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그 집_1
태양은 우리가 실패하고 두려워하기를 열망한다
호는 대청으로 나와 양팔을 일자로 벌려 미닫이 창문을 끝까지 밀어 활짝 연다.
희미한 어둠이 스몄던 거실이 한순간에 빛으로 가득하다. 어제 종일 비가 내려 습기를 잔뜩 머금은 탓인지, 평소 그 창문을 열 때마다 집안을 울리던 덜거덕대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불투명하게 재단된 유리창은 반복되는 격자무늬가 새겨진 틈을 통해 무수한 마름모꼴의 빛이 마룻바닥에 흩뿌려진다. 나무 창틀은 두꺼운 니스칠로 마감한 낙엽송으로 짜였는데, 쇠못을 사용하지 않고도 단단히 맞물렸다.
- 오늘은 날씨가 맑구나.
그는 밝은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창턱에 걸터앉아 댓돌에 맨발을 올린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아이들 신발이며 낡은 구두, 편하게 신는 슬리퍼들이 널따란 돌 위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다. 큼지막한 댓돌의 빈자리에 맨 발가락을 올리니 적당히 달구어져 따뜻한 느낌이 전해진다.
- 이제 더운 날만 남았구나.
마당 한켠에 만들어진 정원을 바라본다. 온갖 꽃나무들이 흘러간 봄날은 어서 떠나보내고, "초여름이여, 어서 오라"며 반갑게 손짓하는 것만 같더라.
서너 장의 넓은 날개를 지닌 형형색색 나비를 닮은 팬지 무리 옆, 지지 않겠다며 원추리 꽃대궁 서넛이 기다랗게 올라와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대문 옆 구석진 푸세식 화장실을 가리는 돌배나무와 반대편의 백목련은 서로의 가지 끝이 닿을 듯 말 듯 아슬하게 경계를 긋는다.
돌배나무는 사그라지는 노구老軀를 움츠리며 지나간 시절에 대한 회한을 담아내고, 백목련은 풍성한 수세樹勢를 과시하며 자신의 화양연화를 뽐낸다. 목련의 하얀 꽃송이들은 이미 절정을 지나 커다란 꽃잎 가장자리가 대부분 갈변되어 땅으로 낙하할 준비를 한다.
이래저래 바쁜 일에 치여 정원 가꾸기에 신경을 쓰지 못한 사이, 각양각색의 화초들은 "무심한 집주인이여, 나 여기 잘 살아있소" 하며 급격한 생장生長을 뽐내고 있다.
마당의 회색 시멘트 바닥 위로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주위가 살짝 어두워지나 싶더니 옆에 나란히 선 자리 몽땅한 또 다른 그림자. 큰아들 윤이 아침 늦잠에서 깨어나 졸린 눈을 부비며, 곁으로 다가와 철퍼덕 쓰러지듯 앉는다.
- 우리 윤이, 이제 일어났구나.
- 아빠 뭐해?
- 봄볕이 따뜻하네. 너도 여기 앉아서 볕 좀 쐬라.
이제 일곱 살이 된 아이. 3월에 태어나서 그런지 봄이라는 계절과 잘 어울리는 아이.
추위보다는 적당한 더위를 좋아해 땀을 흘리기 좋아하는 아이다.
아이는 점차 경사를 높여 머리 위로 향하는 태양을 마주 보려다 그만 눈살을 찌푸리며 온몸을 오그린다.
저 눈부신 태양은 우리 가족의 온갖 대소사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해마다 지켜보겠지.
누군가가 어쩔 수 없이 곁을 떠난다 해도 항상 저 자리에서 남은 가족들을 지켜보리라.
호는 아이가 지금 그들을 비추는 햇자리를 영원히 기억하길 바랬다.
아들의 동그랗게 소용돌이치는 까만 정수리에 손을 얹는 아빠.
이어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손길에 아이는 잠시 고요에 휩싸인다.
몇 분쯤 지났을까. 아이는 아빠의 허벅지에 머리를 눕히곤 마당을 바라보다 무심코 한마디 건넨다.
- 아빠, 심심해.
- 뭐라고?
- 심심하다고.
평소 같았으면 집에서 동생이랑 놀라고 하거나, 이따 나가서 친구들과 뛰어놀라고 했겠지만, 그날 호는 아이를 위해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한다.
