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돌보느니 차라리 파밭을 매겠다 #1

by 라미루이







어린아이를 돌본다는 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에 꼭 껴안고 있는 것처럼 항시 예측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노출되는 걸 의미한다.

한참 시간이 흘러 아슬아슬했던 그때 그 상황을 돌이켜 보면 저 푸른 하늘에 닿도록 폭소를 터뜨리거나,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젓거나 아니면 회한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쏟을지도 모르지.

예부터 어르신들은 "외손주를 돌보느니 차라리 너른 파밭을 매겠다"라고 아이 돌보기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언제 무슨 일이 뻥하고 터질지 모르는 아이들을 돌보며 젊은 시절 데일 대로 데고 학을 떼신 어르신들은 이미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러한 상황을 감내하기 어렵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세월이 흘러 장성한 두 딸의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온전히 제정신으로 그런 돌발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만약 그날의 어처구니없던 상황이 또다시 손주들에게 벌어진다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편두통이 도지려 한다.




그날은 오늘처럼 완연한 봄 날씨가 사방을 채운, 집에 틀어박히기보다는 아침부터 밖에 나가야만 할 것 같은 그런 휴일이었다.

솔은 이른 아침부터 나가서 놀고 싶다고 칭얼거렸다. 하는 수없이 나는 부랴부랴 나갈 채비를 마치고 아이의 손을 잡고는 집 근처 관악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화창한 날씨의 휴일을 맞아 산은 초입부터 각양각색의 등산복을 걸친 인파로 북적거렸다.

한적한 산행을 즐기기 위해 당시 네 살이었던 솔의 작은 손을 이끌어 등산로에서 벗어나 계곡 옆길로 빠져 걸었다. 넓적부리 한 돌무더기가 드문드문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려는데 간격이 넓은지 아이가 위태위태하다.

할 수없이 아이를 두 팔로 번쩍 안아 들어 성큼 건너편으로 향한다. 7년이 지난 지금은 아이의 덩치가 커져 그때처럼 안아 올렸다가는 허리가 삐끗해 며칠을 앓아누울지도 모르지. 물론 아이도 혼자 힘으로 건너겠다고, 아빠 도움은 필요 없다고 기겁하며 손사래를 치겠지만 말이다.


수량이 풍부한 계곡에 다다라 난 땀에 전 운동화를 벗어던지고 솔 또한 크록스를 벗어서는 맨발로 물에 뛰어들었다. 서로 물장구를 치며 놀다가 장난기가 동한 아이는 자신의 신발을 일부러 세찬 물살에 흘려보내고는 "아빠, 내 신발이 저기 떠내려가."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척하는) 게 아닌가.

난 모르는 척 깜짝 놀란 척하고는 서둘러 무르팍 위까지 바짓단을 바짝 걷어 올리고는 저 멀리 돛단배처럼 떠내려가는 신발을 찾아 휘적휘적 내려갔다.

"어이쿠야!"

짙푸른 이끼가 덮인 매끈한 돌을 밟아 하마터면 옆으로 휘청, 몸이 기울어 넘어질 뻔했다. 아이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고 손뼉을 연달아 치며 자지러지게 웃어댄다. 누구를 빼닮았는지 저리도 장난기가 짓궂고 큰 웃음이 빵빵 터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지경이다.

간신히 장딴지 위까지 차오르는 물까지 뛰어들어가 거침없이 속도를 높여 멀어지는 크록스를 잡아채니,

"아빠아, 저으기 또 떠내려가! 어떡해."

아이는 맨발을 동동 구르며 반대쪽 신발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걸 삿대질을 하며 야단법석을 떠는 게 아닌가.

난 살짝 낯빛이 달아오르고, 숨이 가빠지면서 평정심을 잃을 뻔했지만 두 번은 받아주기로 한다.

(그래, 아이가 즐겁기만 하다면야 이 정도 수고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지.)

당시 계곡가에 줄지어 앉아 있던 구경꾼들은 이 모습을 보고 '쯧쯧, 여기 콩깍지 단단히 씐 딸바보 아빠 납셨네.' 하면서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간신히 물살을 따라 살랑살랑 떠내려가는 꽃신을 낚아채서는 아이의 손이 닿지 않을 만한 저 멀리로 던져 버렸다. 꾸깃꾸깃 접어 올린 바짓단은 어느새 물에 흥건히 젖어 맨살에 착 달라붙어서는 정분이 난 것처럼 떨어질 생각을 안 하고..

세찬 계류가 흘러내리는 바윗가에 올라선 아이 쪽을 바라보자 근처에 놓인 장난감 삽을 들어 보여주는 게 아닌가. 솔의 양 입가가 실룩거리며 번지는 방긋한 웃음을 보고 이내 다음 행동이 무엇인지 예상할 수 있었다.

"이제 그만!" 내가 크게 소리치며 고개를 가로젓자, 아이는 손에 쥔 핑크색 플라스틱 모종삽을 물길에 내던진다. 그리고는 꺄르릉, 웃음을 터뜨린다. 마치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주인공이 바닥에 널브러지며 정신없이 터뜨리는 웃음소리와 닮았다.

