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로 시청하고 현장에서 직접 관람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실제로 즐기는 스포츠가 있나요?
난 이 질문에 그다지 오래 고민하지 않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바로 '농구'이다. 남자들이 주로 즐기는 축구나 야구보다 난 농구가 어려서부터 흥미를 끌었다.
축구는 전, 후반 45분 동안 경기에서 뛰는 선수들의 반칙이나 부상 등을 제외하면 흐름을 끊는 일체의 작전 타임이나 광고가 없다는 면에서 박진감이 넘친다. 하지만 실제로 터지는 골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많지 않아(0:0 스코어도 비일비재하다) 한 골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패스와 드리블, 세트 플레이를 통해 조립하는 과정이 내게는 지루하게 다가왔다. 단순히 내 취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축구 애호가 분들은 일개 개인의 의견이라 치부하고 지나가면 되겠다.
반면 야구는 축구나 농구에 비해 경기 템포가 한없이 루즈하게 흘러갈 때가 많다. 투수와 타자 사이의 신경전, 일구 이구 던지는 사이사이의 숨 고르기, 위기가 닥치면 코치나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고 결국 투수가 교체되면 어김없이 광고가 경기의 흐름을 잘라먹는다. 1회 초부터 9회 말까지 공수가 교대될 때마다 이어지는 광고 러시는 현장에 앉아 있든 거실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든 맥주를 페트병 째로 마시다가 중간중간 낮잠을 즐기기 딱 좋은 유형의 스포츠라 할 수 있다. 물론 최근에는 투구 사이의 인터벌을 줄인다든지 코치진이 마운드에 올라오는 횟수와 시간에 제한을 둔다든지 하는 전체 플레이 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게는 명승부와 꿀잼이 보장된 라이벌전이나 플레이오프전이 아닌 정규 시즌 야구 경기를 9회 말까지 온전히 지켜보는 것은 고역에 가깝다. 물론 이 의견은 내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다.
하지만 농구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상대적으로 좁은 코트에서 속공이 펼쳐지는 경우가 많아 대량 득점이 이루어진다. 수비에 비중을 덜 쏟는, 공격 위주의 팀끼리 붙는 경우 NBA(미국 프로농구)라면 130점에 근접하는(두 팀 도합 300점에 근접하는..) 화끈한 난타전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올해 NBA 올스타전은 쿼터나 시간제한을 두지 않고 무려 '170점'을 먼저 넣은 팀이 승자가 되는 것으로 룰을 정했다. 덕분에 지난 8일 열린 올스타전은 하프라인 근처에서 '데미안 릴라드'가 마지막 로고 샷을 넣은 '르브론 팀'이 '듀란트 팀'을 누르고 최종 승자가 되었다.
또한 농구는 작전 타임이나 반칙으로 인한 자유투 등 중간중간 인터벌이 있긴 하지만 경기를 보다가 소파에서 스르륵 잠들 정도로 긴장감이 떨어지진 않는다. NBA의 경우 24초 동안 개인 드리블로 제치고 골밑으로 파고들거나, 날카로운 킬패스를 코트 안으로 찔러주던지 먼 거리에서 딥 쓰리를 꽂아 넣던지 어떻게든 점수를 올려야 하기에 시종일관 터질 듯한 긴박감이 경기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실력 차이가 분명한 팀이 붙을 경우 4 쿼터가 시작되기도 전에 점수 차가 크게 벌어져 가비지 경기로 흘러가는 경우도 많으니까..)
어찌했든 농구가 속도감을 즐기는 내 취향과 맞아떨어졌고, 어려서부터 이 스포츠를 어떻게 접해야 할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이 국내 성인 선수들이 뛰는 것을 보는 것으로 입문했다.
80년대 아버지는 주말 오후에 농구대잔치의 주요 경기를 티비를 통해 종종 보곤 했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열성 팬이셨던 아버지는 해태의 경기가 없거나 일찌감치 승부가 결정된 상황에서는 미련 없이 채널을 돌려 농구 경기를 시청했던 것이다.
