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운 정 미운 정 스민
창동 옛 기와집, 조촐한 마당밭
심어진 돌배나무 안간힘 짜내
내밀어 떨군 막배 여럿
슥슥 소맷부리 닦아 깨문
아버지는 이내 싫증이 났는지
퉤애 뱉고는
집 밖으로 나돌았다
하루는
저만치 앞서간 아버지
까치발을 높이 들고는 남의 집 담장 구멍을
속속들이 엿보고 좀체
떠날 줄 모른다
웬만한 집 세 채는 덩치로
깔고 앉은 품새의 양옥 이층 집,
아버지는 금잔디가 깔린 널직한 정원을
삼면에서 호위한
하늘 높이 치솟은 은행나무와 향나무 장군
그 옆 양 팔을 내밀어 수발드는
단풍목 무리에 단단히
사로잡혔다
난 그 이층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집 땀 차는 겨드랑이 사이
선심 쓰듯 동네 것들 옛다 받아라
가느랗게 뚫어낸 굽은 골목길은
비만 오면 흙탕으로 질척였고
대낮에도 볕은 항상 비껴갔고
여름이면 똥차 내음이 진동했으니까
그 집 네 짝 솟을대문이 활짝 열리는 걸
좀체 본 적이 없고
새소리 지분대는 깔끔 떠는 정원과
푸른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뒹굴고
소리쳐 뛰노는 걸 한 번도
듣거나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 후로
뭔가에 씌인 듯
한참을 어머니와 밤새 머리를 싸매고
윗목에 통장을 쫙 늘어놓아
셈하고 수군수군 작당하더니,
시간 날 때마다
동네 농협이며 기업은행 창구를
뻔질나게 드나들더니
결국은 정든 옛집을 떠나
그 이층 집구석 단칸방에 세를
자진하여 들어갔다
밀어붙인 건은 술술 잘 풀리는 듯했다
해가 지나 동네 녀석들 방따먹기를 하듯
아궁이가 이어진 옆방 한 칸을
날름 삼키더니
이년이 지나서는 이층 살림을
갓 혼인한 부부에게 내준 세를 끼고
그 이층 집을 홀라당
차지해 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그 동네의 숨은 능력자로
화려하게 등극을 했고
이웃들은 동네 유지에 신흥 재력가 났네
앞에서 떠벌렸지만, 복덕방 중매쟁이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빚더미에 깔려서는
그 집을 통으로 뱉어낼 거라고
뒤에서 수군댔다
우리는 새 집에 이사 온 지
일주일이 채 안되어
그 집이 품은
비밀 아닌 비밀을 알게 되었다
장맛비가 거세게 들이치던 여름밤,
시들한 연탄을 갈기 위해 지하실에 내려간
어머니는 허연 발목을 적시는,
차랑차랑 차오르는 검은빛
수면과 마주하고는 기겁했다
이전 집주인은 그 비밀을
감쪽같이 숨겼다
우리가 세 들어 살던 동안에도
이 집에 멱 잡힌 아버지에게 열쇠 뭉치를
넘기던 순간에도 말이다
엠병하고 지랄 맞은 새 집은
사방의 물이란 물은 호올랑
빨아들여서는 흠벅 머금고 있다가
질벅한 지반 위로
수시로 구역치는 이른바
수기水氣가 압도하고 범람하는,
음침한 터에 떡하니
자리 잡은 것이다
당시 아버지는 젊었고
무엇이든 이루겠다는 독기가 넘쳤다
비록 온 사방의 음기가 똑똑 고여
서서히 차올라 집안 살림을 잠기게 하고
우리 가족을 목 졸라 질식시킨다는
숭악한 터이지만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으리라
버틸 수 있으리라 쉬이
여긴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습한 나날이 이어지면
저 아래서 스물렁 차고 오르는
흉한 기운의 맥을 끊어내고
횡액을 막는 갱부의 심정으로
음침한 지하실로 내려가
빗자루로 쓰레받이에 물을 쓸어 담아서는
놋 양동이 한가득 채워
밖의 잔디밭에 후루루 쏟아버리곤 했다
그 집에 자리 잡고 묵은 뒤로
잠자리가 편한 적이 거의 없었다
여동생은 꿈자리 들었다가
웬 할머니가 이끄는 대로 허리춤까지 빠지는
물가로 걸어 들었다가 간신히 깨었는데
혼몽한 자신을 바라보는
쪽진 머리 할매의 거뭇한 눈두덩과
딱 마주치고는 비명을 지르고
혼절한 적도 있었다
(그 할멈은 어딘가로 사라졌는지 흔적도 찾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난
긴 잠들었다 하면 누군가 베갯머리를 잡고
세게 흔드는 통에 잠을 깨기 일쑤였다
손톱만 한 그믐달이 깜박이는 밤
닫힌 방문 언저리로 저벅저벅
다가오다 멀어지는 군화 발소리에
이부자락 뒤집어쓰고 덜덜 떨던
써늘한 기억이 선명하다
(다음날 마룻바닥 꺼먼 물때 묻은 발자국을
걸레질로 닦아내던 어머니의 허옇게 질린
낯빛도 선명하다)
그렇게 버팅기고 눌러앉아 살다가
지하실에 지가 알아서 물 퍼내는
힘 좋은 양수기를 들이고,
툭하면 매캐한 깨스 올라오는
그 널따란 집 안방 한구석도 덥히기 버거운
연탄아궁이도 비싼 기름 때는 보일러로
바꾸고 이제는 살만하다 싶었는데,
내 국민학교 6학년 올라가던 때였나
아버지는 간이 안 좋아졌다는
회복이 어렵겠다는 선고를 받고
무덤덤한 표정의 안경잽이 의사 앞에서
휘청 다리가 꺾여 쓰러지셨다
글부터 10년 넘게 지병으로 고생하시다
끝내 돌아가신 해가
어언 2005년이다
그 집과의 연은 진즉에 끊어낼 수밖에 없었다
2.
이후로 뭔 바람이 들었는지
그 이층 집에 마음먹고 들렀던 때가
딱 한번 있었다
추석 즈음 쌍문동 외할머니댁에 인사차 들렀다가
나 혼자 차를 몰아 깔때기처럼
좁아드는 그 골목길에 발을 들였다
이층으로 휘올라가는 벌건 녹슨 철제 계단도
뒷산 늘어선 무덤가에서 삽떠
옮겨 심은 뾰족 머리 잔디밭도
한여름이면 치솟은 나무 둥치에 붙어
울부짖던 참매미들 엇박 화음도
들릴 새 없이, 싸악 뒤집어엎고
홀라당 걷어내 버리고
이제는 빽빽한 몇 층 빌라촌이 되었더라
옛 터를 찾아 감개무량하던 사이
뒷덜미가 쌔애하고 발치가 질척이길래
아래를 내려보니 글쎄,
청대문 앞 틀어막은 하수구 구녕으로
엄한 기운이 발꿈치를 타고
스멀쩍 휘감아 오르길래
흐억 식겁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한걸음에 내달아
도망치듯 저편으로
숨었더랬다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그 집은 여전히 온 동네 습하고
숭한 기운이란 기운은 다 뽑아 올려
속부터 꿀렁꿀렁 차올리더니
언젠가는 아가리를 떠억 벌리고
사방으로 활화산처럼
대공원 분수처럼
커어억 컥 시원스레
뿜어낼 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