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층 집

폭력은 우리를 전염시키고 아물지 않는 상처를 입힌다

by 라미루이
"굴의 내부는 아이의 눈알처럼 검게 젖어있네......"
<언더그라운드> <<밤의 팔레트>> 강혜빈


일곱 아니 여덟 살이었던가? 당시 정확한 나이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날, 완벽하게 혼자였다는게 중요하니까.

아이는 윤택하게 살아가라는 의미의 '윤潤'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아빠는 회사에서 퇴근하면 늦도록 술자리에 머물다 새벽 1시 넘어 퇴근하기 일쑤였다.

엄마는 오후에 시장 다녀온다고 나간 이후로 늦게까지 돌아오지를 않는다. 아마 가까이 사는 외가에 들러 이모들과 이런저런 수다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으리라.

녹슨 진청색 철제 대문을 나서는 엄마의 손을 잡은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 오빠, 잘 있어~ 집 잘 봐야 돼~~


어린 윤만 남긴 채, 모두가 이 집을 떠났다.


서늘한 마룻바닥에 누워 활짝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느껴본다. 살짝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니 마당 한켠을 차지하는 서너 평 너비의 정원이 시야에 들어온다.

까만 지팡이를 짚고 구부정한 허리를 두드리는 모양새의 빼빼 마른 돌배나무 가지 위에 나비 한 마리가 앉아 쉬고 있다.

작년 가을, 온 힘을 다해 아이 주먹만 한 배를 대여섯 과남짓 영근 기특한 수목이다. 비록 크기는 앙증맞았지만 진득한 물기를 머금은 뱃속은 아삭하고 달콤했다.


이거 먹어봐라. 부실한 터에 자리 잡아 영영 과실을 맺지 못할 줄 알았는데...
저 비실한 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키워 낸 돌배다. 맛 좀 보거라.


아빠가 무딘 과도로 누런 껍질을 깎아 건네준 돌배의 맛을 떠올리자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인다. 올해는 힘이 달렸는지 드문드문 배꽃을 피웠는데 어찌 알고 나비가 찾아왔을까? 살그머니 몸을 일으켜 맨발로 다가가니 나비는 기척을 느끼고는 저 높은 가지로 휘릭 날아가버린다. 손 그늘을 만들어 하얀 나비를 쫓던 아이는 내리쬐는 햇살과 눈이 마주치자 어질 한 현기증을 느끼곤 뒷걸음질 쳐 마루 턱에 주저앉는다.

거실 천장의 정사각 원목 타일에 오목하게 새겨진 장미꽃 문양들을 바라본다. 하나 둘 셋... 같은 장미 타일이 가로로 열두 칸, 세로로 열 칸, 그 가운데 칸에 기름때와 먼지가 잔뜩 눌어붙은 유리 갓을 둘러쓴 백열등 여섯 개가 방사형을 이루며 아이를 내려다본다.


- 저 등 하나만 뚝 떨어지면 난 그대로 하늘나라로 떠나는 건가?

아무도 없는 이 집에서... 멀리 떠나버린다면 모두들 슬퍼하겠지...


천장을 가득 채운 의미 없는 숫자를 헤아리다가 아이의 작은 머릿속을 다른 생각들이 차지한다. 엄마는 왜 날 데려가지 않았을까? 이전엔 집을 비울지언정 자신을 두고 간 적이 없었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날 홀로 두고 어딘가로 떠났단 말인가? 이제 사내아이로서 다 자랐으니 텅 빈 집을 맡겨도 별일 없으리라 믿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함께 데리고 가지 못할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특별히 몸이 아파서 열이 오른 것도 아니고, 다리가 부러져 걷기가 불편한 것도 아니었는데...

온몸의 힘을 빼고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정신이 멍해질 때면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가 자신을 바라보는 싸한 느낌에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둘러본다. 안방 문을 벌컥 열어 화장대 아래도 살펴보고, 자개장롱 문도 열어 본다. 설마 했지만 역시 아무도 없다.


