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 박제하고픈 기억들, 그 순간들

30여 년 전 그리고 2014년 10월 23일, 광릉 수목원에서..

by 라미루이




오늘처럼 기나긴 무더위의 끝이 다가오는
비가 쏟아지기 직전, 잔뜩 흐린 날이면 가고픈 곳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어느 가을날, 어린 솔을 데리고 무엇에 홀린 듯이 그곳으로 떠났다.
아내는 간단한 도시락과 물을 싸주며, 먼 길인데.. 갈 수 있겠어? 하고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둘째 연의 엄마를 찾는, 벼락 치는 울음이 안방에서 울렸다.

아내는 그럼 잘 다녀와, 솔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악을 지르는 갓난아이의 목청이 잦아들었다.



네비로 목적지를 찍으니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단다. 누구는 국립 수목원이라 부르지만, 난 예전 지명 그대로 '광릉 수목원'이라 부르고 싶다. 나 어릴 적 외삼촌과 이모들과 함께 택시를 두 대 잡아타고 그곳으로 떠난 적이 있다. 87년 아니 88년 경이었나? 아마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전 해였던 듯하다. 기억이 가물하지만 그리 무덥지 않은 늦봄의 휴일이었을 것이다. 무슨 연유로 떠났는지 모르지만, 당일 짐을 꾸려 작정하고 깜짝 나들이를 떠났다. 쌍문동 부근에서 택시를 연달아 세워 포천에 위치한 깊은 숲으로 향하던 날. 나와 여동생 그리고 두 이종사촌은 들뜬 기분에 차창 밖을 둘러보고,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우리는 도로 옆을 가득 메운, 줄지어 도열한 아름드리나무의 행렬을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서울 도심의 앙상하고 비루한 가로수와 비교되는, 즐겨 찾는 '도봉산'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장정 대여섯이 팔을 벌려 감싸 안아도 벅찰 만한 굵기의 거목이 우리를 압도했다.
우리는 비좁은 택시 안에서 우와, 대단한데.. 하고 감탄사를 뱉었다. 각각의 택시에 동승한 삼촌과 이모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빙글 돌아가는, 빡빡한 손잡이를 끝까지 돌려 차창을 내렸다. 그동안 맡았던 탁하고 매캐한, 콘크리트 도시와 아스팔트 도로에 밴 냄새와는 확연히 다른 내음이 풍겼다. 오랜 세월 덮이고 켜켜이 쌓인 낙엽과 토양에 빗물, 이끼가 뒤섞인.. 그 사이사이 짧은 생을 마감한 산짐승들과 곤충들의 유해가 파묻힌, 만만치 않은 더께의 퇴적물이 저 밖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것들의 극히 일부가 바람을 타고 밀려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코를 킁킁대며 후각을 곤두세웠다. 내리쬐는 뙤약볕과 장시간 운행에 지친 심신을 일깨웠다. 택시 뒷좌석에 파묻힌 채, 고개를 꾸벅이며 졸음에 겨워하던 사촌들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차에서 내려 푹신한 부엽토를 밟으며 걷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날따라 밀려든 차들은 가다 서다를 거듭하며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수목원 입구는 안내 표지판도 없이 좀처럼 시야에 들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그날은 식목일이 아니었나 싶다. 어린이날만큼의 최악의 교통 체증은 아니었고, 수목원 초입에서 그리 길이 막혔던 걸 보면 4월 5일이 아니었을까. 