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관악산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둘째 연의 마스크가 자꾸만 벗겨진다.
조막 만한 얼굴에 걸친 물안경에 밀려 흘러내리고, 밀려드는 물살에 귓바퀴를 감은 끈이 헐거워지는 바람에 아이가 성가셔한다. 우드 데크 계단에 주저앉은 난 맨 얼굴을 훤히 드러낸 아이를 결국 물가로 불러 세웠다.
"아빠, 마스크가 자꾸 벗겨져요."
"걱정 마. 아빠가 흘러내리지 않게 조일 테니.."
아이의 헐거운 마스크 끈을 3분의 2 지점에서 당겨 매듭지었다. 그제야 마스크와 얼굴이 벌어지지 않고 한 몸인 것처럼 어울린다.
"연, 빨리 들어와. 여기 물고기 엄청 많거든."
연은 물안경 안쪽에 묻은 물기를 탈탈 털어내고는 마스크 위로 올려 걸친다. 저만치서 모여든 물고기에게 건빵 부스러기를 흘려주는 언니를 향해 뒤뚱이며 걸어간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때조차 마스크를 써야 한다니.. 흥건히 물에 젖은 마스크를 보기만 해도 갑갑해 보이는데 아이들은 크게 개의치 않나 보다. 솔과 연은 가슴팍이 부풀도록 숨을 들이마시고는 풍덩, 온몸을 물에 맡긴다.
환절기를 틈타 요 며칠 퍼부은 거센 비 탓인지, 정체되어 있던 웅덩이의 탁한 기운은 사라지고, 수량도 불어나 물가에 앉아 바라만 봐도 마음이 맑아진다. 물고기들 또한 기분이 동했는지 떼를 지어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아이들은 몸을 낮추고는 느릿느릿 헤엄치는 검붉은 잉어의 꼬리지느러미를 슬쩍 건드렸다. 놀란 기색도 없이 미끈한 몸을 뒤틀어 물살을 가르는 잉어의 가속이 재빠르다.
"아빠, 우리가 물속을 들여다보는데.."
어느새 다가온 솔과 연이 인중의 옴폭한 홈이 보이도록 흘러내린 마스크를 추켜올리며 재잘거린다.
"이따만한, 갈색 물고기 몇 마리가 돌 뒤에 숨어서는.."
"물에 둥둥 떠 있는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는 거 있지."
"언니, 그중에 한 놈은 꼬리도 살랑거렸어. 강아지처럼 말이야. 내가 똑똑히 봤다구."
그 애교 넘치는 물고기가 연의 곁으로 다가왔다면, 아이는 손을 내밀어 흐늘대는 비늘과 지느러미를 쓰담쓰담했을지도 모르겠다.
"건빵 쪼가리를 근처에 뿌려주니까 가까이 다가와서 먹더라. 도망가지도 않고.."
아이들의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한참을 이어진다. 허구한 날 여기로 찾아들어 물속에 민낯을 들이밀고, 보글대는 입거품을 뿜으며 물장구를 쳐댔다. 허연 마스크로 반을 가린 얼굴이건만, 인근의 물고기들도 아이들의 낯이 익었는지 거리낌이 없어졌나 보다. 여울 한복판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남은 건빵 뽀스레기를 탈탈 털어 내리자, 매끈한 종아릿살을 간지러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송사리며 피라미들이 앞다투어 물 밖으로 입을 내민다.
유난히 가문 날씨에 배가 고팠는지, 한발 늦은 물고기들의 입질이 당도하기도 전에 건빵 조각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부글거리던 수면이 잠잠해지자, 그 대신에 지름을 달리하는 동심원이 하나 둘 퍼져 나간다.
어느새 하늘을 덮은 짙은 먹구름이 수면 위로 빗발을 뿌린다.
빗발이 잠잠해지길 기다렸지만 오히려 정수리가 따갑도록 퍼부을 기세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아이들을 채근하여 돌아갈 채비를 서두른다. 험한 물길이 가로지르는 개울 맞은편으로 징검돌을 딛고 나아가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장우산을 거머쥔 여성 두 분이 나란히 바위에 걸터앉는다. 적잖은 나이차와 닮은 인상으로 보아 모녀 지간인 듯도 하고 긴가민가하다. 잠깐 시선이 머물렀으니 확신은 금물이다.
자주 이곳에 들렀는지 세차게 흐르는 물에 두 발을 담그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누구나 첫마디만 들어도 따라 부를 만한 유행가가 아닌, 그들만이 아는 곡조가 거침없이 새어 나온다. 그들의 뒷모습을 비스듬히 가린 우산 한 쌍은 멈추었다가 빙그르 돌아가며 빗물을 튕기고,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은 우리가 저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귓가에 남았다.
누군가의 드러난 팔꿈치가 젖어들도록, 각자의 우산은 서로를 향해 어깨를 맞대고 빈틈없이 포개진다.
맑은 날에도, 궂은 날에도 이곳에 들러 세족을 즐길 듯한 여인네들
"아빠, 저기.. 뭐가 떠내려가는데?"
나들길을 따라 내려가는 도중에 큰 아이가 무얼 발견했는지 잠자리채를 들고 여울가로 뛰어든다.
연은 언니를 뒤따라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연갈색 오리 한 마리가 몸이 성치 않은지,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급류에 휘말리고 있다. 두 날개를 휘적거리며 날아오르려 하지만 푸드덕대기만 할 뿐, 요동치는 수면 아래로 온 몸이 잠기는 걸 어찌할 수가 없다. 누군가가 무심코 던져준 가래떡 한 덩이가 목에 걸린 것일까. 철없는 아이들이 장난 삼아 내던진 돌팔매질에 맞아 날개가 부러진 걸까. 아니면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올여름을 견디다 기력이 다한 나머지, 가을로 건너는 막바지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버둥대는지도 모른다.
난 손짓하여 아이들을 물가로 물러나게 했다. 몰라보게 불어난 물살이 그 오리뿐만 아니라 아이들마저 휘감아 저 아래로 쓸어내릴까 봐.. 감히 생사의 기로에 선 그를 구하기 위해 웅덩이로 뛰어들 엄두는 내지 못했다.
우리를 에워싼 삶마저도 그를 더 이상 부축하지 않고, 부둥켜안지 않고 마지막 숨을 내쉬는 걸 바라보기만 했으니.. 어스름한 풀섶의 그늘로 그를 놓아주고 떠미는 보이지 않는 손길.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부자연스레 뒤틀린 몸짓으로 굳어진 채로 급물살에 휘말려 어딘가로 사라지는 그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난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의 한쪽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주어 이제 집으로 가자, 외치고는 왔던 길을 거슬러 먼 길을 에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를 덮친 죽음의 화살이 우리를 겨누지 않게, 다음 표적으로 삼지 않도록 멀어지는 것.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가끔씩 아이들을 살피고 뒤를 돌아본다.
살아있음, 생생함, 그나마 밝음, 해맑은 웃음 따위와 최대한 가까이하려 일부러 인적이 붐비는 큰길을 따라 내려왔다.
아이들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그 불쌍한 오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거라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버둥대는 그를 발견한 그 여울목을 한동안 피해 다닐 것만 같으니..
앞장서 걸어가는 아이들의 풀어헤친 머리가 빗물에 흠뻑 젖었건만, 난 비가 세차게 더 줄기차게..
가능한 밤새도록 내리기를 바란다.
그가 우리의 눈에 다시는 띄지 않을 만한,
알 수 없는 저 편의 세계로 떠내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를 바라던 그날,
그 갈림길이 여전히
내 발아래 머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