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꼽은 나주 원픽 맛집

나주 여행기, 송현 불고기

by 라미루이




"너희들 나주 여행 가서 제일 맛있었던 식당이 어디야?"

"음, 너무 많아서 바로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난데없는 질문에 아이들은 곰곰이 지난 음식들을 떠올리다 입을 뗀다.

"전 그 돼지 불고기 구워 나온 식당이요."

"처음에 계란찜 나왔던 그 식당 말하는 거지?"

"맞아요."

언니 옆으로 다가온 연이 초롱한 눈빛을 보낸다.

"저도 그 식당이요. 아빠, 언제 또 갈 거예요?"

"너희들 또 가고 싶구나? 기회가 되면 아빠도 다시 가고 싶다."



솔과 연이 나주에서 베스트 맛집으로 꼽은 식당은 바로 '송현 불고기'였다.

지난 4월 막날 그러니까 토요일 저녁에 들렸는데 테이블마다 왁자지껄한 남도 사투리가 터졌다.

고개를 두리번대다 비어 있는 자리에 엉거주춤 앉는다. 반면에 아내는 여러 번 찾은 단골처럼 익숙하게 주문을 마친다.

"저희 불고기 4인분에 공깃밥 셋 주세요!"

"엄마, 사이다 한 병 먹으면 안 돼요?"

"그래. 시원하게 한 잔 마시자."

아이들은 달달하면서 톡 쏘는 사이다를 마실 생각에 얼굴이 싱글벙글하다.


주문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 기본 반찬이 테이블 가득 깔린다. 글몽글한 계란찜이 각자의 앞에 놓이고, 곱게 개어진 쌈장 옆 칸에 붉은 젓갈이 보인다.

"이건 뭐예요?"

젓가락으로 콕 집어 맛을 보려다 먼저 물어보기로 한다.

"젓이여, 토하젓. 쌈장 대신 올려 먹으면 더 맛나."

시래기 된장국에 겉절이, 고추 장아찌, 콩나물 무침 등이 담긴 접시들을 광속으로 내려놓던 이모가 화통하게 답한다.

"애들이 이쁘네. 계란찜 모자라면 말혀요. 더 줄 테니."

"네,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송송 썬 쪽파를 흩뿌린 계란찜을 한 숟갈 덜어 맛을 본다. 입 안에 넣자마자 사라지는 밀크 푸딩을 맛본 것처럼 아이들이 연거푸 숟갈을 놀린다. 결국 아이들은 처음 나온 계란찜을 싹 비우곤, 한 공기씩 리필하여 식전에 주린 배를 달랬다.



테이블에 놓인 반찬을 고루 맛을 보고 나서야 주위를 둘러본다. 벽에 걸린 송현 불고기의 메뉴판은 심플하다.

본 메뉴인 불고기, 공깃밥, 주류와 음료가 전부다.

옆 테이블에 기름기가 번지르한 불고기 한 접시가 놓인다. 실눈으로 훔쳐보니 육질의 가장자리와 군데군데, 거뭇하게 탄 자국이 여실하다. 철판에 납작하게 누른 채로, 연탄불에 올려 구웠음에 틀림없다. 잠시 후 진녹색 앞치마를 두른 사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둥근 접시를 들고 다가온다. 테이블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한, 노릇하게 구워진 돼지 불고기 한 접시. 그런데 양이 좀.. 애매하다.

"지금 나온 게 4인분 맞나요?"

"한 번에 구우면 나중에 맛이 떨어져서요. 1인분 씩 구워지는 대로 가져다 드릴게요."

"넵."

넙데데한 고기 살점을 숭덩숭덩 잘라 아이들 밥 위에 차곡차곡 올려준다. 솔과 연은 고기를 한 점 맛보자 엄지를 추켜올리며 '최고!'라고 칭찬하기 바쁘다. 나도 고기를 한 점 들어 맛을 본다.

바짝 달아오른 구공탄에 올려 구운 탓에 비계 부위가 젤리처럼 쫀득하다. 퍽퍽하거나 비린 맛이 전혀 없다. 고기 두께는 흔히 접하는 대패 삼겹살을 두엇 겹댄 만큼이다. 두터운 고깃살은 성급히 겉이 타드는 연탄보다는 오래도록 구울 수 있는 숯불에 어울릴 것이다.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키며 쌓인 내공이 어디 가겠는가.

강불에서 단시간 구워내 마르거나 퍼석 부스러지지 않는, 오래 씹지 않아도 야들하게 목젖을 넘기는 식감을 자랑한다. 어금니가 부실한 노약자와 달달한 식감을 즐기는 아이들도 즐겨 찾을 맛이다.

"불맛이 가득 배어서 더 맛있네."

아내가 입가에 묻은 기름기를 닦으며 한 마디 한다. 연탄불 특유의 스모키 하면서 매캐한 향이 고깃결에 진득이 배어 입맛을 돋운다.


제법 느끼하다 싶으면 쌈채소 위에 고기 한 점 올리고, 매큼한 토하젓을 한 꼬집 더 올려 보라. 양 볼이 터져라 쌈을 넣으면 짭짤하고 달큰하고 쫀쫀하다가 이내 사라지는.. 온갖 맛들의 향연이 입 안 가득 펼쳐질 것이다. 요즘 물가가 올라 쌈채소를 덜어주는 데 인색한 식당들이 많은데, 이 식당은 야채나 반찬류를 리필하는 코너를 주방 외부에 두었다.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싱싱한 상추와 김치를 덜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과욕은 금물. 먹을 수 있는 만큼, 정도껏 접시에 담도록 하자. 테이블 여기저기 잔반이 넘친다면, 다른 손님들이 맛볼 쌈채소가 일찍 동이 난다면, 인심 후한 사장님도 리필 코너를 유지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할지 모르니까.


테이블 가득 놓인 밑반찬들은 하나 같이 맨 입에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자잘한 고추 장아찌 또한 그냥 먹어도 새콤하니 맵지가 않다. 단, 젓갈이 걸쭉하게 들어간 남도 스타일 묵은지는 홀로 먹기엔 그 맛이 강렬하다. 밥 한 숟갈에 고기 올려, 묵은지 한 닢 펼쳐 보쌈하듯이 함께 먹어야만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좀체 물리지를 않는다. 이쯤이면 질릴 법도 하건만 연탄 불고기 네 접시를 연달아 비운 후에도 뭔가 허전하다.

아이들 또한 빈 접시를 바라보다가,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입맛을 다시는 것이 배가 부른 기색이 아니다.

"2인분 더 먹을까?"

솔과 연의 표정이 급 밝아지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난 근처의 이모님을 눈짓하여 부르곤 손가락으로 'V' 자를 그렸다.



우리는 얼마 후 '송현 불고기'를 나섰다. 아이들은 양껏 배를 채워 만족한 듯싶지만, 이번엔 내가 아쉬웠다.

앞서 걷는 아내도 자꾸만 뒤돌아 식당 간판을 바라본다. 지갑 부담 없이 양껏 먹는다면 혼자 '10인분'도 해치울 만한, 종종 그 맛을 떠올리게 하는 중독성을 지닌 맛집이다.

언제든 '나주'를 찾는 이들 기억에 남을 한 끼니를 위해 적극 추천하고픈 식당이다.





* 송현 불고기 나주 본점>>

http://naver.me/GtLeC4MW


한가득 차려진 연탄 불고기 상차림. 나주 5미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먹음직스럽다.


십여 년 전, 아는 사람들만 알음알음 찾아들었던 송현 불고기 식당. 지금은 번듯한 새 건물에 자리 잡았다.


식사를 마친 후, 나주 숲체원 광장에서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