당시에는 식목일이 4월의 몇 안 되는, 주말을 제외한 빨간 날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30분 넘게, 울컥이는 택시 안에 갇혀 지루한 서행을 하는데 똑똑! 누군가 뒷유리창을 두드리는 게 아닌가? 우리는 깜짝 놀라 보행로 방향의 차창을 일시에 바라보았다. 큼지막한 선캡을 둘러쓴 어떤 이가 사이다병과 조잡한 장난감 더미를 내밀었다. 앞자리에 앉은 삼촌은 냉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 행상인은 아랑곳 않고 앞의 택시로 다가갔다. 앞의 차에 탄 큰 이모 또한 퇴짜를 놓은 모양이다. 얼굴이 검게 탄 사내는 퉤엣, 하고 가래침을 멀리 뱉고는 걸음을 옮겼다. 아이스박스에 담긴 푸른 유리병을 꺼내 자신의 목덜미에 갖다 댄 채로.. 그 순간이었다. 평화로운 소풍길의 비극적 결말을 알리는 것처럼 우웩, 소리가 들린 것은..
옆 자리에 앉은 사촌동생 '진'은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말수가 적어졌다. 점점 낯빛이 창백해지고 헛트림이 연신 터졌다.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속이 안 좋으니 이만 차에서 내리자고, 걸어서 가자고 삼촌에게 적극 어필했어야 했다. 그 녀석은 참고 참다가, 부글거리는 속을 누르다가 아침부터 주워 먹은 김밥이며 과자며 온갖 먹을거리를 게워 냈다. 깡그리, 모조리, 남김없이란 부사를 떠올려도 모자랄 듯한, 엄청난 양의 토사물이 차창에 문짝에 흩뿌려졌다. 미처 소화되지 못한, 걸쭉한 음식물이 시트를 타고 흘러내렸다. 때마침 택시의 외부로 난, 앞뒤의 창은 빈틈없이 닫힌 참이었다. 불시에 들이닥친 그 도붓장수의 노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산통은 깨졌다.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낭만이 넘치고 느긋하고 여유 넘쳤어야 할, 일가친척을 동반한 '묻지 마, 번개 여행'은 그 길로 쫑이 났다. 중도에 택시에서 쫓겨나다시피 내린 우리는 길가에 멀뚱히 섰다. 외삼촌은 기사가 건네 준 수건으로 토한 흔적을 급 수습했다. 앞차에서 내린 이모들도 그를 도왔다. 여전히 속이 메슥거리는지 '진'은 허연 낯빛으로 보도에 쭈그려 앉았다. 차 안에서 썩는 냄새가 난다며 불평하던 택시 기사는 만원 남짓한 웃돈을 챙기고는 우리를 남겨두고 떠났다. 얼마를 넋 놓고 서로의 꽁무니를 쫓아 기어가는 차들의 대열을 지켜보다가, 우리는 다시 정신을 차려 걸었던 듯하다. 푸르른 하늘을 가릴 정도로 촘촘히 가지를 뻗은 전나무, 느티나무며 너도밤나무, 노간주나무 아래를 걷다가 어딘가에 잠시 머물렀을 것이다. 곧게 뻗은 참나무 밑동 아래 그늘진 곳에 돗자리를 넓게 깔았다. 그 위에 누워 한숨 돌린 우리들은 무엇에 덴 것처럼 서둘러 그 자리를 떴다. 이후로 귀갓길 도중 무엇을 했는지, 외가 친척들과 어떤 인사말을 나누고 헤어졌는지, 어떻게 창동 집에 돌아왔는지 통 기억이 없다. 어쩌면 유유히 흐르는 시간은 보기 좋게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만나지 말아야 할 인연을 억지로 매달려 붙잡는 바람에, 결국 악연으로 남은 이와의 지난 기억을 일부나마 편집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30여 년의 시간차와 간극은 뚜렷이 새겨진 기억을 긴가민가하고 애매모호한 상태로, 짙은 안개에 싸인 숲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 같은 어렴풋한 상태로 되돌리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머지않아 그곳을 다시 찾을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산림에 발을 들여놓을 것만 같았다. 쳇바퀴 도는 삶에 지칠 때면, 몇 갈래로 나뉜 길을 마주할 때면, 뜻하지 않게 심골이 고통에 겨워할 때면 어김없이 그곳이 날 부르곤 했다.

