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터널 끝에 빛이 보이면..

델타와 오미크론, 그 이후는..

by 라미루이






며칠 전부터 혓뿌리 너머 편도선 아래가 칼칼하고 밤이면 코가 막혀 숨쉬기가 불편하다.

무릎, 어깻죽지 등 몸 마디마디가 욱신거리고 평소에 비해 소화도 더딘 것만 같다. 촉이 온다.

직감적으로 한 문장이 떠오른다.

'이건 코로나가 틀림없어.'

떨리는 마음으로 겨드랑이 체온계로 열을 재보니 36.4 도. 지극히 정상이다.

지난주, 큰 아이 솔의 교실에서 오미크론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로 아이들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공통된 증상은 목 안을 수세미로 긁어 내린 것처럼 아프고, 가래가 수시로 끓고 코가 꽉 막혀 킁킁거린다.

열을 재면 36.7 도 부근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 아이들의 뺨이 불그레하길래 이마에 체온계를 터치하니 36.9 도. 37 도를 넘어선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무래도 오미크론이 확실하다 싶어 아이들 학교에서 지급한 자가 진단 키트로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음성. 희미한 빨간 줄 하나, 표시창 위로 천천히 떠오른다. 의심스러워 몇 번 더 검사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그럼 일반 감기라는 얘긴데.. 요즘 유행하는 감기는 오미크론처럼 극심한 인후통이 주증상이란 말인가? 저 진단 키트가 거짓을 말하는 건 아닐까?

복잡하게 부정적으로 생각지 말고 눈에 보이는 결과를 믿어보기로 한다.

코로나가 아니라니 다행이다 싶어 안심하면서도 차라리 경증으로 지나간다면 무덥지 않은 이른 봄에 걸려서 회복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가족은 작년에 델타에 걸렸으니 백신을 맞고 오미크론까지 겪는다면 당분간 코로나 걱정은 접어 두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경박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예부터 일부러 사서라도 고생한 만큼 낙이 온다고 하지 않던가. 세간에서 재미 삼아 말하는 코로나에 대한 '무적권'을 획득하지 못하더라도, 웬만한 변종쯤은 걸리더라도 경증으로 넘길 수 있는 '슈퍼 파워 항체'가 생성된다면 그걸로 성공이다.



지금 가족들을 괴롭히는 바이러스가 오미크론인지 일반 감기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델타에 비해 증상이 약하다는 것이다. 경험 상 델타에 걸리면 사람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실내에서 움직이면 열이 오르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끔찍한 두통이 엄습한다. 잠깐 메시지라도 확인하려 폰을 볼라치면 이마와 정수리 꼭지로 솟구치는 열기에 어지럽고 토할 거 같아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잠이라도 청할까 하고 누우면 누가 갈비뼈 부근을 팔꿈치로 지그시 누르는 것처럼 묵직한 고통이 전해져 견딜 수 없었다. 자세를 고쳐볼까 옆으로 누우면 마른기침이 쉴 새 없이 터지고 다른 부위가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쑤신다. 밤새 뒤척이다가 코가 꽉 막히면 그날 잠은 다 잔 것이다. 어떠한 해열진통제와 코를 뻥 뚫리게 한다는 약들을 먹어도 코막힘은 해결 못했다. 강력한 수면제를 먹고 일찍 잠이 들던가, 입으로 숨을 겨우 내쉬면서 토막잠을 자는 수밖에는 방도가 없었으니..


코로나에 걸린 지 사흘째였나? 아마도 나흘째였을 것이다. 선잠을 자다가 퍼뜩 새벽에 깨어나니 열이 39도였다. 타이레놀을 한 알 먹었는데 곧바로 온몸에 열감이 휘몰아치더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찬 보리차를 벌컥 들이켜고 약효가 모자란가 싶어 타이레놀을 한 알 더 삼켰다. 그제야 전신을 휘감던 열풍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체온계는 주황빛 액정을 깜박이며 경고음을 울렸다. 이부프로펜이 들어간 해열제를 먹어도 좀체 듣지를 않았다. 고열이 4시간 정도 몰아치면 다음은 오한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맨몸이 푹 젖을 정도로 진땀을 흘렸는데, 그 열기가 식다 못해 양 어금니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덜덜 떨렸다. 몇 시간 전에는 한여름처럼 걸친 옷을 훌렁 다 벗어던지더니 이제는 두터운 점퍼를 껴 입고 달달 떠는 내 모습을 지켜본 누군가는 제정신이 아니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정신이 나가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코로나는 내 심신의 한계를 시험코자 채찍질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아마도 이 무렵부터 난 하기도 폐렴이 악화되고, 혈액 염증 수치가 치솟기 시작했을 것이다.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나서 관할 보건소 담당자랑 수차례 통화를 해도 별다른 해결책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비대면 치료를 지원하는 앱이나 서비스가 전무했고, 평소에 거실 수납장에 처박힌 몇 알 남지 않은 해열제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 약마저 떨어지면 가까이 있는 처가에 부탁해 필요한 약을 현관 문고리에 걸어달라 부탁했다. 생활치료센터(이하 생치소)는 자리가 없어 멀리 지방으로 내려가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지정 병원에 입원하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몇 번이나 읍소하고 사정해도 담당 공무원은 서울시의 승인이 떨어져야 입원할 수 있다고 지금은 생치소에 입소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 했다. 그때가 코로나 일일 확진자가 천 명 수준일 시기였을 것이다. 지금은 40만 명이라는 어마 무시한 수가 확진되고 있으니, 만약 오미크론이 델타만큼의 치명률을 가졌다면 상상도 못 할 비극이 우리 주위에 흘러넘쳤을 것이다.