"달가닥"


창고로 쓰이는 다락방을 밝히는 백열등 스위치를 천천히 올린다. 안방과 연결된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 머리를 내밀어 슬쩍 구석을 훔쳐보니 어둑한 그림자만 가득하다. 곰팡내 섞인 먼지 냄새를 맡자 금방이라도 재채기가 나올 듯 콧속이 시큰거린다. 삐걱거리는 계단의 소음이 울려 퍼지자 퍼뜩 놀라 미닫이문을 서둘러 닫고, 오후 햇살이 너울거리는 거실로 도망친다.


- 휴우, 저긴 정말 오싹한 곳이야.


가까스로 벌렁벌렁 뛰는 가슴을 가라앉히고, 거실과 통하는 모든 방문을 활짝 열어 둔다. 그렇게라도 해야 숨어서 지켜보는 귀신이나 유령이 자신을 덮치지 않을 거라고 애써 마음을 다독인다.

홀로 남은 지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심심함을 견디지 못한 아이는 안방에 놓인 낡은 흑백텔레비전으로 다가간다.


"드르륵"


덮개로 기능하는 플라스틱 커튼을 양 옆으로 밀고, 혼탁한 스크린에 얼굴을 가까이 비춰본다. 거울처럼 보이지만 굴절되어 올록볼록 왜곡되어 보이는 모습이 끔찍한 괴물처럼 보인다. 비틀린 자신의 얼굴에 놀란 아이는 서둘러 티비를 켠다. 동그란 다이얼을 돌려 채널을 바꾸지만 좋아하는 뽀뽀뽀나 만화는 나오지 않는다. 딱딱한 표정의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지루한 80년대 뉴스가 나오고 채널을 바꾸는 순간...

갑자기 각시탈을 쓴 남자가 클로즈업되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익살스러운 탈춤 장면이 아닌, 당시 유행했던 전설의 고향에서 나올 듯한 장면이 하필이면 그때 튀어나온 것이다.

붉은 얼굴, 길게 치켜뜬 부리부리한 눈, 험상궂은 눈썹을 가진 그놈은 브라운관에서 뛰쳐나올 듯 가까이 다가온다. 홀로 집을 지키는, 가뜩이나 겁 많은 아이의 눈에 그놈은 정녕 살아 숨 쉬는 '진짜' 괴물 도깨비였다.


으아악. 으아아~~

다행히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으면 탈을 눌러쓴 도깨비에게 잡아 먹히거나, 바보상자로 끌려 들어가 영영 집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을 테니까.

대신에 아이는 온 동네가 떠나가라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전속력으로 안방을 뛰쳐나가 거실을 통과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대문을 박차고 나왔다. 무시무시한 공포에 사로잡힌 맨발의 아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둔 맞은편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 집의 대문은 어서 들어오라는 듯 반쯤 열려 있었다.

마치 자신의 집에 돌아온 것처럼 돌계단을 후다닥 뛰어올라 현관문을 열고는 낯선 신발들 사이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그 집에 살던 형과는 골목에서 종종 보곤 했다. 형 이름이 희문이던가 그랬을 거다. 함께 야구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어떤 날은 골목 사이를 비스듬히 활강하는 날랜 제비들을 잡으려고 지칠 때까지 뛰어다니기도 했다. 희문 형네 집은 정원에 자리한 단풍나무 가지에 걸린 새장이 눈길을 끌었다. 원통형 새장 안의 알록달록한 앵무 한쌍이 손님을 반기며 지저귀는, 그런 반듯한 이층 양옥집이었다.

남의 집에 난데없이 뛰어들어와 울부짖는 아이를 보고 희문이형 엄마는 자초지종을 묻기보다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단 들어오라고 권했다. 아이는 티비에서 도깨비가 뛰쳐나온 자신의 집에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머뭇거리다 그녀의 집에 맨발로 들어섰다. 그녀도 혼자인 듯했다. 형은 어딘가로 놀러 나갔는지 기척이 없었다.

