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그리고…
며칠 전 외삼촌께서 돌아가셨다.
왕례가 잦았던 게 아니다 보니 딱히 슬프거나 하진 않았다.
집에서 장례식장까지의 거리는 약 300km.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외가 쪽은 7남 1녀 중 여섯째였던 엄마를 제외하고는 전부 남자형제뿐이다
이번에 돌아가신 외삼촌은 넷째 외삼촌이다.
이미 여든이 넘으신 연세에 그전부터 많이 편찮으셔서 그런지 다들 이렇다 할 슬픔의 모습을 내비치진 않았다.
(그래도 직계 자식들은 많이 슬퍼했으리라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누나의 학교 동료들
수간호사였던 여동생의 병원 의사, 간호사 동료들
대기업 다니는 남동생의 직장 동료들
그리고 이름만 대면 아는 공기업 다니는 사위들의 직장 동료들
지방 병원이긴 하지만 그 병원에서 가장 큰 실을 대관했고, 화환도 족히 50개는 되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인사를 하고 슬픔을 나누었다 (나누었지만 나누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누워서 아무 말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다.
외삼촌은 육신만 존재할뿐 어떠한 미세한 움직임도 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외삼촌이 살아 앉아서 봤다면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간다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니까…
일 때문에 그렇게 오랜 시간 앉아 있지 못하고 나는 금방 일어났다
전기차를 타고 왔기에 올라가면서 단양 휴게소에 들러 충전을 하며 주변을 걸어보았다
충전을 하려면 40여분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여유 있게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휴게소 건물 좌측 뒤편에 산책로가 보여서 따라 걸어봤다.
산책로 끝에는 작은 쉼터가 있었고
쉼터에서는 고속도로 반대편으로 호수가 보였다
‘충주호’
시간은 대략 5시경 해가 산 뒤로 녹아들어 가고 있었고
충주호의 호수에 반사된 햇빛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그곳에는 충주호가 생기면서 발생한 단양의 이주민들에 관하여 쓰여 있었다.
이제는 실향민이 되어버린 그들이 어디로 어떻게 흩어졌는지 어떤 사람을 살고 있는지..
멍하니 호수를 바라보다가 외삼촌을 떠올려보았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 그의 존재는 이제 없어졌다.
‘소멸’
한 인간으로서 살아온 80여 년의 인생의 공간이 이제 소멸되었다.
그가 밖에 나가서 일하던 논과 밭도
그가 만나서 친구들과 나누던 이야기들도
그가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던 식탁도
그가 손잡아 주고 놀았던 아들, 딸, 손주, 그리고 그의 아내까지도
외삼촌과 함께했던 공간과 시간은 이제 더 이상 그와 어떤 것도 함께 할 수 없는 소멸된 공간과 시간이 된 것이다
나도 핸드폰 어플로 특정 이미지를 지우듯 내가 없어지는 상상을 해보았다.
내가 일 하던 곳에서의 나를 지워보고
내가 밥을 먹던곳에서의 나를 지워보고
내가 가족들과 함께 밥 먹던 식탁에서 나를 지워보고
내가 손잡고 놀아주던 나의 아들과 아내의 모습을 남겨둔 나를 지워봤다.
기분이 묘해진다.
나는 존재하지만 상상하는 나의 ‘공간의 소멸’은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조용히 ‘태어남’이라는 ‘시작’에서 ‘죽음’이라는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내가 차지하고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 차지하게 될 공간에 대해서 한번 눈을 감고 가만히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