어마 무시한 오미크론의 전파력. 언제쯤 피크에 도달해 하향 곡선을 그릴지 예측이 어렵다.



생치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일주일 남짓한 재택 치료 기간에 입안에 털어 넣은 타이레놀 류의 해열제가 스무 알이 넘었다. 그래도 열은 내리지 않았다. 밤새 흘린 진득한 땀을 도로 얼어붙게 하는, 극과 극을 경험케 한 고열과 오한을 견디다 못해 난생처음 119도 불렀다. 괜한 짓 하는 거 아닌가? 그분들도 이 시국에 바쁠 텐데.. 이웃들이 집 앞에 앰뷸런스가 서 있는 걸 보면 어쩌지? 잠시 부질없는 고민을 했다. 이러다 숨이 막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게 아닌가, 무턱대고 버티다 생사가 갈릴 수도 있겠다는 극심한 공포에 질려 난 119를 호출해 집 주소를 불러 주었다.

새벽 3시 즈음, 하얀 방호복과 투명 마스크로 중무장한 구급 대원이 나타나 간단한 바이탈 체크를 하곤 내게 말했다.

"구급차에 타도 받아줄 곳이 없어요. 코로나 지정 병원에 들어가야 하는데 보건소 통해서 병상을 배정받는 거라 여유가 없으면 구급차 안에서 하루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운이 나쁘면 마땅한 병원을 찾지 못해 다시 돌아올 수도 있구요. 그러니.."

"지정 병원이 아니면 전 응급 치료를 받을 수도 없는 건가요?"

"네. 지금은 방법이 없습니다."

난 그와 잠시 대화를 나누곤 보건소의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좀 더 버텨보겠다고 했다. 어떻게든 위급한 상황을 해결해 주리라 믿었던 119 구급대도 코로나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온갖 끔찍하고 위험한 상황을 접했을 그들도 코로나는 자신뿐 아니라 주변 이들마저 죽음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두려움 그 자체로 다가왔으리라.

이후에 내가 겪은 것을 차근히 글로 옮기는 것만으로 숨이 메이고 미열이 오르고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당분간은 마음 귀퉁이에 깊이 묻어두고 후폭풍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련다.




코로나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신체적, 정신적 고통의 단면들을 차례로 눈앞에 들이밀곤 당신이 언제까지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가만히 숨어 지켜본다. 굳이 캐릭터를 정의하자면 뭐라고 할까. 가학적이다 못해 때로는 변태적이라고 해야 하나. 최악은 그가 집하다는 것이다.

한 가족의 사랑과 결속이 무참히 박살 난다. 친구라 여겼던 이들 중 누군가는 적으로 돌변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무관심한 방관자로 뒤돌아 멀어진다. 바이러스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후에도 당신은 기나긴 불면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고통스러운 과거의 조각이 트라우마로 남아 당신의 악몽에 종종 등장할지도 모른다. 당신의 육체를 완벽히 지배했던 가시 돋친 바이러스는 몸속 어딘가에 웅크리고 동면을 취하는 중이다.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오면 붉은 눈동자를 치켜뜬 그들은 취약한 부위를 찾아 은밀하게 움직일 것이다.

오미크론은 이전의 무자비하고 잔혹한 행태를 버리고, 인류에게 마지못해 자비를 베풀어 동정심을 표하는 듯하다. 그도 그럴 듯이 우리가 갖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절멸한다면, 그들도 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리라. 혹시나 그들이 다른 변이를 통해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종이 나타나 우리를 다시 급습한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쩌면 우리가 지구 상에 공존하는 다른 종들에게 저지른 죄과를 고스란히 돌려받는, 오랜 참회의 시간이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가 겪은 고통이 심히 미약하고 그 깨달음과 뉘우침이 과히 부족하다는, 저 하늘의 옥좌에 걸터앉은 조물주의 분노 어린 최종 판결이 지상에 내렸는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헤매다 저 멀리 희끄무레한 빛을 발견했다고 믿고 싶다.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는, 가까운 이들의 눈빛에 의지해 서로의 손을 맞잡아 끌어 마침내 출구에 다다르면..



쏟아지는 강렬한 태양에 눈이 부시다가, 맨발을 간지르는 사락한 모래알에 움츠리다가

반갑다 손 닿을 듯 날아드는 갈매기떼, 겹겹이 질주하는 파도 자락 밀려와

괴슴츠레한 벌건 눈동자 한참을 껌벅이다

비로소 해맑아지면, 너도나도 달음질쳐

저 푸른 바다로 풍덩 뛰어들 거라고

장난스레 물장구를 날리다 서로의 목덜미 잡아채 수면 아래로 누르고

지치도록 헤엄 치다 미칠 것처럼 웃다 보면

그러다 보면 지난 일은 모두 잊을 거라고

온몸을 가득 메운, 채 아물지 않은 상처와 누릿한 농

아릿한 흉터와 거뭇한 때 자욱은

저 파도에 씻겨 남김없이 지워질 거라고

그렇게 믿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