난 미지의 기이한 힘에 이끌리는 것처럼, 꿈결이면 홀로 거대한 나무 둥치들이 빼곡한 저 오솔길로 들어서곤 했다. 처음엔 두려움과 낯섦에 머뭇거렸지만 중년에 들어선 난 거리낌이 없다. 사박이는 발걸음으로 다가가 노회한 수목의 겉피를 어루만지고 양팔을 벌려 껴안는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날 바라본다. 벗겨질 것처럼 성마른 그녀의 손등이 내 뺨을 매만진다. 구불한 길을 지나 날벌레가 드문, 볕 바른 곳에 이르면 벌러덩 누워 양손으로 깍지 베개를 하곤 저 위를 바라본다. 몽롱한 운무가 저만치 물러나 창공을 향해 손 내민 잔가지의 윤곽이 드러나고, 곁가지에 숨은 산새들의 지저귐이 높아질 즈음.

난 퍼뜩 잠이 깨곤 한다. 다시금 잠을 청하려 해도 맑게 개인 정신은 밤의 미로를 헤매다 빠져나오지 않았냐고, 이제 그만 깨어나라고 일갈한다. 흐릿한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오래지 않아 깨닫는다. 간밤에 그토록 괴롭히던, 가슴을 억누르던 울화와 고민, 갈등 그리고 관자놀이를 꿰뚫는 극심한 두통이 가라앉았음을..
언제든 날 내치지 않고, 기꺼이 품 안으로 받아들이는 어미를 닮은, '그 숲'이 있었기에 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겨우 버틸 수 있었다. 난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2014년 10월 어느 날, 광릉 수목원에 도착했다. 이번이 두 번째다. 현실인지 꿈인지 헤아리기 어려운, 의도치 않은 불시의 방문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솔의 손을 맞잡고 오르막길을 올랐다. 솔이 힘들다고 징징대자 난 아이의 몸을 번쩍 들어서는 목말을 태우고 걸음을 옮겼다. 수목원 끝자락에는 뜻하지 않게 몇몇 짐승들을 철창 안에 가두어 놓은 우리들이 자리했다. 사막 여우에 흑곰이며 늑대, 대머리 독수리 그리고 제법 늠름한 호랑이 무리까지 그 안에서 어슬렁거렸다. 아이는 신기한 듯 꼼짝 않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날것의 산짐승에게서 풍기는, 비릿하면서 노리치근한 암내에 코를 막기도 했다. 이어 중턱의 산림박물관과 숨이 턱턱 막히는 온실, 둥둥 뜬 연꽃 무리가 가득한 수생 식물원까지 발품을 팔아 바삐 돌아다녔다. 마지막에 들렀던 '어린이 정원'에서는 뜻하지 않게 이국의 또래 친구를 만나 정글짐에 함께 매달리는 행운을 누렸다. 멀리 북유럽 스웨덴에서 건너왔다는 아이의 아빠는 무뚝뚝했지만, 그녀한테는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이자 든든한 울타리였다. 그들의 시선에도 우리 부녀가 비슷한 사이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 아니 욕심이 생겼다. 오후 5시가 지날 무렵, 사파이어를 닮은 눈동자를 가진 그 아이는 곱슬한 금발을 휘날리며 손을 흔들었다. "Good-Bye!".

난 가까이 어울려 노는 솔과 그녀, 둘의 사진을 몇 장 남겼기에 다행이라 여겼다. 평생 오직 한 번의 만남이라 짐작했기에 그 증거를 남기고 싶었다. 혹여 솔이 성장하여 그 사진들을 접한다면, 그녀와의 추억과 더불어 옆에서 지켜보던 내 모습도 떠올리지 않을까 하는 옹졸한 마음에.. 그들과 작별한 후, 날이 어둑해지기 전에 서둘러 집에 돌아왔던 듯하다. 아이는 카시트에 꼼짝없이 묶여 있는 것이 갑갑했던지 몇 번 울음을 터뜨리다 겨우 잠이 들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그곳'에 머물렀다고, 무사히 다녀왔다고 자위하고 안심했다. 명확한 근거로 삼을, 영구히 보존될 '사진'이라는 기록 또한 남겼다고 자부했다. 마침내 가슴 깊이 누르는 묵직한 돌 하나를 끄집어낸 것만 같았다. 더 이상 거기에 발을 들일 일은 없을 거라고, 그 안에서 밤새 헤맬 일은 없을 거라고 한숨을 돌렸다. 또한 그 숲도 날 부르지 않을 거라고. 불가사의한 세계 또한 예외 없이, 불가항력적인 시간의 흐름에 굴복하여 내 존재를 망각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수년이 흐른 후에 난 깨달았다. 그날의 모든 기억과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을 되돌아볼 수 없다는 것을. 그것들이 모두 사라졌음을..

