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정이 그립습니다
2014년 1월 23일, 양평 산당 방문기
얼마 전 '방랑식객'으로 알려진 임지호 선생님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인은 급작스러운 심장마비. 최근까지 <더 먹고 가>에서 강호동, 황제성과 합을 맞추어 다양한 자연식의 세계를 선보였고, 시즌 2를 준비한다는 소식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헛된 일이 되어 버렸다.
산과 들을 헤매다 우연히 마주친 낯선 이를 멀리하지 않고 살갑게 안부를 묻고, 때로는 정성 들여 밥상을 차려 주는 그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배울 점이 많다 여겼다.
먼발치가 아닌 가까이에서 그의 모습을 뵈었던 건 2014년 1월, 양평에서였다.
둘째 연이 태어나기 한 달 전, 네 살배기 솔을 데리고 양평 힐하우스에서 하룻밤 묵던 날.
며칠 전부터 눈이 소복이 내려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 날이었다.
"으드드."
난 일어나자마자 옷깃을 여미고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한이 들었는지 위 아랫니가 부딪혀 딱딱 소리가 난다. 간밤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침대가 좁아서 아내와 솔에게 밀려나 가장자리에서 새우잠을 잔 탓일까? 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툭하면 깨어 침대에서 내려와 찬 바닥에 누웠다가, 의자에도 기대었다가 헤매는 바람에 거울에 비친 몰골이 반시체나 다름없다.
"난 잘 잤는데.. 당신은 얼굴이 말이 아니네."
아내가 뽀얀 얼굴로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내지른다.
"엄마, 엄마."
솔은 엄마 허벅지에 기대어 반쯤 눈을 치켜뜬다.
"어째 난, 모처럼 쉬러 왔는데.. 으슬으슬 떨리고 그러네."
보통 감기는 아닌 듯하다. 물만 마셨는데 속이 뒤집어질 것처럼 메슥거리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고,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린다. 어제 아이와 눈밭에서 멍석말이처럼 뒹굴고, 눈싸움을 하고, 정신없이 뛰다니면서 노느라 기력을 소진한 후유증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침대 위에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다 온통 하얀 세상을 접하자 기운이 솟았는지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난다. 비틀대는 걸음으로 창가로 걸어가 유리창에 콧등을 납작히 누르고는 "눈, 눈!" 거리며 들뜬 소리를 내지른다. 투명한 통유리창이 입을 크게 벌린 솔의 숨결 따라 뿌예졌다가 맑아졌다가 한다.
아이는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나무 의자에 축 늘어진 내게 곧장 다가온다.
"아, 아빠. 나가, 나가아! 지금.."
솔은 내 팔을 붙들고 끌어당기며 당장 나가자고 조른다.
가장 우려하고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아빠도 나가고는 싶은데 지금 도저히 일어나기도 힘든 상황이거들랑.
이를 어쩐다.
"소, 솔아. 아빠 정신 좀 차리고. 아빠가 많이 아파. 에구구."
신음 소리를 뱉으며 의자에서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와 쓰러져 엎어진 아빠 등 위에 망설임 없이 포개져서는 내려올 생각을 안 하는 아이.
"아빠아, 나가자. 눈싸움, 눈사람.. 놀자아!"
웬만하면 나도 아이를 어깨에 한 짐 둘러매고 밖으로 나가 신나게 눈밭을 헤매고 놀고 싶다만, 지금은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다.
"솔아, 아빠가 지금 힘들다니까 이따 놀기로 하자. 대신 엄마랑 놀까?"
방 한켠에 놓인 전화기를 들고 "여봅세요!"를 홀로 외치는 엄마에게 다가간 솔은 수화기를 홱 낚아챈다.
"삐이." 울리는 수화기를 움켜쥐고 엄마를 따라 "여, 여보시."를 외치더니 뚝 끊는 아이. 숫자 키패드를 이것저것 두들기더니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 척, 다시 수화기를 들고 뭐라 알아들지 못할 말을 어버버 내뱉는다.
