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부로 남을 슈퍼볼 LVII

NFL Super Bowl 2023을 보고..

by 라미루이







다른 스포츠와 달리 미식축구의 공은 둥글지 않다. 좌우 양 끝이 뾰족하고 가운데가 넓은 모양이다. 쿼터백의 손을 떠나 멀리 자리 잡은 와이드 리시버에게 향하는 공은 맹렬히 회전하며 상공을 날아간다. 얼핏 보면 피스톨에서 발사되어 공기를 뚫고 음속으로 돌파하는 총알의 움직임을 닮았다. 진갈색 총알은 공격수의 전진을 막으려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상대 진형의 가느란 빈틈을 찾아 송곳처럼 파고든다. 높이 점프한 리시버의 오른손 끝에 걸려 간신히 가슴팍에 안착한 공은 곧바로 강력한 충격을 받아 튕겨나갈 뻔했다. 마주 달려온 코너백과 세이프티가 리시버와 충돌한 탓에 피혁 재질의 공은 납작하게 눌린 나머지 뻥, 터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이걸 펌블하여 놓치기라도 하면 아몬드 모양의 공은 지면에 닿자마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허의 폭탄으로 변한다. 팀 구분 없이 너도나도 공 위로 달려들어 선수들은 수북한 무덤처럼 차곡차곡 쌓이리라.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선수들의 삐져나온 팔다리가 제각각이다. 심판 두엇이 달려들어 버둥대는 선수들을 하나둘 끌어내면 그제야 공을 품에 안은 최후의 선수가 드러날 테지. 시간을 조금이라도 지체한다면 그 선수는 무시무시한 압력을 견디다 못해 공을 안은 채 혼절할지도 모른다.


단선 철도에서 마주 달리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두 폭주 기관차가 정면 충돌한 것처럼.. 두 수비수 사이에 끼인 날렵한 몸매의 리시버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공중에서 균형을 잃어 한쪽 어깨와 머리가 먼저 지면에 떨어진 탓에 그는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육중한 헬맷을 썼지만 머리통 안에서 대성당의 종이 뎅뎅, 울리는 것처럼 지끈거린다. 발 밑에 대전차 지뢰라도 폭발한 건지, 사지가 무력하고 두 눈이 빠질 것처럼 아프다.

몽롱한 그의 뇌리에 어릴 적 봤던 영화가 갑자기 떠오른다. <Any Given Sunday>였나? 명배우 알 파치노가 미식축구 헤드 코치로 출연한 그 영화.. 사방에서 달려드는 라인 백커들의 강력한 태클을 견디지 못해 초록 필드 위에 나뒹구는, 누군가의 뿌리째 뽑힌 눈알이 인상적이었지. 다행히 내 눈깔은 빠지지 않은 거 같아.

발목을 절뚝이며 달려와 날 일으켜 주는 우리 쿼터백의 핸섬한 얼굴이 뚜렷이 보이니 말이다. 곧이어 우웅, 하고 떨리고 진동하던 고막이 진정되며 점차 커지는 관중들의 함성 소리를 들려준다. 그는 안락한 침대 위에 누워 자신의 늘씬한 애인을 껴안듯이, 품에 꼭 밀착한 가죽 공을 높이 쳐들어 팬들에게 화답했다.

3rd Down 시도 끝에 15 야드 전진 롱 패스 성공. 망할 '필리' 녀석들의 가운데 거시기를 냅다 차 줄 때까지 불과 20 야드 남았다. 승부를 결정 지을 터치 다운도 내 차지야. 절대 다른 동료들에게 양보할 수는 없지.

그는 느슨해진 헬멧 끈을 바짝 고쳐 매고는 O-Line 우측 끝에 자리 잡았다. 헬맷의 무선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공격 메시지를 귀담아듣는다. "Eagles.. Eagles Strike Down 3!"

약간의 노이즈가 섞인 공격 코드가 떨어졌다. 무수한 훈련을 통해 숙지한 플레이북 25 페이지의 공격 동선과 포메이션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뒤로 물러나 쿼터백 앞을 지나 좌측으로 포지션을 옮겼다. Huddle! 쿼터백의 첫 구호가 울리자 필드 위의 모든 선수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Set! 당장이라도 상대를 향해 돌격할 양측 선수들의 손과 발 끝에 힘이 들어간다. Hike! 마지막 구호와 함께 유난히 큰 몸집의 공격 센터의 숨이 멈추는가 싶더니 필드에 닿은 공을 재빠르게 스냅, 순간 뒤로 날아간 공이 쿼터백의 손에 안겼다. 이후는 동물적인 감각과 야생 본능이 최우선으로 요구된다. 정글과 초원을 헤집고 맹렬히 질주하고 추격하는 최상위 포식자들 간의 혈투가 벌어진다. 코치진이 맹신하는 두꺼운 플레이북에 그려진 그럴싸한 작전들도 이론적으로는 중요하다. 하지만 슈퍼볼 같은 빅게임에서는 순간순간 바뀌는 상황에 대응하는 기민한 움직임이 팀을 승리로 이끈다.