지금은 뽀얀 먼지가 쌓여 창고 어딘가에 고이 모신, 묵직한 DSLR 카메라를 목에 걸고 수십 장의 사진을 남겼건만 고스란히 날아간 것이다. 조그마한 메모리 카드는 영원히 살아남을 것처럼, 불사의 존재인 것처럼 당시의 기술력을 뽐내며 으스댔다. 하지만 그 녀석, 채 삼 년을 버티지 못하고 비명횡사하더라. 원인 불명의 에러이자 치명적인 오류의 발생. 어떠한 노력에도 복구는 불가하다는 녀석의 마지막 유언을 담은 메시지가 노트북 스크린을 채웠다. 덕분에 아이폰으로 찍은 여남은 사진을 제외하고는 그때의 모든 것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어슴한 흔적은 있지만 실체가 없는 공空의 신세가 되어 버렸다. 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여지를 남기지 않고자, 일부러 그곳의 내부를 해부도를 그리듯 속속들이 담았다. 방사선 CT 촬영을 하듯 단면을 나누어 샅샅이 담았건만, 그 노력마저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 소식을 접했는데, 광릉 수목원 꼭대기에 자리했던 동물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경북 봉화군의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으로 옮겼다고 하더라. 대신 그 자리에 무엇이 자리했는지는 당체 알 수가 없다. 다시 그곳을 들리기 전까지는, 옛 자취를 더듬어 발길을 들이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엊그제는 어설피 잠이 들 무렵, 귓가를 간지럽히는 미풍에 번쩍 눈을 떴다. 곧이어 인중을 지나 콧속을 가로지르는 솔향이 잠든 후각을 자극했다. 잠들만하면 발바닥을 깨물고 간지럽히는 곰개미의 흔적을 찾느라 불을 켰지만 허사였다. 구시렁거리며 돌아눕는 아내의 등을 바라보며 난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그 숲은 날 그리워하고,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른다. 현실과 밝음을 넘어선 저 편의 세계에서도 날 지배하고 길들이려 한다. 나 또한 그곳에 미련이 남았다. 가슴속 깊이 이전보다 무거운 돌이 가라앉는다. 숨이 막히고 답답하다. 이러면 또다시 몽유증이 도져서는 꿈결이라도 빌려 그곳의 입구에서 서성일 것이다. 상처투성이 맨발로 산길을 헤매다 문득 잠이 깰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없음을 아쉬워하고, 현실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할지도 모르리라. 어느새 실크 커튼 사이로 비치는 밝은 햇살에 눈이 부셔 깨어나기를 영영 마다할지도 모르리라.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나. 어쩔 수 없이 그 부름에 응해야 할까. 순순히 체념하려다 타이레놀 한 알을 맨 입에 삼키며 난 고개를 흔든다.


가까운 시일에 온 가족과 함께 널 다시 찾을 거야. 이번에야 말로 티끌만 한 미련을 남기지 않고, 일말의 아쉬움과 후회 없이 네 곁에 머무를 거야. 미처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터지더라도, 설사 누군가 차멀미에 괴로워하다 오바이트를 뿜는다 해도 우리는 널 떠나지 않아.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들을 눈에 담고 기록할 거야. 네 심장부 깊이 감춰진 내면을 주시하는 선명한 사진을 찍어야지. 시시각각 돌변하는 본심을 담은, 생생한 묘사가 넘치는 글을 남겨야지. 그리고 훼손되고 파기되거나, 영구히 삭제되지 않을 절대 불가침의 성스런 영역에 고이 보관하는 거야. 불운하게도 그것들마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언젠가 소멸한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어.
부디 저 재기 발랄한 아이들이 네 뒤를 이어 그때 이 수목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순간순간 어떤 느낌이었는지 미래의 어딘가에 남겨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그 길 밖에는 없어.


물론 후대가 남긴 그것들이 불멸의 지위를 얻을지는 의심스럽지만 말이야. 밤하늘에 내걸린 저 달의 표면에 부호를 새겨 각인한다 해도, 그게 가능하다 해도 한 세기를 못 버티고 사라진다에 내 전부를 걸고 싶어. 설령 신의 축복으로,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그 기록이 영생을 얻는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저 달을 바라보는 미래의 어느 누구도 보잘것없는 기호에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을 테니. 굳이 영구 보존되어 곁에 존재하더라도 뭇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소거되는 신세를 면치 못할 거야. 머지않아 저 하늘을 떠다니는 미세먼지만도 못한, 공허한 존재로 전락 테지. 그것만은 확실해.






몇 장 남지 않은 그날, 수목원에 머무른 흔적을 담은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