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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파걸 Oct 22. 2021

와인도 사람도 '결혼' 그거 꼭 해야 하나?

함께해서 더 좋은 것, 마리아주(Mariage)


언니, 결혼은 꼭 해야 할까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동생들이 자주 물어보던 질문이다. 30대에 진입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과 비혼 사이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결혼을 권장하는 편이다. 와인을 마실 때 잘 어울리는 음식을 곁들이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와인에는 '마리아주(Mariage)'라는 표현이 있다. 프랑스어로 '결혼'을 의미하는데 음식과 와인의 환상적인 궁합을 일컫는 말이다. 궁합이 잘 맞는 음식과 와인은 양쪽의 맛을 증폭시켜준다. 음식은 와인의 매력을 이끌어내고, 와인은 음식의 맛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리고 이 것은 1+1=2가 아니라 3이나 4 혹은 그 이상까지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한 마디로 '함께해서 더 좋은 것'이 '마리아주'다. 사람도 함께해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나면 혼자일 때 보다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


하지만 반대로 '함께해서 더 좋지 않다'면 굳이 함께 해야 할까?


예를 들어, 집에 값비싼 부르고뉴 그랑크뤼 와인이 있다. 와인에 어울릴만한 음식이 있다면 당연히 음식과 함께 마시는 것이 좋겠지만 아귀찜처럼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만한 음식밖에 없다면 나는 그 와인을 마시는 걸 미루거나 와인만 따로 마실 것이다.


그 귀한 와인을 굳이 아귀찜과 먹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귀찜의 강한 맛은 와인의 섬세하고 풍부한 풍미를 모두 날려버리고, 와인의 알코올은 아귀찜의 매운맛을 더 두드러지게 해 서로의 맛을 해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까워서 눈물이 난다. 그냥 와인만 마셨더라면 그 황홀하고 아름다운 풍미를 즐기며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텐데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돈이 많은 사람 중
누가 결혼 상대로 더 나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결혼 상대는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누가 더 좋은 상대인지 판단하려면 일단 '나'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최고의 결혼 상대'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같은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돈'이란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는 사람마다 각각 다를 것이다. 

세상에는 물욕이 별로 없고 감정적인 교류가 더 중요한 사람도 있고, 깊은 애정이나 감정적 교류가 없어도 물질적으로 풍요롭다면 행복해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돈이 아주 많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다정하고 표현을 많이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행복할 확률이 더 높다. 반대로 후자의 경우라면 조금 무뚝뚝하더라도 경제적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만났을 때 행복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상대방이 어떤 장점을 갖고 있을 때 더 행복할 수 있을지 한 번 생각해보자. 




'와인'도 음식과 좋은 궁합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와인과 음식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조건이 아주 좋은 사람 둘이 만나 결혼하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되지는 않듯이, 최고의 와인과 최고의 음식을 페어링 한다고 해서 최고의 마리아주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굴에는 '샤블리(Chablis)'라는 지역에서 만들어진 화이트 와인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한다. 



왜냐하면 샤블리 지역의 토양 자체가 굴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토양은 원래 깊은 바다였는데 지각변동을 거쳐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굴 껍데기 화석들이 많이 묻혀있다. 그 굴 껍데기들은 토양에 미네랄 성분을 제공하고, 그 미네랄을 포도나무가 흡수하며 자란다. 굴의 성분을 한껏 흡수하며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이니 당연히 굴과 잘 어울릴 수밖에.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 '일반' 샤블리에는 굴이 잘 어울리지만, 가격이 더 비싼 '그랑크뤼', '프리미에 크뤼'같은 고급 샤블리에는 굴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 샤블리는 단순한 스타일로 양조하여 포도의 순수한 특성을 주로 보여주지만, 고급 샤블리는 오크통에서 숙성을 시키기 때문에 산미가 약해지고 상큼함보다는 숙성된 풍부한 맛이 느껴진다. 그래서 굴의 비린 맛을 잘 잡아주지 못한다. 


이처럼 무조건 비싸고 좋은 와인이 더 좋은 궁합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럼 궁합이 잘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합이 잘 맞는 만남에는 몇 가지 공식이 있다. 사람도 비슷한 사람끼리 잘 어울릴 확률이 높듯이, 와인과 음식도 비슷한 면이 많을수록 잘 어울린다. 



#1 음식 재료와 와인의 색


음식과 와인의 가장 유명한 공식은 '고기에는 레드 와인,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들여다보면 '음식 재료와 와인의 색'을 맞춘 것이다. 무조건 모든 고기에 레드와인이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소고기', '양고기'와 같이 붉은 육질의 고기는 레드와인과 참 잘 어울리지만, '닭고기', '돼지고기'와 같이 흰색 육질의 고기는 화이트 와인과 더 잘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어? 그럼 참치나 연어처럼 붉은 살 생선에는
레드 와인이 더 잘 어울리나?


과실 향이 강한 가볍고 묽은 레드 와인이나 섬세한 로제 와인은 오히려 밋밋한 화이트 와인보다 잘 어울릴 때도 있다. 특히 날 것보다는 구운 연어 등 맛의 풍미를 높여주는 조리법으로 만든 요리가 더 잘 어울린다. 


