가 이루어졌다. 순환보직이 아니더라도 일적으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단순 반복 업무가 많았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업무에서 전문성을 발휘해보겠다고 관련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업무적으로 전공 지식을 써먹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면 이직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특수한 업무를 하는 기관이었기 때문에 동종 업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 이직 기회는 닫혀 있었다. 내 경력이라는 것은 그 어떤 기관에서도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업무였다. 퇴사율이 거의 0에 수렴하는 회사였는데, 그 이유는 회사가 진짜 좋아서가 아니라, 갈 데가 없어서였다. 선배들은 신입사원이 새로 들어오면 "도망쳐"라고 말하곤 했다.(그 말을 하는 본인은 도망치지 않고 계속 다닌다는 게 함정) 나이가 어리다면 신입직으로 입사를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3년 이상 일하면 경력직 이직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대충 정년까지 일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30년간 단순 반복 업무만 해서 바보가 된 상태로 남은 30~40년의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은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는 것에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곤 한다. 당연히 무언가가 보장되지 않는 것보다는 보장되는 편이 좋다. 그런데 '정년 보장'의 속살을 들여다봐야 한다. 60세 정년이라는 것은 인간의 수명이 70세 전후였을 때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은퇴하여 10년 정도 소일거리 하다가 죽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은퇴 이후에 내가 회사를 다닌 만큼의 기간(약 30년)의 삶이 더 이어진다. 소일거리나 하며 보낼 수는 없다. 공공기관에서 33년간 재직하시다 정년 퇴임하신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 아버지는 다니던 직장에서 빠르게 승진하여 보직을 일찍 다셨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 회사에서 인정을 받다 보니 회사일에 몰입했고,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소홀했다. 회사원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사신 아버지는 정년퇴직 후 많이 우울해하셨고, 안타깝게도 많이 늙으셨다. 나는 아버지보다 더 적은 돈을 가지고 더 오래 살게 될 것이 뻔했다. 나는 결국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퇴사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퇴사할 수 있는 사람 


회사에는 독서모임을 가장한 사실상의 퇴사 모임이 있었다(제가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10여 명의 멤버 중 퇴사를 감행한 사람은 글쓴이뿐이다. 앞으로 멤버 중 퇴사자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현재까지는 없다. 같은 조직 내에서 같은 고민을 하며 퇴사를 꿈꾸지만 누구는 실행에 옮기고, 누구는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돈'보다 중요한 요인이 있다. 그래서 고찰해보았다. 퇴사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지.


1) 인생에서 성취를 해본 사람


퇴사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퇴사를 하면 당장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함과 동시에 끊임없는 불안감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인생에서 성취를 해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성취가 크든 작든, 내가 인생에서 주도적으로 목표를 성취한 경험이 있는지가 퇴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인생의 각 길목에는 성취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 있게 마련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대입, 취업, 사업적 성공 등 사회적으로 '성취'라고 여겨지는 기준이 있다. 이런 동일한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못마땅하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쟁취한 경험은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바꾼다. 대학생 때 어떤 직업적 목표를 가지고 준비를 했는데, 그것이 좌절된 사람과 그것을 이룬 사람은 향후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 나는 비교적 긴 기간인 3년 동안 소위 언론고시라고 불리는 언론사 입사 준비를 했고, 메이저 언론사에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이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지금의 내가 어떤 결정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내 무의식에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실패하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회사 내 퇴사 모임의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퇴사를 간절하게 원한다고 하면서도 결국엔 대다수가 언론고시에 떨어졌던 경험을 꺼낸다. 나는 솔직히 그깟 언론사 시험에 떨어진 것을 스스로 '실패'라고 치부하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대화는 꼭 그 얘기로 끝났다. "제가 언론고시도 안 됐어서...", "지금 다시 도전하기엔 늦어서...", "전 아마 안 될 거예요..."


나의 경우에는 내가 원해서 언론사에 들어갔고, 내가 원해서 언론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내가 원해서 공공기관에 들어갔고, 내가 원해서 공공기관을 그만뒀다. 내 인생에서 각각의 과제에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시작'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미련이 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시작하지 못했기에 끝도 없고, 자꾸 과거를 향한다. 그만큼 자신을 믿기도 어렵다. 퇴사를 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2) 뚜렷한 목표의식과 방향성이 있는 사람


하지만 지금까지 성취가 없었다고 해서 퇴사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은 회사에 다니다 퇴사한 한 선배가 있다. 이 선배는 오랫동안 사법고시에 도전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공공기관에 입사했다. 입사한 나이가 34살이었다. 결혼도 했고 애도 둘이었다. 그런데 35살이 되던 해 로스쿨에 합격함과 동시에 퇴사했다. 지금은 변호사가 되어 대형 로펌에서 일한다. 늦은 나이였음에도, 가정이 있었음에도 퇴사했다. 이런 경우는 인생에 있어서 목표의식과 방향성이 매우 명확했기 때문에 많은 제약조건이 있음에도 새로운 길로 나아간 것이다.


꿈을 찾기 어렵다고 하는데, 누구나 인생에 목표가 있다. 드러내고 말하지 못할 뿐이지 내면에는 모두 원하는 바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자신의 '결핍'에 주목하는 방법을 쓰는 것을 추천한다. 나에게 결핍되어 있는 요소는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쉽게는 내가 어떤 사람에게 질투를 하는지 보면 된다. 이렇게 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방향성을 찾고, 이것을 구체화시켜 나가다 보면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을 붙잡고 있다면, 방향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지금 타고 있는 트랙 위를 계속 달릴 건지, 이탈해서 새로운 트랙을 탈 건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방향성'이다.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분야의 배움을 더해 사람들을 돕고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퇴사했다. 미래의 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볼 수 있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도 이 방향성만 명확하다면 퇴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나 퇴사할까, 말까" 물어보지 않는 사람 


퇴사는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없다. 그런데 이 질문을 계속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퇴사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퇴사할지 말지를 누구한테 물어볼 정도면 자기 확신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회사를 그만둘지 말지 진지하게 고민이 된다면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대화를 해야 한다. 나는 1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자아 탐색을 했다. 8절지 스케치북에 한가운데 '나'를 써놓고 마인드맵을 그리는 짓까지 했다. 자신과 대면하는 일은 너무 고통스럽다.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모두 기록해 두었는데, 당시의 생각의 흐름에 대해서도 이 공간에서 자세히 풀어보려 한다.


자신과의 대화가 끝났다면 그냥 결정하면 된다. 퇴사할지, 말지. 물론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친한 친구들에게는 전혀 알리지 않은 채 사표를 제출했다. 회사 동기들에게는 사표를 제출하기 전날 알렸다. 퇴사는 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지, 주변 사람들과 상의해서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공기관에 대해 궁금하시거나, 저와 이야기 나누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구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아요댓글도 큰 힘이 됩니다.

일러스트도 계속 그려서 올릴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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