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차가 까마득한 07년식 붕붕이의 '뒷 브레이크 패드'를 교체했어
어언 10년 세월, 12만 키로를 뛰는 동안 적어도 수만 번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우리 가족이 탄 붕붕이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알뜰히 자신의 몸을 닳고 갈아온 그 아이
철제 패드는 비죽이 솟아난 회색 엄지손톱 만치 가느다란 두께 남겼지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갈려나갈 때마다 삐이익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대기 일쑤였어
한 달 전부터 오늘은 간다 간다 마음만 동하다가
마침내 오늘 작심하고
동네 정비소를 찾아 새로운 아이로 교체하니
붕붕이도 기분이 좋은 듯 평소보다 더 잘 나가는 듯해
새 브레이크 패드가 아직 길이 덜 들어 횡단보도 앞 갑작스레 서면
살짝 밀리는 기분 들지만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모난 부분이 둥글게 깎여 제때 서 줄 거라 믿어본다
평소 꾸미고 치장하는 걸 싫어하는 내 성격이 차 안팎 묻어나
흠집투성이 뽀얀 흙먼지가 내려앉은 붕붕이지만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전에 즐겨 찾는 주유소 들러
자동세차 한번 시켜줄까 생각 중이야
2.
만약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당신을 다시 선택할 수 있을까?
네버, 아니라고 봐
난 차라리 자진하여 폐차장으로 들어가 구겨진 고철이 될 운명을 택하겠어
당신과 나는 전생에 어떤 악연이었길래 현생에 이토록 터프한 만남을 이어가는 건지
공도에서 마주치는 다른 아이들은 주인이 틈만 나면 씻겨주고
오일도 자주 바꿔주고 해 바뀌면 타이어도 신상으로 선물하고
상전 모시듯이 대접하는 통에 우쭐거리며 돌아다니는데
난 이 꼴이 대체 뭐냐고
에어컨만 틀면 실내에 먼지가 풀풀 일어나고
바닥엔 아이들이 흘린 과자 부스러기에 낙엽 쪼가리가 이리저리 굴러다녀
따뜻한 물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비누칠하고 머리 감아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해
내구성 투철한 나 정도 되니까 이런 홀대를 참아주고 견디는 거야
이럴 거면 진즉에 팔아치우고 다른 인연을 만날 것이지
왜 나한테 매달려서 이런 생고생을 시키냐고
하긴 당신 능력이 받쳐주었으면 난 이미 새 인연을 만나 멋진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겠지
선루프를 활짝 열고 쐐한 바닷바람을 가득 받아들이는 어느 화창한 날을 꿈꿔
당신과 영원토록 로맨틱한 순간을 함께 할 것을 맹세했건만
우리도 이제는 나이가 들었고 예전 같지 않아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처럼
당신은 Y백 칠 때까지 풀악셀도 과감하게 못 밟고
촘촘히 차가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킥다운을 하며
칼치기를 거듭할 담력은 사라진 지 오래야
나 또한 당신의 박력 있는 급가속과 다운시프트를 감당할 튼튼한 심장과 혈관을 영원히 유지했으면 해
허나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말이지
난 언제든 심장 마비가 와서 견인차에 실려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라고 봐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우리를 더 이상 떨어지지 못하게 한 몸으로 옭아매고 있어
당신의 가족들도 날 처음 만난 당시엔 코너를 돌 때마다 멀미를 하고 영 불편해하더니
어느새 제2의 집인 것처럼 편안해하더군
시트 뒤에 새겨진 아이들의 희뿌연 발자국과 뽀로로 스티커는 영원히 지워지질 않을 테지
오늘 쌓이고 쌓인 울화통이 터져 이런저런 말이 길어졌지만
(당신의 졸음 가득한 눈망울이 안쓰럽군)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야
날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감정'을 조금이라도 떠올려 잘 대해줬으면 해
주말 드라마에 등장하는 화려한 여주인공처럼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야
당신에게 재운이 돌아와 대박이 터져서 날 떠나보내거나
내가 되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 폐차장으로 실려갈 때까지는
매일 시동을 걸 때마다 핸들 위에 기어봉에 가끔은 보닛 위에
손을 얹고 내 떨리는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해
평소와 다름없다면 성호를 그어 오늘도 무사히 안전하게
이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빌어줘
그러다가 가끔은 오한이 든 것처럼 골골대고 벌벌 떠네
이러면 날 안고 가까운 정비소로 데려가 줘
운명이 허락한다면 내 마지막을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참 심플하지
3.
진심 어린 고백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날 무심하게 방치한다면
어느 날 아침 당신이 주차장에 내려왔을 때, 바닥에 드문드문 떨어진 시꺼먼 오일 자욱만 남은
텅 빈자리를 마주하게 될 거야
내 말 잊지 마
명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