그는 작은방으로 걸어가더니 자신의 책상 서랍에 깊이 숨겨진 무언가를 가지고 돌아온다.
윤은 그걸 보자마자 눈이 동그레지고...
- 아빠, 그거 뭐야?
- 이거, 이게 말이야. 뭐냐면...
그는 명쾌한 대답 대신 마주 선 아이의 눈에 "그것을" 비춰준다.
- 우와, 아빠 콧구멍이 이따만하게 보여. 으하하~
- 그럼 이건...(어떻게 보일까?)
발아래 계단의 균열된 틈을 따라 줄지어 지나가는 곰개미 무리를 볼록한 그것으로 들여다보자
거뭇한 머리 위에 더듬이 한쌍이 확대되어 나타난다.
- 아빠, 이거 뭐야? 신기해~~
- 이게 뭐냐면, 음... 돋보기라고 부르는 거야. 볼록 거울이라고도 하지.
- 우와, 신기하다.
궁금해하는 아이의 눈 앞에 마당 구석에 떨어진 목련 꽃잎을 가져온다.
그는 돋보기를 저 하늘의 태양과 바싹 마른 꽃잎 사이 어딘가에 두고 거리를 조절한다.
강렬한 햇빛이 돋보기에 의해 굴절되어 하나의 점에 모이자, 그는 그 점을 어둡게 갈변된 꽃잎 가장자리로 천천히 옮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모인 점 주위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짙은 고동색 구멍이 뚫리고 이내 그 면적이 넓어진다. 아이는 눈이 휘동그레지고, 입이 헤에 벌어진다.
실험 대상이 된 목련 꽃잎은 땅에 일찍 떨어진 것도 억울한데, 화창한 봄날에 돋보기로 지짐질을 당한 끔찍하고도 가련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꺼멓게 휑한 구멍이 뚫린 펠리컨의 부리를 닮은 잎을 흔들며 아이를 바라본다.
- 어때, 신기하지? 햇빛이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무궁무진하단다.
아이는 돋보기를 빼앗아 맨발로 마당에 달려 나가더니 여기저기를 들여다본다.
노란색 팬지꽃의 중심에서 여유로이 쉬는 흰나비를 자세히 바라보니,
- 나비에 빨대가 있어. 돌돌 말려 있는데 쭉 펴지고 그러네.
- 응, 그 입으로 꽃 안의 꿀을 빨아먹고 그런단다.
윤은 자리를 옮겨 흙 속을 분주히 오가는 온갖 날벌레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다 난데없이 돋보기를 하늘로 향하더니 그 눔의 해님을 다시금 똑바로 바라보는 게 아닌가?
- 아이고... 눈이야...
이번엔 눈부심이 꽤나 강했는지 아이는 한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깜박 깜박이다 이내 눈물을 짜낸다.
- 아빠, 아파서 이러는 게 아니라,
불이 꺼진 것처럼 깜깜하고, 그냥 눈물이 나와...
- 그걸 눈부시다고 하는 거야. 다음부터는 하늘에 떠 있는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말아라. 알았니?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손등으로 눈을 연신 비빈다. 도저히 수습이 안 되자 아빠는 아이 손을 수돗가로 잡아끌어 고무 대야에 담긴 물로 눈가를 씻어준다.
- 이제 괜찮니?
- 응
아이는 붉어진 왼쪽 눈을 껌뻑이며 아빠를 바라본다. 호는 직사각형의 마당을 공평하게 반으로 가른 양지와 음지의 경계에 시선을 두고 따라가다 말문을 연다.
- 저 태양은 우리에게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도록 따뜻함도 주고, 저 나무들이 자라날 수 있도록 양분을 전해주기도 하지. 오직 한줄기 빛을 모아주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불을 만들 수도 있어. 아까 본 것처럼 말이야.
(그는 이 시점에서 깊은 탄식을 내뱉는다.)
- 옛날부터 우리 인간이 두려워했을 만큼 그는 신과 가장 근접한 존재라 할 수 있어. 그래서인지 그는 우리가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자신의 발아래 다소곳이 머리를 조아리고, 말없이 존경을 표현하기를 바란단다. 알겠니?
