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제대하고 아버지 말년 의탁한 구례 머물 적 일이다
오뉴월 볕 바른 날, 창 밖 내다보는데
구불한 내리막길 각진 경계석 아래 반그늘 숨어
기다란 지렁이인가 흐느적 꿈틀댄다
뭔가 하고 슬리퍼 끌어 가까이 가니
아 글쎄, 간당한 숨 붙어 축 늘어진 실뱀 세모가지
배배 꼬다가 왕소금 확 뿌린 것처럼
사지 비틀고 뱃가죽 까뒤집어
갖은 애를 쓴다
여울진 뒷산 둠벙 얌전히 머물 것이지
살랑 불어온 솔바람에 단단히 홀렸나
구릉지 풀어놓은 톱니볏 장닭 홰치고
나대는 암탉들 종종 푸득대는 한복판
지 실낱 목숨 걸어 어찌 헤쳐 왔는지
매서린 눈길 언뜻 밟힐 때마다 죽지 않을 만치
송곳 부리 재미 삼아 콕콕 쪼았는지
거무죽한 비늘 몸통, 칼도마 올린 다짐육 마냥
너덜너덜 곤죽 되어 어떻든 살고자
몸부림치며 사지를 벗어나 거두절미
지 묻힐 묏자리 곧장 찾아
울퉁한 시멘 포장길 구석 갈라진 틈 새
되도 않는 온몸 들이박고 파고들던 그 배암
얼마 지나지 않아
티 없이 맑은 저 하늘 꼭대기 오른 태양
드리운 한 뼘 그늘마저 거두자
실오라기 남은 미련 툭 끊어내
잠자코 수그린 모가지 위로
너럭한 반석 들어 내리쳤다
바른 곳 정해 그를 묻어주려 했지만
다시 볼 엄두 나지 않아 그대로 두었다
다음 날 뒤늦은 후회 밀려와 조심스레 그의 시신 찾았지만
진즉 누군가 말끔 수습한 후였다
그 길가에 무심히 나뒹구는,
오색빛 각린角鱗 몇 조각 돋아나
드문드문 비문 새긴 반토막 짱돌만이
번듯한 묘석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