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며칠 전에 첫째 솔이 감기에 걸렸는데 증상이 오미크론과 흡사했다. 목이 아프고 누런 콧물이 나오고 두통이 겹치는 일련의 증상들. 다행히 열은 나지 않았다. 아이가 정상 컨디션을 찾을 즈음, 다음 차례는 나였다. 도착지인 나주 숲체원을 향해 호남 고속도로를 한창 달리는데 으슬으슬 떨리는 몸살기가 온몸으로 번졌다. 자주 휴게소에 들러 쉬었는데도 노곤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진한 커피를 연달아 들이켰는데도 쏟아지는 졸음을 애써 깨우며 막판 50 킬로 남은 주행을 간신히 버텼다.
별 탈 없이 숙소에 도착했다. 첫날밤부터 인후통과 코 막힘, 쿡쿡 찌르는 편두통과 근육통에 잠을 설쳤다. 증상으로 봐서는 오미크론 변종인 듯싶었는데, 타이레놀 한 알을 삼키고 그럭저럭 뒤늦은 새벽잠을 청할 수 있었다. 작년에 처음 델타에 걸렸을 때는 고열에 오한을 비롯한 온갖 증상으로 지옥을 경험하더니, 몸이 점점 코로나 바이러스에 적응을 하는가 보다. 이제는 계절 독감보다 못한 위력으로 사나흘 고생시키고는 독한 후유증 없이 물러가는 걸 보니..
나주 여행 마지막 날, '드들강 솔밭 유원지'에 들렀다. 마스크로 가렸지만 콧물이 줄기차게 흐르고 편도 부위가 따끔하다. 그래도 주변의 맑은 공기 탓에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인적이 뜸한 곳에서 까끌한 마스크를 살짝 턱 아래로 내리고 숨을 깊이 마셔본다. 그래, 마스크만 없어도 폐부 깊이 오가는 숨이 이리도 상쾌하구나.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이 숨을 들이내쉰 적이 언제였던가. 잃어버린 '2년'. 그 시간이 까마득하다.
작년 겨울만 하더라도 50만에 근접한 확진자 발생으로 가까운 집 밖 외출도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지금과 같은 국내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자연의 이치에 따라 코로나는 변이를 거듭하며 점차 중증도가 약해졌다. 인간의 면역력은 일진일퇴를 반복하면서 더 강한 항체를 만들어 생존에 일조했다.
강 주변에는 텐트를 치고 휴식을 취하는 캠퍼들 천지다. 돗자리를 펴고 간단한 식사를 마친 후에 와인을 즐기는 커플들도 여럿 보인다. 이곳은 나주 시민들의 손꼽히는 유원지이자 캠핑의 요지임에 틀림없으리라.
공식 지명은 지석천이지만 현지 주민들은 '드들강'이라 부른다. 끊임없이 물이 드나들어 드들강인가 했는데, 그 유래를 캐보니 한 서린 사연이 숨어 있었다. 옛 지석강 상류에 제방을 쌓다가 자꾸 허물어져서 점을 쳐 하늘에 물었단다. 결국 근처 마을의 숫처녀 '디들'을 제물 삼아 물길 막을 자리에 묻고 나서야 튼튼한 둑을 쌓을 수 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어쩐지 암녹색 강물에 몇 발짝 가까이 다가가면, 온몸을 끌어당기는 음기 아니 귀기에 등골이 얼어붙는다 했더니..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선다. 수심이 깊어 물밑 바닥을 헤아릴 수 없으니 당연히 물놀이는 주의해야 한다.
구불하게 뻗은 소나무 사이를 뚫고 강변에 서면, 멀리 지석교를 향해 흐르는 강물이 유유하다. 물살의 흐름을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마음이 시원해진다. 상경 길이 유난히 막힌다네, 가다 서다 5시간 넘는 운전을 각오해야 한다네, 심란한 소식에 염려되고 어지러운 마음이 일순간 정리되어 차분해진다. 머무르는 캠퍼들이 너도나도 강기슭에 나란히 앉아 물멍에 취한 것이 이해가 된다. 뒷짐을 지고 잔잔히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며 뒤엉킨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 가자 보채는 것도 아닌데 까짓것.. 마음 비우고 천천히 올라가자, 이렇게 되뇌어 본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무성한 솔가지가 드리운 그늘로 인해 객지에서 찌든 피로가 싹 달아난다. 무거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계속 머무르고 싶다. 여행 막바지에 이르면 항상 이런 기분이 들곤 한다. 미처 더듬어 보지 못한, 비밀스러운 장소를 뒤늦게 발견하곤 한숨을 뱉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여행은 이런 아쉬움과 후회로 물든, 일종의 여지를 남기며 끝을 맺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떠나야 한다.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을 그리기 위해 컴퍼스의 다리는 시작점으로 돌아와야 하듯이..