난 곁으로 떠내려온 삽을 그대로 놔두고는 솔에게로 맨발로 와락 다가가 번쩍 두 팔로 안아 들어 올렸다.

"아아악, 아빠 이제 안 할게. 꺄아악. 으하핳!"

아이는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안간힘을 써보지만 난 그대로 계곡물로 들어가서는 아이의 엉덩이와 등짝이 젖도록 살짝 무릎을 구부린다.

"아빠, 차가워. 차갑다고. 꺄하하."

부쩍 몸집이 커진 아이가 몸부림을 치는 탓에 나도 균형을 잃고 기우뚱 몸이 기운다.

[미끄덩.]

결국 허리춤까지 차오르는 계곡에 풍덩 빠진 아빠와 딸은 일어날 생각도 못한채 망연자실,

이제야 그들 곁으로 두둥실 떠내려온 장난감 삽을 거머쥔 솔은 멀리 하류 쪽으로 내던져 버린다.

"아직도 장난칠 힘이 남아있나 보네."

난 눈을 부라리며 물에 빠진 아이의 옆구리를 간지럽히자 몸을 배배 꼬며 기겁을 한다.

"아빠, 가, 간지러워. 그만. 끄하하!"

따땃한 봄볕이 내리쬐는 어느 날, 물속에 주저앉아 한바탕 폭소를 터뜨리는 부녀지간으로 보이는 그들은 좀체 일어설 기미가 안 보인다. 마치 동네 목욕탕에 와서는 때 밀 생각은 안 하고, 냉탕에서 물장구를 치며 온종일 헤엄만 치는 장난꾸러기들처럼 말이다.


물놀이를 하는 아이의 표정이 해맑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뉘엿뉘엿 해가 기울고, 이른 아침부터 정상을 향해 오르던 산객들의 발길이 아래를 향할 즈음.

"솔아, 이제 슬슬 집에 가야 할 거 같은데?"

"안 돼, 싫어. 더 놀 거얌. 더 놀 거라고."

"아빠랑 다음에 또 오면 되지. 조금 있으면 여기 어두컴컴한 밤이 되거든."

"그래도 놀 거야. 시커먼 밤이 와도 집에 안 갈 거얌."

"그러면 하는 수 없지. 아빠는 혼자 집에 가야지. 솔이 여기 홀로 놔두고."

아이의 투명한 동공이 순간 흔들린다.

"... 저, 정말. 나 혼자 놔두고?"

"아빠는 무서워서 빨리 내려가고 싶은데. 밤이 깊어지면 물귀신이 화악 덮칠지도 모르거든."

내가 두 팔을 위로 솟구치며 날개 달린 귀신 흉내를 내자 아이의 마음은 이미 집으로 향한다.

"귀, 귀신 별로 안 무섭거든. 나 안 무서버."

의외로 태연한 척하는 아이에게 결정타를 날릴 타이밍이다.

"집에 가면 외할머니 오셔서 맛난 과자 주실지도 모르는데? 너 없으면 동생 연이 혼자 다 먹어 버린다."

"(그럼 안 되는데..) 쪼, 초코 송이도 있을까?"

"당연하지. 외할머니 댁에 포카칩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데 말이야. 연이 혼자 냠냠하겠네."

솔은 이미 계곡을 벗어나 길가에 나동그라진 밑창에 물때가 잔뜩 낀 보라색 크록스를 찾아서는 주저앉아 신고 있다.

난 어이없다는 듯 피식 싱거운 웃음을 날리며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한다.


문제의 크록스 신발. 저걸 냅다 아래로 던지며 놀 줄은 몰랐네요.


앞장서서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이의 작은 발자욱마다 말간 물기가 똑똑 떨어져 지워지지 않을 흔적으로 남는다.

뒤따르는 내 종아리에 찰싹 달라붙은 바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질척거린다.

둘 다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이지만 표정만은 겨우내 차가운 공기를 뚫고 얼굴을 보이는 발간 산철쭉처럼 해맑다.

제멋대로 휘적대는 양팔을 주체하지 못하고 지그재그로 걷는 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년으로 향하는 한 남자의 외로움과 방황의 기나긴 굽이 길에

함께 걸어가는 아이들이 없었다면 지금과는 삶의 양상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는,

아마도 삭막하고 황량한 풍경에 질려 중도에 주저앉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운다.

어느새 걸음이 빨라진 내가 아이를 몇 걸음 앞질러 가다가 뒤돌아보는 찰나에

솔이 잽싸게 콧구멍을 한 손으로 만지다가 뭔가를 뒤로 숨기는 걸 발견했다.

"솔, 그거 뭐니? 뭘 숨기고 그래."

당황한 아이는 갑자기 울상이 된 얼굴로 뒷짐을 진 두 손을 풀지 않고 내게 보이지 않으려 한다.

"뭐야, 아빠가 혼내지 않을 테니 보여줘 봐."

자세를 낮추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아빠가 부드럽게 말을 하자 그제야 아이는 슬그머니 손바닥을 들어 펼쳐 보인다.

아이의 허연 손바닥 위에는 몇 개의 빨간 열매가 올려져 있었다.

예전 구례에서 지낼 때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 어귀마다 심어져 있던 산수유나무의 그것과 닮은 열매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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