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널다가
빨래 널린 풍경도 copy & paste 하고 싶어
by
라미루이
Nov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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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끝으로 박자를 맞추는 드럼
세탁기가 낯익은 멜로디를 건네며
참다못한 구역질 뱉어낸다
끝없는 목 돌리기를 멈추고
아가리 열어 토악질한 결과물이란
서로서로 팔다리를 껴안고 널브러진 빨래들
엉킨 사족의 매듭 속시원히 풀어보자
정이 넘치는 빨래들 하나씩 널어볼까
아이의 애끼 발꼬락 얼굴을 내미는
빼꼼한 양말 구멍이 허리를 접는다.
언젠가 지린 똥이 문신으로 남은 팬티 한 장
볕을 향해 구겨진 낯짝을 팽팽하게 당긴다
아이들이 부쩍 커가는 만큼
빨래들도 함께 자라난다
아이들이 흙바닥에 자빠지고 뒹굴면
빵꾸나고 해지고 멍
이 든 속 좁은 빨래들은
세탁기 통에 영원히 숨고 싶을 테지
양팔 치켜든 건조대의 창살은
빈틈없는 매진의 연속
하지만 언젠가는 휑한 좌석만 스크린을 바라보겠지
시끌벅적한 웃음소리
퇴장하고
북적이는 신발장
의 조명 꺼지면
무게를 잃고 사지 늘어뜨린 건조대
영원히 마르지 않을 외로움 널
리겠지
매일매일 빨래 널린 풍경을 고스란히 카피하고 싶어
세탁기의 마지막 킬링 비트가 멈추는 날
바짝 마른 건조대 앙상한 가지 사이사이
푸른 잎새 걸어놓듯 그대로 베껴 전시하고 싶어
우리가 그날그날 빼곡한 삶을
차곡차곡 널었노라고
벌써부터 휑하면 안 되는데..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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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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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
Brunch Book
되돌아보는 시작
11
캐지도 않은 네 뒤를 보고 싶어
12
'솔'이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13
빨래를 널다가
14
그날 알래스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15
줌(Zoom) 수업에 모인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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