아빠 입에서 흘러나온 알듯 모를듯한 이야기에 아이는 잠시 관심을 기울이다 이내 돋보기를 쥐고는 집안 여기저기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부리나케 달아나는 불개미의 꽁무니를 따라가기도 하고, 신발 깔창 깊은 곳에 햇빛을 모으더니 자신의 손바닥을 펼치고 복잡한 손금이 만나는 접점 어딘가에 빛의 초점을 모은다.
옆에 앉은 아빠는 반쯤 열린 대문 밖을 멍하니 내다본다.
아이는 돋보기의 기다란 막대 손잡이를 잡은 손이 떨리지 않게 호흡을 멈추곤 오르락내리락 거리를 조절하여 발간 점을 최대한 작게 만든다.
- 으악, 앗, 뜨거...
연약한 생살이 타는 아픔에 놀라 뒤집어지는 아이, 그 꼴을 보고 허리를 뒤로 젖힌 채 박장대소하는 아빠.
그래, 몸소 겪어 보고 깨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렇게 배우는 아이가 더 깊이 깨닫고, 더 오래 기억할 테니까.
윤은 붉게 달아오른 손바닥의 반점을 혀끝으로 연신 핥아 침을 바른다. 하마터면 아까 구멍이 난 목련 잎처럼 손바닥에 휑한 동굴이 뚫릴 뻔했다는 생각에 "휴우"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잠시 후, 호는 안방에 들어가 며칠 전 동아일보 지면을 크게 뜯어오더니 넓게 펼친다.
자, 이 신문지에 빛을 모아봐라. (80년대 동아일보의 한자 제호題號를 가리키며) 어두운 칸일수록 더 잘 타오를 거야. 단, 불이 번진다 싶으면 입으로 후우 불어 바로 끄도록 해. 잘못하면 집안 살림 홀라당 태워먹을 수 있으니까. 알았니?
네. 아빠.
아이는 돋보기를 들고 신문지 여기저기를 비추어 점점이 탄 자욱을 만든다. 아빠가 말한 대로 흑색 지면일수록 보다 빠르게 타올랐다. 화선지에 떨어뜨린 먹물이 번지듯 조그만 점이 주변의 모든 활자를 집어삼킬 테까지 지켜보다가 뒤늦게 입김을 세게 불어 불을 끄곤 했다.
그날 동아일보의 정치 사회면은 여기저기 타오른 점들이 이어져 곧은 점선과 동그란 실선을 이루고,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형상으로 떠오르더니 결국 누더기가 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집안은 온통 탄내로 가득 찼고, 골목길을 오가는 행인들은 어느 여염집에서 끼니 준비를 하다 냄비를 태워먹었나 궁금해하며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 자, 이제 들어와서 점심 먹어라.
- 점심? 오늘 점심 뭐예요?
- 칼국수란다. 칼국수...
- 으웩, 큰 멸치 들어가면 먹기 싫은데... 토할 거 같아요.
- 잔말 말고 어서 먹어.
엄마의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아이는 동그란 돋보기를 내려놓고 엉거주춤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간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햇살이 집안 깊은 곳을 비스듬히 파고들자 대청마루의 미닫이 창문도 덜그덕 거리며 굳게 닫힌다.
윤은 그날 이후 그 돋보기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아마도 혼자 가지고 놀다 집에 불이라도 낼까 봐 염려한 부모님이 어딘가 깊숙한 곳에 숨겨놨으리라.
그날 그 집의 대청마루 끝에 걸터앉은 아버지,
활짝 열리던 창문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던 햇무리들,
마당을 채운 수목들의 이런저런 수군거림,
겁 없이 태양을 곧장 바라보던 아이의 순진무구함,
그런 아이에게 숨겨진 자연의 이치를 살짝 알려준 아버지의 지혜로움까지...
윤은 그 모든 풍경을 떠올려 기억 속에 숨겨둔 돋보기를 몰래 꺼내 자세히 들여다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태양은 중천에 떠오르고, 자신의 힘의 극히 일부를 투명한 볼록 렌즈를 통과한 소실점에 그러모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줄기 연기가 솟아오르고, 매캐한 탄내가 번지더니 삽시에 불길이 솟아올라
그 집을 활활, 남김없이 태워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