초창기 농구대잔치는 83년부터 88년까지 현대의 이충희와 삼성전자의 김현준이라는 걸출한 라이벌 슈터의 등장으로 제대로 군불을 지폈다. 각각 슛도사와 전자슈터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현대와 삼성전자를 번갈아 우승시켰다. 이 와중에 진초록색 유니폼으로 유명했던 중앙대에는 허재, 김유택, 한기범 등이 소속되어 대학 리그를 평정하더니 급기야는 기아자동차(당시 기아산업)에서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당시 실업 농구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허동택'이라는 이름을 지면이나 티비에서 자주 접했을 것이다.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도 이루지 못한 5 시즌 연속 우승(88년부터 93년까지, Five-Peat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을 일궈낸 기아자동차의 전성기를 빛낸 레전드 트리오의 가운데 글자 '동'은 강동희를 뜻하는 줄임말이다.
최근 <뭉쳐야 쏜다> 등에 출연하며 물오른 예능감을 뽐내는 허재 옆의 빈자리가 왠지 모르게 크게 느껴진다면 그건 강동희의 부재 때문이리라.
대한민국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불렸던 강동희. 그가 감독직을 맡은 후 승부 조작이라는 희대의 불명예스러운 감투를 뒤집어쓰고 농구판에서 영구 제명될 운명이라는 걸 과연 누가 알고 있었을까? 현역 시절 빈 틈으로 찔러주는 송곳 패스와 골밑으로 파고들어 균형을 잃은 상태에서 묘기에 가깝게 공을 올려놓는 레이업, 수비수가 막기 힘든 정확도 높은 미들슛과 유난히 궤적이 높았던 3점 슛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의 퇴진이 무척이나 아쉽기만 하다. 대체 그놈의 돈이 뭔지. 긴 선수 생활로 몇 푼의 돈이 아쉽지는 않았을 텐데 왜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하여 젊은 시절 피땀 흘려 쌓아 올린 명예를 송두리째 날렸는지 궁금할 뿐이다. 아무튼 그는 또 한 명의 걸출한 가드 '이상민'의 전성기 때에도 리그 통산 어시스트 1위를 매년 차지했을 정도로 센스 넘치고 시야가 넓은 코트 위의 야전 사령관이라 불릴만한 선수였다. (NBA로 치자면 존 스탁턴, 제이슨 키드 정도의 위상이 아닐까 싶다.) 그가 국내 농구의 흑역사로 기억되는 것이, 그의 선수 시절 화려한 커리어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 가끔은 허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번 타오르기 시작한 국내 농구 붐은 좀처럼 식을 줄을 몰랐다. 당시 휘문고에는 서장훈과 현주엽이라는 초고교급 선수들이 맹활약을 펼쳤고 각각 연세대와 고려대로 진학하면서 대학 농구 전성시대가 열렸다.
연대에는 국대급 센터 서장훈을 필두로 문경은, 우지원, 이상민 등 호화 라인업을 구축해 현주엽, 전희철, 양희승, 김병철 등이 포진한 고려대를 제압하더니 급기야는 쟁쟁한 실업 팀들을 격파하기에 이르렀다.
대학 팀의 승승장구는 기아자동차로 대표되는 실업 팀들의 노쇠화와 연대와 고대로 대표되는 라이벌 구도로 인한 선수 영입 경쟁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90년대 초부터 서서히 부상한 NBA의 인기와 어린 선수들이 NBA 유명 농구 스타의 플레이 스타일을 모방하고 발전시킨 것이 큰 원동력이었다. 서장훈과 현주엽 등은 어린 시절부터 NBA의 명경기 녹화 비디오를 매일 돌려보며 주요 선수들의 화려한 드리블과 패스, 슛 모션 등을 스터디하는 것이 일과였다고 한다. 대학 팀의 감독들 또한 NBA의 타이트한 맨투맨 수비와 빠른 공수 전환, 센터나 포워드가 페인트존을 집중 공략하다가 외곽으로 킥아웃을 돌리거나 헤지테이션 등 능력치가 높은 1 옵션 선수가 일대일 공격을 감행하는 삼각 오펜스 스타일 등을 벤치마킹하며 실업팀을 공략했다.
