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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의 가족 여행

강원도 동해, 무릉 계곡에 머물다

by 라미루이







벼르고 벼른 가족 여행이다. 내 담낭 수술과 예기치 못한 태풍 상륙으로 일정이 거듭 미뤄졌다. 아이들은 시무룩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일요일 오전, 강원도 동해로 가는 길은 꽤 수월했지만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도착할 즈음엔 비를 뿌렸다.


세 시간 만에 도착한 건강 무릉숲 숙소에 짐을 풀었다. 아이들은 곧장 오선녀탕으로 달려가 푸른 계곡물에 풍덩! 뛰어들었다. 근처의 무릉 계곡에 흐르는 얼음물을 끌어와서인지 맨 발목만 담가도 온몸의 무더위가 싹 가실 정도다. 아이들은 뛰어들자마자 아이 추워.. 몸을 부르르 떨지만 바로 뛰쳐나오지는 않는다. 10분 정도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물장구를 치고 막헤엄을 치다 보면 되려 덥다고 물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마음에 맞는 또래 아이들과는 나이도 묻고 통성명도 하면서 옆에 붙어 다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도 떨고 물놀이도 하면서 꽤 친해졌다.


오후 4시 넘어서는 빗줄기가 굵어졌다. 바닥의 뜨거운 열기는 식은 지 오래고 수면을 때리는 빗살은 끊임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중 물놀이 삼매경에 빠져 헤어나지를 못한다. 폐장 시간이 다 되어서야 아이들은 비를 쫄딱 맞은 채 오들오들 떨면서 물밖으로 나왔다. 북적이던 선녀탕은 점차 빈자리가 넓어지고 주차장을 메운 차들은 하나둘 밖으로 빠져나간다.


아쉽게도 계곡 수영장 운영은 오늘까지라고 한다. 내년 여름을 기약하며 가까운 숙소로 돌아왔다. 밤새 비가 내렸고 새벽 무렵엔 두꺼운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로 바깥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간밤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바윗계곡을 울리며 아래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섬뜩하리만치 가까웠다가 점점 아득해졌다. 거센 밤비를 틈타, 어딘가 숨어들어 목욕을 즐기는 다섯 선녀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얼핏 들리는 듯했다. 잠시 뒤척였지만, 그간 무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며 간만에 깊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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