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허탕 친 세 자릿수 근접한
소개팅은 여기까지,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마음 비우고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찰랑이는 긴 생머리 정갈한 리넨 치마 아래
가지런히 모은 흰 발목 눈에 띄었다
모나지 않은 얼굴상에 날렵한 콧날
방울진 코끝 야무졌고
구김살 없는 깨끗한 살결이 선해 보였다
시간 죽이는 그저 그런 영화 한 편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
줄곧 거리를 두던 그녀의 볼기살
뉘 어쩌지 못할 기류 떠밀려 내 손등 살짝 스쳐
어릴 적부터 익히 아는, 그 푸근함 따스함이어라
삼성역 다다라 잠실행 2호선 타고 먼저 떠날 때
닫히는 문 사이, 손 흔들며 환하게 웃는
만개한 그녀의 얼굴
그녀를 두 번째 만났을 때
하정우가 주연한 영화 '국가대표'를 다시 보았고
근처 카페 마주 앉아 그녀의 멈추지 않는 수다에
중간중간 맞장구쳤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친다는 그녀는
제법 멀리까지 울리는 목청을 지녔다
다시 그녀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
강남역 6번 출구는 인파로 넘실거렸다
수년 전 헤어진 전 여친이 남긴 두툼한 하늘색 후드티는
때마침 돌아온 무더운 날씨에 흠뻑 땀에 젖었다
망설이는 그녀의 손 잡아끌어
가까운 지오다노 매장으로 향해
무난한 연회색 스웨터 새로 걸쳐
두터운 후드티 뒷전으로 밀려났다
(다음 해, 그 후드티는 헌 옷 함에 버려졌다)
다소 상기된 표정의 그녀는 내가 손목을 잡을 때마다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했고
시간이 흐른 후 넌지시 고백했다
내 손 맞잡고 밀려드는 인산인해 헤쳐나갈 때
눈 맞은 선남선녀 초야에 든 것처럼
천둥벌거숭이 한 몸 이룬 것처럼
지릿한 느낌에 온 몸을 떨었다고..
이 사람과 굽은 길 저 끝까지 함께 걸어볼까
얼핏 결심했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잠자리를 같이한 그 밤
신접한 그녀 진즉 공수내려 받든
손 없이 맞이한 그날처럼
차곡차곡 개어온 편한 옷가지 펼쳐
뒤돌아 주섬주섬 갈아입고는
멋쩍은 표정 짓는 내게 다가와
두 팔 벌려 너른 품 가득 안아주었다
그녀와 나
우리 사이,
끊길 듯 이은 아슬한 연緣 맞잡아
자꾸만 허물어지는 서로의 옆구리 기대는
평생지기 되었지만 이제 그녀는..
버석한 손등어리 간지르고 품 안으려 해도
잔뜩 움츠린 길괭이 마냥 멀뚱한 눈길 흘리고
구석퉁 찾아 요리조리 숨고 피하는
밀당의 달인이자 여우짓 능한 아내로
곁에 남았다
그래도 가끔은
우리네 누운 이부자리
바로 아랫집 큰방 홀로 쓴다는 어느 할미,
음쓰 봉지 들고 엘베에서 딱 마주칠 때면..
내 요즘 늙은 잠귀에 망령끼 들었는지
중천에 둥근달 뜨는 야밤이면 어김없이 말야
윗구들장 거덜내나 들썩들썩
맨바닥 멧절구질 꿍꿍 울려
어릴 적 개울가 연자물레 도는지 떡방앗 찧어 신명나
담날 이웃집 찰떡쿵 한 소쿠리 나누려나
쾌나 요란법석에 선잠 들만하면 설친다고
불평 반 오지랖 반 퍼지는 소리 들어먹는
때로는 미움받는, 그런 우애 좋은
부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