다시 끊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받기를 수차례. 난 아이가 눈치채지 않게 전화기 연결 케이블을 뽑아 버렸다. 좀체 질리지도 않는 저 집착과 체력은 뭐지. 어제도 전화 놀이에 빠져 1시간 가까이 전화기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울라불라 누군가와 대화하길래 "솔아,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 물었더니 아이는 눈을 깜빡이며 것도 모르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답한다.
"뽀, 뽀로로."
그래, 너희들의 아이돌, 뽀롱뽀롱 뽀통령이랑 직통화한다는데 이해해줘야지. 덕분에 아이가 즐거워하고 나도 잠시 쉴 수 있다면 그게 어디냐. 고마울 따름이지.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큰 줄기가 보이는 양평 힐하우스에서 즐거운 한 때
"뚜캉!"
침대에 누워 못다 한 잠을 메우던 난 깜짝 놀라 전화기 쪽을 바라본다. 솔이 잔뜩 성난 얼굴로 수화기를 내팽개치곤 엄마, 아빠를 노려본다.
"에에, 에. 나가, 나가아!"
"아, 알았다. 나간다. 나가."
아이의 성화에 떠밀려 내쫓기듯 방을 나선 우리들은 가까운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 근처에 꽤 유명한 식당이 있거든. 거기 셰프가 티비에 나오고 유명한 분이야."
"그래? 누군데?"
"방랑식객이라고 하면 알려나. 그분이 요리하는 식당에서 아점을 먹을까 하는데, 어때?"
(그때만 해도 난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한마디로 문외한에 가까웠지.)
아내가 이미 충분한 뒷조사를 통해 섭외한 식당이겠지.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다.
지금 내 컨디션으로는 젓가락도 제대로 못 쥐고 밥상 아래로 떨굴 듯 하지만 차마 굶겠다고, 숙소에 남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당신도 배 따숩게 뭐라도 먹어야 기운을 차릴 거야. 낯빛이 허옇게 질린 게 영락없이 며칠 굶은 사람 꼴이구만. 이따 집에 돌아갈 수 있겠어?"
"엉금 기어서라도 집에는 돌아가야지."
자꾸만 운전대를 거머쥔 손이 풀려 미끄러진다.
잠시 후, 각양각색의 장독대가 옆에 웅크린 길 끝에 산속으로 파고든 품새의 2층 집이 보인다.
가정집의 현관 중문을 닮은 미닫이문 측벽에 "음식은 종합예술이고 약이며 과학입니다."라는 삐둘빼둘한 글귀 옆에 '산당'이라고 새겨져 있다.
"여기 요리하시는 분의 호야. 식당 이름이기도 하고."
문 앞에 멍하니 선 채,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날 보고 아내가 귀띔해 준다.
(산당이라.. 산의 큰 집, 산 중턱 자리 잡은 대청이란 의미인가? 산속에서, 자연에서 살아간당이란 숨은 뜻도 언뜻 보이고..)
구석에 화장실이 딸린 꽤 넓은 온돌방에 자리 잡으니 이른 아침부터 달궜는지 아랫목이 따땃하다. 아내가 주문하는 사이, 난 방석 위에 바로 앉을 기력도 빠졌는지 빈 상과 나란히 누워버렸다.
"아이고 좋네. 난 역시 침대방보다는 온돌방이 맞아. 외양만 호화찬란하고 비싸면 뭐하나.
어젯밤엔 너무 한데서 불편하게 잤는데, 잠깐만 누워도 등 바닥 뜨숩게 지지는 이런 구들방이 최고지."
모로 누워서 천장을 보고 주절거린다.
"다 늙은 노땅처럼 왜 그래? 어제 그 숙소 1박하는데 얼마 하는 줄 알고 그래?"
"아무리 비싸도 난 이런 올드한 방이 좋아. 조막만 한 방석 위에 누워도 몸이 편한 걸 어쩌나."
잠시 눈을 붙인 사이, 둥그런 쟁반과 돌 접시에 정갈하게 담긴 음식들이 하나 둘 상에 놓인다.
아직 입맛이 돌아오지 않은, 깔깔한 즈음이라 양은 접시에 담긴 차조 미음에 먼저 손이 간다.