평소엔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썽쟁이 아들을 엄하게 대하던 그녀였지만 자신의 보금자리에 뛰어들어온, 혼절하기 일보 직전의 아이를 안심시키려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뺨 위로 굵게 흘러내린 눈물 자국을 큼지막한 손바닥으로 닦아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가까스로 울음을 그친 아이에게 소파에 앉으라 말하는 그녀.


- 엄마는 어디 계시니?

- 잠깐 나가셨어요. 시장에 가신다고... (훌쩍)...

- 그래. 알았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오렌지주스를 꺼내 유리컵에 따라 가져오시더니 마시라 건네주었다.

아이는 두 손으로 유리컵을 감싸고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그 컵은 실수로 떨어뜨려도 절대 깨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주황색 음료를 한 모금 마시자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을 가득 메우곤 뱃속으로 흘러갔다. 외로움에, 서러움에, 두려움의 손아귀에 사무친 아이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마치 지옥문을 지키는 세 개의 머리를 가진 무시무시한 맹견 케르베로스(Cerberus)에게 사로잡혔다가 간신히 풀려난 것처럼.


- 천천히 마셔도 돼. 너희 엄마 오시면 그때 돌아가거라.


오후 일곱 시쯤 지났을까? 낯선 이층 집의 실내가 어두워지고, 창 밖에는 붉게 노을 진 하늘이 비친다.

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 익숙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그제야 여동생과 함께 집에 돌아온 것이다.


- 윤아, 윤아! 어디 있니? 대체 얘가 어디 간 거야?
- 너희 엄마 오셨나 보다. 걱정하시니까 이만 들어가 봐라


윤은 텅 빈 유리컵을 만지작거리다가 탁자에 올려놓고 푹신한 소파에서 일어났다. 이제 난데없이 집안으로 들이닥친 자신을 받아준 그녀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다.


- 안녕히 계세요.

- 그래, 엄마 말 잘 듣고. 집에 가서 저녁 먹어야지.


아이는 거뭇한 맨발로 그 집을 나와 자신의 집 대문으로 들어섰다. 엄마는 다짜고짜 화난 얼굴로 아이의 양 어깨를 잡아 흔들며 몰아붙였다.


- 너 대체 어딜 간 거야? 방에 티비는 켜 두고, 불이란 불은 다 밝히고, 문이란 문은 다 열어놓고...

집 보랬더니 어딜 갔다 온 거야? 말 안 해? 말 안 할 거냐고?


분노에 가득 찬 엄마의 얼굴이 크게 줌인되어 아이의 우물 같은 눈동자에 비쳤다. 엄마는 아이의 한쪽 귓바퀴를 잡아당겨 힘껏 흔들어대다가 내동댕이쳤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쓰러진 아이는 다시금 겁에 질려 참았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마당 한쪽에서 지켜보는 여동생은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 집 잘 보랬더니 너 이게 뭐야? 속만 썩이고..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한 엄마는 마당 수돗가에 세워진 빗자루를 거꾸로 잡고는 아이의 엉덩이며 허벅지를 후려 패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어깻죽지를 붙들어 도망가지 못하게 한 채로...

찢어질 듯한 비명이 골목에 울려 퍼지고, 그렇게 열 대 쯤 맞았을까?

맞은편 이층 집 베란다에 누군가 나타나더니 앙칼지게 꾸짖는 목소리가 터졌다.


이봐요. 아까 아이가 무섭다고 우리 집으로 도망쳐서 여기 계속 있었어.
그만 애 잡아요. 애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리 애를 때려잡아?


아이는 자신을 재차 구하기 위해 등장한 그녀를 멍하게 바라봤다. 팔짱을 끼고 한심하다는 듯 엄마를 바라보는 그녀는 아이의 구세주요 천사였다.