하지만 가능하면 생선에 묵직한 레드 와인은 피하도록 하자. 레드 와인이 가진 성분 중 하나인 '타닌'이 생선 기름과 만나면 불쾌한 금속 맛이 나면서 비린맛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레드 와인이나 묵직한 풀바디 레드 와인은 굉장히 많은 타닌을 갖고 있다. 


참고로 흰 살 생선에 신 맛이 강한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는 건 생선에 레몬을 뿌리는 것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생선에 레몬을 뿌리면 그 맛이 더 살아나지 않는가? 그래서 붉은 살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도 제법 잘 어울린다. 


위의 예시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사실 와인을 꼭 '재료'에 맞출 필요는 없다. '조리법'이나 '소스' 등 음식의 <지배적> 요소에 맞춰 페어링해야 한다. 한 마디로 맛에 영향을 가장 많이 주는 요소에 맞춰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소스를 곁들인 육류 요리는 소스의 맛이 더 강하기 때문에 소스에 맞춰서 와인을 페어링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조리법의 영향도 생각보다 크다. 같은 굴 요리라고 해도 '생굴'에는 오크 터치가 없는 신선한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리지만, '구운 굴' 요리에는 오크 터치가 가미된 묵직한 화이트 와인이 더 잘 어울린다. 



#2 체급 (무게감) 


음식과 와인의 힘은 비슷해야 한다. 가벼운 음식에는 가벼운 와인을, 무거운 음식에는 무거운 와인을 곁들이는 것이 좋다. 사람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갑질을 하게 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지 않은가? 


예를 들어, 버터가 듬뿍 든 매쉬 포테이토나 크림소스를 베이스로 한 음식은 대체로 풍미가 무척 풍부하며 질감도 무거운 편이다. 가볍고 섬세한 스타일의 와인을 곁들이면 음식에 압도되어 존재감이 약해질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음식은 똑같이 부드럽고 크림 같은 질감을 지닌 묵직한 화이트 와인과 아주 잘 어울린다. 


음식의 맛과 향, 풍미 등이 풍부할수록, 와인도 풍부해야 음식에 압도당하지 않고 본연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3 지역 


이탈리아 음식에 이탈리아 음식을 곁들이는 것처럼 와인과 음식이 만들어진 '지역'을 맞추는 것도 좋다. 

와인과 음식은 항상 함께 발달해왔다.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은 대체로 먹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요리사들은 그 지역의 식재료로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과 잘 어울릴만한 음식을 만들어왔고, 와인 생산자들은 최대한 음식과 잘 어우러질만한 와인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같은 곳에서 나고 자란 음식과 와인은 잘 어울릴 확률이 무척 높다. 


예를 들어, 마르게리타 피자에는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라는 이탈리아 와인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 이 와인은 토스카나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인데 산도가 무척 높은 편이다. 그래서 토마토소스처럼 신 맛이 강한 음식과도 균형을 잘 이루며 음식의 감칠맛을 돋궈준다. 



#4 가격대 


가장 쉽고 보편적인 공식은 '가격대'를 맞추는 것이다.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에는 캐주얼하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와인을 곁들이는 것이 좋고, 코스 요리 같은 정찬에는 세련된 고급 와인을 곁들이는 게 어울린다. 마치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춰서 옷을 입는 것과도 같다. 패스트푸드점에 포멀 한 고급 정장을 입고 가는 것은 조금 아깝지 않은가? 



참고로 이 공식을 절대적으로 지킬 필요는 없다. 이렇게 비슷한 면을 찾아 짝짓는 것이 가장 쉽고 성공률이 높지만, 가끔 정 반대인 사람이 끌리는 경우가 있듯이 풍미와 질감이 전혀 다른 것을 짝지었을 때 좋은 궁합이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한 이후, '여유로운 시간'과 예전처럼' 값비싼 음식과 와인을 먹는 빈도수'는 줄어들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이 생겼고 생각지도 못한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 배려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찬물로 샤워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이 항상 샤워가 끝난 뒤에는 다음에 샤워할 나를 위해 뜨거운 물로 바꿔놓는 걸 알았을 때
무심코 맛있다고 했던 음료수가 어느 날 냉장고에 빼곡히 쌓여있을 때
닭고기를 먹는데 내 접시에 닭다리 두 개가 모두 놓여있을 때


이런 무수히 많은 뭉클한 순간들이 일상을 수놓는다.


미혼 시절의 나의 삶이 비싸고 맛있는 고급 와인을 단독으로 즐기는 것이라면,

기혼이 된 나의 삶은 시원한 소비뇽 블랑에 따끈한 파전을 먹는 것과 같다.

값싼 평범한 와인과 평범한 음식이지만 너무나 행복한 마리아주를 보여주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어느 삶을 선택하던, 그것은 본인의 몫이다.

사실 환상적인 와인을 단독으로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굳이 어울리지 않는 와인과 음식을 먹는 것보다는 훨씬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니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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