대추와 잣을 점점이 띄운 미음은 차조를 곱게 갈아 오래 끓여서인지 목 안으로 부드럽게 술술 넘어간다.
"이거만 한 대접 떠먹어도 속이 싸악 풀리겠는데.."
미음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다음엔 뭘 맛볼까 두리번대니 밀쌈이 눈에 들어온다.
녹차 가루를 곱게 치대어 얇게 빚은 밀쌈에 가늘게 채 썬 당근, 고사리, 우엉 등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잣과 대추를 토핑으로 얹어 둥글게 말아 한 입 넣어본다.
"음, 맛있네. 무슨 양념을 했길래 이런 맛이 나지?"
각각의 고명마다 잘 어울리는 소스로 버무려서 그런지 따로 맛을 보아도 개성이 넘친다.
이를 한데 모아 녹차 밀쌈에 싸 먹으니 입 안에서 다양한 맛이 폭죽처럼 터지다 순간 사라진다.
"솔아, 너도 이거 먹어볼래?"
꺼림칙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이. 자꾸 권하니 영 귀찮은지 창가로 달아나 밖을 내다보는 척한다.
"솔은 이따 밥 나오면 따로 가져온 김에 싸주면 되니 걱정 말아요."
아내는 네모난 김이 가득 담긴 락앤락 통을 흔들며 싱긋 웃는다.
"당신 덕분에 이런 맛난 음식도 먹고. 처복 타고난 넘, 먹을 복은 지절로 따라붙는다더니.."
"어데서 그런 말은 줏어 들어가지고.."
그래도 기분은 좋은지 아내가 입을 가리고 깔깔 웃는다.
솔도 엄마 따라 기분이 업되는지 숟가락으로 연신 상 모서리를 두드리며 들썩거린다.
두툼하게 부쳐낸 노릇한 녹두빈대떡이 조각나더니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어 투박한 돌 위에 올려진 녹차에 절인 돼지 구이가 등장한다.
동그랗게 말린 실파가 올려져 더욱 입맛을 자극한다. 밥상과 거리를 두던 솔이 급 관심을 보인다.
가위로 잘게 잘라 아이의 입 안에 쏘옥 넣어주니 무표정한 얼굴이 금세 밝아진다.
"밥도 먹어야지. 아아."
기다랗게 만 김밥을 넣어주니 요물 조물 씹다가 목구멍이 꿀렁한다.
"잘 먹네. 그렇게 입 짧은 아이가 이리 잘 먹으니 얼마나 좋아."
아이도 엄마도, 솔에게 뭘 먹이는 게 좋을까 둘러보던 아빠도 이제야 표정이 밝아진다.
"아이가 좋아하는 이유가 있네. 잡내 하나 없고 입에서 살살 녹네 그려."
몇 점 더 먹었으면 하지만 아이까지 달려드니 돌접시는 번지르한 돼지기름만 남기고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아쉽네 아쉬워 입맛만 다시며 쩝쩝대는 사이, 상 위에 올려지는 접시들을 보고 아이의 눈이 둥그레진다.
"지금 들어온 두 요리가 여기 산당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지."
연근과 쑥갓, 망초대, 지칭개, 때 이른 나생이 그리고 이름 모를 뿌릿대를 튀겨낸 요리가 접시를 수북이 채운다. 그 옆에는 자그마한 방게 두 마리가 집게발을 들어 올린 채 휘영청 뜬 노란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다.
일명 '달맞이 게'라는 요리 아니 공들인 예술 작품의 아우라가 풍긴다.
"이건 먹기가 아까울 정도인데."
난 천천히 사진을 찍고 나서 아내를 바라본다. 아내는 젓가락을 들고 잠시 고민하다 안 되겠다 싶은지 튀긴 게를 집어 들어 요모조모 살피다 입으로 직행한다. 오독오독 씹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외따로 남은 게 하나를 내가 해치우고, 솔은 빈 접시를 황망히 바라보다 옆에 놓인 연근 튀김을 집어 맛을 본다.
"마, 맛있어."
