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낭 수술 이후 처음 쿠팡 물류 센터 일을 다녀왔다. 마지막으로 다녀온 날이 수술 이전 6월 중순이었을 것이다. 컨디션이 영 별로였는데, 모든 것이 얼어붙은 곤지암 쿠팡 냉장/냉동 센터에서 어떻게든 일을 마쳤던 것이 떠오른다.
며칠 전에 시흥 쿠팡센터 주간조에 지원했었는데, 전날 마셨던 콤부차가 문제였는지 지독한 편두통과 복통이 엄습했다. 타이레놀 2알을 먹어도 통증이 잦아들지를 않더라. 결국 출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5시 알람에 일어났지만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멀리 나갈 엄두가 나지를 않아 "빌어먹을, 나약한 데다 예민한 몸이라니.."라고 한탄하고는 통증을 견디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떻든 일어나 새벽 출근 버스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이른 아침 일어났는데 오늘만큼은 끝까지 일을 마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잠은 네 시간 남짓 잤지만 많이 피곤하지는 않았다. 많이 걸을 것을 대비해 두꺼운 양말을 신었고, 추위를 견디기 위해 겹겹이 옷을 걸쳐 입었다. 고양 쿠팡센터는 처음 가보는 물류센터이다. 서울 도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것이 장점이란다. 쿠펀치 등록을 하고 신규 근무자 교육을 듣는다. 난방이 잘 되는 가건물이라 졸음이 스르르 밀려온다.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현장에 투입될 차례다. 고양 센터는 독이 개방되어 있어 실내라 해도 그다지 따듯하지 않다. 여기저기서 발을 구르고 벌벌 몸을 떨고 움츠리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얇은 옷을 입은 이들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칼바람에 감기가 도질지도 모른다.
입고 업무를 배정받았는데 하필이면 토트마다 두꺼운 서적들이 한가득이다. 오늘도 몸성히 퇴근하기는 글렀구나 하고 체념했다. 책만큼 부피에 따른 무게감도 있고, 옮기기 까다로운 물건이 있던가. 책은 이리저리 이동하기보다는 자신을 아끼는 애독자 또는 장서가 곁에 영원히 머무르기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수많은 책들을 진열창고 칸칸에 나누어 꽂다 보니 손목이 시큰하고, 어깨며 허리가 쑤시다. 담낭을 적출한 오른 갈비뼈 아래가 뻐근하고 답답한 것이 숨쉬기가 곤란할 지경이다. 중도에 포기하고 조퇴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중간중간 몰래 휴식을 취하면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힘에 겨울 때는 더욱 고된 일을 겪었을 적을 떠올리며 각오를 다졌다. 커피 사탕을 녹여 먹으면서 노곤한 몸과 마음이 깨어나길 기대했다.
쿠팡은 냉동 센터를 제외하고는, 식사 시간을 포함한 1시간 외에는 휴게 시간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급한 PDA로 동선을 체크하고, 작업 효율을 세밀히 따지면서 딴청을 피우지 못하게 감시한다. 10시간을 내리 일하면서 일정 시간마다 휴식하라는 가이드를 전혀 내리지 않는다. 하는 수없이 근무자는 알아서, 몰래몰래 눈치를 보면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숨어서 휴식을 취한다. 실로 야만적이고 가혹한 노동력 착취가 아닐 수 없다. 쿠팡 로켓배송이 인기를 끌고, 기록적인 매출 상승의 배경에는 로봇처럼 쉬지 않고 컨베이어 벨트에 물품을 실어야 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땀과 고통이 서려 있다. 우리를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후 6시.. 드디어 기나긴 근무 시간이 끝이 났다. 쿠펀치 체크아웃을 하고 집 가까이 지나치는 퇴근 버스를 수소문하여 탑승했다. 일당 9만원을 벌기 위해 우리는 추위를 견디고 먼지를 마시며 끊임없이 들이치는 배송 물량을 처리했다. 한 시간 내에 비좁은 식당에 쪼그려 앉아 단가를 낮추는데 급급한 식사를 해결하고, 불편한 휴게실 의자에 앉아 새우잠을 청해야 한다. 얼마 후 퇴근 버스가 출발하고 내부 조명이 꺼지면, 고단한 노동자들은 싸늘한 유리창에 고개를 기대어 하나 둘 곯아떨어진다. 버스 안은 고요에 잠기고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만이 이따금 들릴 뿐이다. 그 안에 글에 담지 못할 수많은 사연들이 고여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그들이 가닿고자 하는 장밋빛 미래는 조금씩 멀어지는 듯하고.. 버티기 어려운 오늘이 쌓여만 간다.우리는 천천히 수렁에 빠지듯이,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다.
며칠 전 제 해묵은 노트북에 몇몇 윈도 업데이트가 자동 설치되었는데.. 이후로 블루 스크린이 수시로 뜨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 글도 몇 번을 날릴 뻔하고 자동 저장본에 기대어 겨우 발행합니다. 복싱 선수와 스파링을 뛰다 복부를 몇 대 맞은 것처럼.. 몸은 노곤하고 등허리가 쑤신데 이 글만은 어떻게든 써보자 하는 오기가 발동하여 폰으로 일차 마무리하여 올립니다. 노트북이 정상 가동되면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펜촉을 세우고 키보드를 두드리려 합니다.
* Van Halen - Dreams (Live Performance Version) [HD Re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