디펜시브 라인이 한쪽으로 쏠린 틈을 타 그는 재빨리 턴을 해 반대편으로 파고들었다. 눈 밝은 쿼터백은 그를 놓치지 않고 우아한 궤적을 그리는 패스를 곧바로 던졌다. 그는 자신의 심장을 향해 곧장 날아오는 공의 느린 회전을 바라보며 전율했다. 미지의 우주 공간에서 출현해 자유 비행하는 구형 물체처럼 황홀하고 아름답다고 느꼈다. 어떻든 저 공을 캐치할 수 있다면, 품 안에 간직할 수 있다면.. 자신을 조준한 스나이퍼의 치명적인 은빛 총탄이라도 기꺼이 온몸으로 받아내리라 다짐할 수 있었다. 곧바로 그는 두 팔을 뻗어 공을 감싸 안았다. 빙그르 회전하던 공의 움직임과 요동이 멈추는 것이 전해졌다. 다른 동료들과 뒤엉킨 저편의 필리 수비수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무인 지대에서 공을 품에 안은 채, 5 야드 가량을 내달려 터치 다운 존으로 직행했다. 그는 뒤따라 달려온 동료들과 얼싸안고는 어울려 느린 템포로, 힙한 세리머니 춤을 추었다.

이 순간, 애리조나 글렌데일의 'State Farm Stadium'에 운집한 수많은 'Kansas City Chiefs(칩스)' 팬들은 팀의 통산 세 번째 슈퍼볼 우승을 직감했다. 경기 전 상대 팀 '필라델피아 이글스(필리)'의 우세를 점친 어쭙잖은 평론가들을 비웃고 헐뜯었다. 필드 위에서 거친 숨을 내뱉으며 마지막 플레이를 준비하는 팀 선수들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며 환호했다.

그들은 칩스의 로고가 새겨진 거대한 빨간 깃발을 좌우로 흔들며 응원팀이 승리한 기쁨을 만끽했다.






4 쿼터 종료 11초를 남기고 20 야드 안쪽에서 칩스의 키커가 찬 필드 골이 성공했다. 접전 끝에 3점을 더하며 38 대 35로 칩스가 간발의 차로 앞섰다. 발목 부상에도 불구하고 4 쿼터 막판 모든 드라이브에서 점수를 올린 칩스의 쿼터백 '마홈스'의 정확한 패스와 필리의 허를 찌르는 단독 러닝 돌파가 돋보였다. 백전노장 앤디 리드 감독의 막판, 적재적소에 작전 타임을 부르고 최대한 시간을 끌며 승리를 굳히는 경기 운영의 묘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전력 상 앞선다고 평가받은 필리의 러싱 공격 라인은 예상 대로 강력했지만, 칩스의 디펜시브 라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맞섰다. 언더독으로 평가 절하된 칩스의 모든 선수들은 경험 많은 감독과 패기 넘치는 쿼터백의 리딩 아래 합심하여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NFL 역사에 남을 영원한 Goat '톰 브래디'가 은퇴를 선언한 지금, 칩스의 젊은 쿼터백 '패트릭 마홈스'가 그의 뒤를 쫓고 있다. 이제 5번 더 슈퍼볼 우승을 하면 어쩌면 Goat의 드높은 명성이 꺾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갈길이 멀다. 칩스와 마홈스가 앞으로도 승승장구, 롱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슈퍼볼 승리의 주역 '패트릭 마홈스' 99년 이후 시즌 MVP와 슈퍼볼 우승을 동시에 차지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당연히 슈퍼볼 MVP 도 그의 차지가 되었다.
주목받은 Kelce 형제의 대결은 결국 동생 Travis Kelce의 승리로 마감되었다. 하지만 형제들은 경기 종료 후 얼싸안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했다.
칩스의 헤드 코치, 명감독 '앤디 리드'


* 슈퍼볼의 백미, 하프타임 리한나 공연 영상>>

https://youtu.be/HjBo--1n8lI


* 슈퍼볼 2023 경기 하이라이트>>

https://youtu.be/BWkt79xkd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