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여행지에 와서 물놀이 다음으로 하고픈 게 뭐냐고 묻자, 잠깐 고민하더니 말문을 연다.
- 아빠, 전에 여기 여행 왔을 때 찾았던.. 앵무새 카페 가면 안 될까요?
- 맞다. 앵무새한테 먹이도 주고 어깨에도 올리고.. 그때 재미있었어요!
아이들이 진정 원한다면야 어디든 못 가겠는가. 이른 아침부터 차를 몰아 숙소에서 가까운 앵무새 카페를 찾았다. 굵은 자갈이 두텁게 깔린 공터에 주차를 하고 카페 문을 여니 실내에 아무도 없다.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에 찾은 시간도 이른 데다, 곧 아이들 개학 날짜가 다가오니 휴가 중인 다른 가족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듯싶었다.
넓은 자리를 골라 앉으니 노랑 앵무새 삼총사가 모이통 횃대에 앉은 채로 탁자 위에 놓인다. 솔이 검지를 가까이 들이미니 한 마리가 주저 없이 올라타더니 팔꿈치를 타고 어깨 위까지 올라가는 게 아닌가. 나머지 두 마리도 냉큼 아이 손목에 올라타더니 재빠른 옆걸음으로 목덜미에 숨어든다.
겉으로 보기엔 이쁘장하고 순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즐기는 땅콩이나 호두, 해바라기 씨앗을 바치지 않으면 뾰족한 부리로 귓불을 비틀어 꼬집거나 목덜미를 쪼아대기 일쑤다. 머리 묶는 끈을 잘근 깨물어 잡아당기기도 하고, 반짝이는 목걸이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 아야야, 아빠 얘 좀 떼어줘. 제발..
내가 가까이 다가가 먹이를 주어 달래거나, 손가락을 까딱거려 경고를 날리고 중재를 해야, 짓궂은 앵무새는 겨우 부리질을 멈추고 아이에게서 떨어진다. 아무래도 체격이 작은 어린 아이라 우습게 보여서인가 싶어, 앵무새 여럿을 한 번에 어깨 위로 올리지 말도록 주의를 주었다.
- 얘들아, 순한 놈 한 마리만 손에 올리는 거다. 한꺼번에 여럿 올리면 부리로 꼬집고 쪼아대고 괴롭히니까 조심해. 알았지?
- 네, 아빠.
녀석들은 눈치가 빠른지 더 이상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 대신 활달한 성미와 왕성한 호기심을 참지 못해서인지 끊임없이 테이블을 휘저으며 깨뜨린 견과류 껍질을 흩뿌리는 등 난장판을 벌였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묽은 새똥을 폭탄처럼 떨구는 걸 녀석들은 당연하게 여겼다.
난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려 책을 펼쳤지만 앵무새들은 이내 달려들었다. 집에서 돌보는 개냥이처럼 시샘과 질투가 만만치 않은지, 책 표지 위로 올라와서는 책등을 깨물고 쪼고 한바탕 난리를 피우더라. 하는 수없이 책장을 덮고 폰을 열었지만 녀석들은 내가 손에 쥔 것에 집착하며 액정 위로 껑충, 날아올라 유튜브 영상을 가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리곤 하는 것이었다. 혹여 녀석들이 허연 물똥을 무차별 투하할지 몰라 난 모든 소지품을 내려놓고는 맨손을 들어 보여 주었다. 그제야 앵무새 무리들은 내게서 떨어져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앵무새들의 과도한 집착과 생떼에 질렸는지, 주문한 청포도 에이드와 아이스티를 마시기만 하고 녀석들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나 또한 멀리 여행지에서까지 생면부지 낯선 앵무새들의 집사 노릇을 할 수는 없었기에, 카페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