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이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by 라미루이





2011년 9월 18일 호암아트홀, 그가

만삭의 아내와 로시니의 오페라 '오리 백작'을 보던 날

쓰리섬을 펼치는 베드신의 아리아를 들으며

엄마의 배를 똑.. 똑. 노크한 아이


다음 날 아침

뜨듯한 양수를 막은 둑을 삽시간에 무너뜨릴 거라는

세심한 경고였다는 걸 10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손가락만 한 물고기 엄마 뱃속 자유로이 훨훨 헤엄치다가

불쑥 커버린 덩치에 비좁은 궁 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오랜 기다림의 막바지 다다른 아이

저려 오는 다리 쭉 뻗으면 엄마의 늑골이 비명을 삼켜

에누리 없는 300일 흥정 끝에 기지개 켜면

엄마는 발걸음 멈추고 네 손 끝을 느끼곤 했다


가만가만 흘러내린 양수에 담긴 흔적 거슬러 올라온

악어의 등갑 위에 올라 타 유유히 헤엄쳐 온 아이


진녹색 가운을 걸친 누군가

벌겋게 달군 가위 건네며 아이의 탯줄 자르라 했지

잠시나마 망설임 없었다면 그건 순 거짓말

질긴 연줄 도저히 끊을 수 없다면 만약 끊지 않는다면

당신이란 존재는 일체의 후회 없이 미련도 없이

無로 돌아가는 건가요?


결국 그는 가위를 들지 못했다.

대체 어떤 두려움의 파도가 그를 삼킨 걸까?

아이는 분노에 가득 찬 아리아를 부르며

가위 뺏어 들고는 자신의 탯줄을 휘어잡아

번득이는 날 사이에 넣더니

싹둑!


동강 잘린 금줄 사이 흘러내리는 악어의 눈물

그렇게 아이는 전생을 물고 늘어진 업보

깡그리 끊어내 현생에 자신의 첫울음 새겼다

아이는 만인이 따른다는 의미의 '솔率'

그리 이름 지어졌고


그는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끼다가 피 묻은 가위 들어

자신의 머리칼 그러모아 남김없이 자르고는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