한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학 농구의 대흥행은 지금의 광적인 아이돌 팬들을 방불케 하는, 경기장을 가득 채운 열성 팬덤의 지분이 3할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청소년층에 유행처럼 번진 90년대 챔프 코믹스에 연재된 <슬램덩크>의 폭발적인 인기와도 맞물려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표되는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소위 X세대는(참고로 글을 쓰는 나도 X세대라 할 수 있다) <슬램덩크> 신간이 나올 때마다 서점에 나와 장사진을 치고, 책이 너덜 해지도록 친구들끼리 돌려보았다.
채소연이 강백호에게 건네는 첫 대사 "농구... 좋아하세요?"부터 시작하여 "왼손은 거들뿐/난 지금입니다!!/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단념하면 바로 그때 시합은 끝나는 거야/그러나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등 수많은 명대사를 양산하며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심금을 울렸다지.
급기야는 주말에도 학교 운동장 한켠의 농구 코트에 나와 서태웅과 강백호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어설프게 재현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한여름 비가 쏟아지던 농구장에서 빗물과 땀이 뒤섞여 번들거리는 몸을 부딪히며 기진맥진할 때까지 뛰어다니고 턱도 없는 에어볼을 날리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더불어 MBC는 영악하게도 장동건, 손지창, 심은하 등 당대 톱배우들을 캐스팅해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제작하여 밀려오는 파도를 제대로 탔다.
결국 연세대는 어마어마한 팬덤을 바탕으로 체력적으로 지치지 않고, 스킬이 뛰어난 센터와 외곽 슈터 라인업을 구축하여 경기 내내 상대의 빈틈을 파고들어 93~94 시즌 대망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무려 대학팀 최초의 농구대잔치 우승이 되겠다. 파이널 MVP는 같은 팀 문경은과 각축을 벌인 서장훈이 차지했다.
이후 연세대는 96~97 시즌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농구대잔치는 KBL(국내 프로 농구)이 출범하며 상무와 대학팀만이 출전하는 형태로 분리되었다. KBL은 각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팀으로 드래프트 된 주요 선수들이 각자의 기량을 뽐냈지만, 우월한 피지컬을 뽐내는 외국인 용병이 종횡무진 코트를 휘젓고 대학팀의 패기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면서 내 관심 밖으로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흥미를 잃어 가던 국내 농구와는 달리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는 리그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NBA'가 되겠다.
중학교 때였던가. 어느 일간지 스포츠면에 꽤 비중 있게 실린 기사 한 꼭지가 떠오른다.
제목은 "떠오르는 별 마이클 조던과 신이 내린 재능 매직 존슨의 대결"
아마도 매직 존슨이 에이즈(HIV) 양성 반응으로 은퇴 이전에 성사된 91년 시카고 불스와 LA 레이커스와의 파이널을 앞두고 쓴 기사였으리라. 간추리자면 "마이클 조던은 체공 시간 1.8초에 달하는 별명이 무려 갈색 폭격기인 전천후 슈터로 매직 존슨과 레이커스의 아성에 도전하는 신성이다. 이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것이 확실시되는 매직 존슨은 당대의 라이벌 래리 버드가 버티는 보스턴 셀틱스를 꺾고 올라온 사나운 황소의 뿔을 비틀어 꺾을 준비를 마쳤다는 후문이다"라는 내용이 토막토막 기억난다.
짤막한 기사에 벌써 세 명의 레전드급 선수가 언급되었다.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래리 버드.. 그 외에도 수많은 농구 스타들이 코트 위를 밝히며 명멸을 거듭했다. 난 그들의 화려한 플레이와 승패가 결정된 후 좌절하고 낙담하는 패자에게 건네는 승자의 위로가 담긴 제스처를 지켜보며 많은 위안을 받았다. 한창 불안정한 현재를 살고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던 시절에 농구는 내게 버틸 힘을 불어넣어 주었고, 마흔이 넘은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제는 기라성 같은 레전드들의 플레이를 실시간으로 맛본 필자가 그 시절 농구에 대한 애정이 담긴 사적인 기록을 어딘가에 남길 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