절경을 자랑하는 피서지인 이곳도 곧 해가 질 것이다. 어둠이 깔리면 즐비한 텐트들은 하나둘 철수할 것이고, 왁자한 수다와 폭소는 정적에 잠길 테지. 난 멀리서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을 손짓하여 부른다. 얘들아, 우리도 이제 가자. 집에 돌아가야지. 아이들은 안 돼! 손사래를 치며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하지만 아이들도 언젠가 지칠 것이다. 집이 그리울 때가 올 것이다.
잠시 사금파리를 흩뿌린 듯한,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멍을 때린다. 가끔은 눈이 부셔 실눈을 뜨거나 고개를 돌릴 때도 있다. 가까이 돗자리를 펴고 누웠던 젊은이들이 주섬주섬 짐을 정리하고 자리를 뜨려 한다.
별안간 와드드, 킥보드 바퀴 멈추는 소리와 함께 솔과 연이 달려들었다.
"아빠, 연이 손바닥에서 피 나."
"어쩌다가 그랬어?"
울상인 아이는 움츠린 손바닥을 펴서 보여준다. 다소 깊이 파인 상처 부위에 벌건 피가 배어난다. 신나게 발을 구르며 킥보드를 타더니 속도를 못 이기고 넘어진 것이 분명하리라.
"일단 차로 돌아가자. 더 놀기엔 무리야."
솔과 연은 고개를 끄덕이곤 말없이 내 뒤를 따른다. 요란스레 깔깔대던 아이들의 웃음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와 함께 멀리 여행지에서 생동하던 호기심과 열정도 차차 잦아들었다. 떠돌다가 드들강 언저리에 머무른 연緣은 여기까지인가. 언젠가 연이 닿는다면 다시금 이곳을 찾게 될 테지. 그때도 잡다한 상념을 잊게 하는 저 빛나는 강물과 나른한 몸을 뉘게 하는 솔나무 그늘은 여전하겠지.
몇 시간 후, 우리는 여전히 아스팔트 길 위에 있다. 네비의 귀경길 상태는 정체를 뜻하는 빨간색 천지이고, 불의의 사고를 알리는 경고가 잇따른다. 바로 앞에 터널이 어둑한 입을 벌리고 있다. 저길 통과하면 우리 '집'에 한층 가까워지리라. 일렬로 늘어선 차들의 최종 도착지. 터널 안에 갇힌 수많은 차들이 거북이걸음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하는 곳. 운이 나쁜 몇몇 차들은 예상치 못한 사고와 고장으로 무리에서 낙오해 집에 당도하는 시간이 늘어지기도 한다. 불운을 면한 대다수는 오늘 안에 집에 돌아가 편히 휴식을 취하겠지. 그래야 한다. 우리 가족 또한 무사히 이 길의 끝에 도착해야 하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차량들은 점차 간격을 벌리며 속도를 높인다.
평택-파주 간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집까지 한 시간가량이 남았다. 이 도로는 졸음 쉼터도, 휴게소도 없다. 잠시 정차할 만한 비좁은 갓길도 여의치 않다. 오로지 앞을 보며 달릴 뿐이다. 난 액셀 페달에 올린 발끝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 집에 다다르면 우리는 고단하고 지루한 일상을 이어가겠지. 그렇게 하루하루 견디고 버티다 보면 우리는 이국적인 사진이 가득한 여행 매거진을 뒤적일 것이다. 다시금 어딘가로 떠나기를 갈망하리라.
다시 정체 구간이다. 난 차창을 열었다. 뒷자리에 곤히 잠든 아이들이 갑자기 밀려든 기류에 몸을 뒤척인다. 연의 손바닥에 붙인 응급 밴드가 눈에 들어온다. 카시트에 등을 기댄 아이는 불편한지 몸을 옆으로 돌렸다. 집에 돌아가면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연고를 발라줘야겠어, 잊지 않게 두어 번 떠올리면서 차창을 닫았다. 아이의 깊은 상처가 아물 때 즈음, 우리는 차 트렁크에 짐을 가득 싣고 먼 길을 떠날 여력이 차오를 것이다.
얼마 후, 난 차의 시동을 끄곤 아이들을 깨웠다.
아빠, 집이야? 아이들이 멍한 눈으로 묻는다.
난 뒤돌아 고개를 끄덕였다. 차에서 내리자 사지가 덜덜 떨리고 무릎이 꺾인다. 눈앞이 어질하다. 장거리 운전의 여파가 이리 남았다. 오늘은 집에서, 몸에 익은 이부자리에서 일찍 잠을 청해야겠다. 내일은 익숙한 일상을 시작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