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놀이

by 라미루이







1.

어려서부터 편두통을 자주 앓곤 했다

명치를 기준으로 왼쪽 아니면

반대쪽이 바짝 딱지면서

한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다행스레

양쪽 모두 아픈 경우는

거의 없더라


아버지는 괴로워하는 날

바짝 끌어 앉혀서는

널따란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눕혀 내 옴폭한 관자놀이를

검지와 중지 끝으로 지그시 눌러주었다


시계 방향으로 둥글리며

꾸욱 꾹 누르고

반대로 말랑말랑 조무르면

신기하게도 긴장이 풀어지고

발딱대던 맥박이 가라앉아

스르르 잠이 오곤 했었지



2.

이런저런 맘고생에 병치레를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는

내가 서른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되돌아온다는 환갑도

못 치르고 돌아가셨지만

화환 끝없이 늘어선 장례식 마치고

내 마음속 깊이 파묻고 온 날

어김없이

깨질 것처럼 머리 짓눌리던


그날, 새벽녘

유난히 밝은 잠귀에 들리는 기척

불그스름한 그림자

향내 배인 울리며

영영 떠나지 않을 것처럼

서성이다가

긴 잠 못 드는 내 이마도 쓸어내리고

살며시 목덜미도 만져주고 망설이다가

기어코 마지막으로

온기가 꺼져가는 손길

내 관자놀이에 닿자마자

아버지!

부르며 땀에 절은 몸 일으켜

졸린 눈 부비며 두리번거려도

흔적도 없이 그믄 달빛에 실려간

아버지의 혼이여


이제는 저 세상에서

텃밭도 가꾸시고

뒷산도 오르시고 밤새

친지들과 술상도 나누면서

이쪽 세상 잊으셨는지

간혹 못 견디는 두통이 엄습해도

넘 쌩하니 아들 외면하시길래

애꿎은 딸아이 둘 번갈아

널적다리에 모로 눕혀서는

오목한 관자놀이 공굴리며

잦아드는 아이들 아버지 손주들 새근새근

숨소리 듣는 게

요즘 낙이라면 낙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