뽀로로 과자처럼 고소하니 맛있나 보다. 한 번 맛보더니 연신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집에서는 야채라면 기겁하고 멀리 하더니, 이름난 명 셰프가 몸소 튀겨준 채소는 과자처럼 잘 먹는구나.
아이가 채소 튀김에 홀릭하는 사이, 우리는 한 상 가득 차려진 갓 지은 밥과 된장찌개, 반찬류에 빠져든다.
절임과 젓갈은 다소 소금간이 과한 듯 하지만, 그만큼 좋은 천일염을 썼다기에 안심하고 맛을 본다.
콩잎 조림과 삭힌 굴젓은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컨디션만 정상이라면 밥 한 공기를 리필해 뚝딱 해치웠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며칠 앓은 몰골로 숙소를 나설 때만 해도 오늘 한두 끼는 굶어야겠다 고민을 했다.
굴뚝에서 허연 연기 피어나는 시골집 분위기의 '산당'에 들어설 때만 해도 손님이 없는 방에 들어 한숨 자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누군가가 산에 들에 나는 재료로 정성 들여 한 상 차려준 진귀한 요리를 차례로 맛보자, 지치고 병든 몸은 다시금 혈기가 돌고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속을 달래주는 따뜻하게 우려낸 우엉차를 한 잔 마시고,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현관으로 나오는데 솔이 어딘가로 달려가는 게 아닌가.
우묵한 돌절구에 한가득 담긴 쌀강정 더미가 아이의 눈길을 끈 것이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
아이가 한껏 까치발을 세우고 흘겨보는 절구통으로 다가간 내가 돈을 주고 사야 하나 우물쭈물 망설이는 사이, 굵은 머리와 눈썹이 허옇게 센, 뿔테 안경을 걸친 분이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온다.
"먹어도 된다. 너희들 먹으라고 여기 놔둔 거거든."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난 아내가 여기서 식사를 하기로 한 연유를 깨달았다.
가까이 다가와 솔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은 요리사보다는 투석꾼의 손에 가까운, 거칠기 그지없는 손이었고, 사람 좋은 큼지막한 미소 뒤에 숨은 이맛 주름에는 지난 세월의 고락이 고스란히 새겨졌다. 단순히 티비 방송에 나온 유명인이 아닌, 자신의 요리에 목숨을 걸고 평생을 바친 장인의 풍모를 곁에서 느껴보라는 아내의 헤아림이 아니었을까 한다.
"내가 한 봉다리 담아줄 테니 집에 가면서 먹어라."
"감사합니다."
아내와 내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이가 이뻐요. 가족이 다 이쁘네요."
그는 특유의 깊게 울리면서도 담담한 목소리로 작별의 인사를 건넨다.
"잘 먹고 갑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그래요."
고故 임지호 선생님,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선생님과 함께 한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길 걸 그랬나 봐요. 지난 추억 한 사발 퍼 올리니 후회만 가득합니다.
박혜령 감독의 <밥정>에서 어려서부터 집을 나와 산천을 떠돌던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선생님의 담담하려 애쓰는 표정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자신을 낳은 어머니와 기르고 보살핀 어머니를 땅에 묻고, 지리산 자락에서 연이 닿은 어머니를 다시 가슴에 묻어야 하는 당신의 떨리는 손에 쥔 담뱃불이 바짝 타들어 갑니다.
영화 후반부, 침묵 속에 하나의 의식처럼 진행되는 상차림은 마치 선생님 자신의 제사상을 앞당겨 준비하는 것처럼 엄숙했습니다. 서둘러 다가올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일까요. 저에게는 이 영화가 당신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과거, 현재와 앞날의 이런저런 죽음을 되새기고, 마주하고 끝내 예견하는 실질적인 유작이라 여겨집니다.
부디 저 세상에서는
그토록 보고픈 당신의 세 어머니 앞에 차리인 거한 밥상
이거 좀 잡숴봐 오므리는 입 안에 갖은 산해진미 넣어 드려
자시는 모습이 참말로 아름다워
막상 자신은 수저 넋 놓고 흐뭇 바라만 보다가,
함박웃음 지으며 허연 구름 아래 온 천하를 밟아보는
그런 삶, 다시 살으셨으면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