잠시 말문이 막혔던 엄마는 상황이 어느 정도 파악된 듯 아이를 붙잡은 우악스러운 손목을 풀었다. 벌벌 떠는 빗자루를 마당에 내던지고는 지지 않겠다는 듯 그녀에게 외쳤다.


- 남의 집 애를 잡건 말건 댁이 뭔 상관이에요. 참나...


그때 아이는 분명히 들었다. 부엌으로 도망치듯 물러서는 엄마의 등 뒤로 쏟아지는 화려한 욕지거리를...


아니, 저 썩을 여편네가 입은 살아가지고.. 상종 못할 년이네... 에라이 썩을 년..

다행히 엄마는 그녀의 욕설에 더 이상 대응하지 않았다. 한 마디라도 더 했다간 그녀는 우리 집으로 쳐들어와 엄마의 머리 끄덩이를 붙잡고 니가 죽나 내가 죽나 한판 떠 보자 하며 대판 싸움을 벌였으리라.

아이는 마당에 홀로 서서 훌쩍거렸다. 엄마가 잡아당긴 왼쪽 귓불은 벌게졌고, 위잉 하는 소리가 귓속을 울렸다. 이후 아이는 몇몇 담임선생으로부터 어린애가 가는 귀가 먹었다는 말을 종종 들을 것이다. 둔부와 허벅지는 모진 매질로 인해 한 달 가까이 멍자욱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의 여린 마음은 크게 상처받았다. 홀로 남은 집에서 상상 속에 나올 법한 무시무시한 존재와 맞닥뜨려 제대로 맞서 보지도 못하고 건너편 집으로 달아났다. 낯선 집에서 처음 만나는 그녀는 아이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보듬어 주었지만,늦게 돌아온 엄마는 오히려 자신을 나무라고 폭력적으로 대했다.

완전히 어둠이 감싼 마당 가운데 빗자루가 아무렇게나 나동그라져 있다. 엄마에게 보호받지 못한 아이는 그 빗자루를 바라보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누구도 집안으로 들어오라 하지 않았고, 아이 또한 어디로 가야 할지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아빠가 상처받은 아이를 다독여 간신히 집안으로 들일 수 있었다. 그날 밤 아이의 부모는 가벼운 말다툼으로 시작해 밤늦게까지 싸움을 벌였고, 언제나 그렇듯 아빠는 엄마에게 발길질을 하고, 손찌검을 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엄마는 곤히 잠든 아이들을 깨워 길길이 날뛰는 아빠를 막아보려 했지만 어린아이들이 그 살벌한 폭력의 현장에서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울고 또 울 뿐이었다. 홀로 남겨진 엄마는 지지 않고 맞서 싸우다 결국 지쳐 쓰러졌다.

가족 내의 폭력이 돌고 도는, 강력한 전파력을 지닌 바이러스처럼 서로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전가한 그날. 그 끈질긴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건만, 아이는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온 동네는 고요 속에 잠든 듯했지만 분명 그 집에서 흘러나오는 비정상적인 소음에 귀 기울이는 누군가도 있었으리라. 그 당시는 요즘처럼 이웃을 가로막는 담벼락이 낮은 반면 오지랖은 넓은 그런 시대였으니까.

시간이 흘러도 지워질 수 없는 악몽 같은 하루는 그렇게 천천히 저물어갔다.

헤어날 수 없는 공포의 늪에서 윤을 구해준 이층 집의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입을 벌린 남빛 사자 두 마리가 돋을새김으로 조각된 문고리들이 달린 그 집 대문이 종종 열렸지만, 누가 들어올세라 이내 굳게 닫혔다.

그 집 베란다에서 엄마를 나무라던 그녀의 모습은 윤의 기억 언저리에서 점차 희미해졌다. 그러다 문득 시간이 흘러 집에 홀로 남겨진 날, 불투명한 텔레비전 액정에 비친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마주할 때, 오랜 시간 가라앉은 그날의 모든 앙금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서서히 떠올라 수면 위로 형체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