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와키엔 유넷상 온천 테마파크
2010.12.25~26
2010년 크리스마스 당일 저녁, 우리는 하코네 고라 지역에 도착했다.
등산 버스를 타고 구불한 도로를 올라가다 어느 정류장에 내렸다.
선은 극 J형 성격이라 외지에서 즉흥적으로 상황 대처하기보다는 계획을 디테일하게 세워 움직이는 편이다.
선과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내가 사전 계획을 세워 움직인 적은 거의 없다. 대부분 선이 세운 러프한, 큰 줄기 계획에서 뻗어 나온 세부 계획(이를테면 오늘 비가 오는데, 점심은 어디서 무얼 먹을까? 같은..)을 정하고 차량 이동을 책임지는 수준에서 역할을 분담하며 여행을 다녔다.
그때 하코네 여행도 그랬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골목길을 헤매다가 <Yoshi-Cho 요 시초>라는 일본 전통식당에 들어섰다. 각종 가정식 & 건강식 요리를 코스로 내주는 식당이었는데, 선이 사전에 예약한 곳이었다. 다소 늦은 시간에 방문했는데도(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다.)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날달걀, 연두부를 올린 덮밥과 생선찜, 구운 주먹밥, 디저트로 나온 당고 등 상에 올려진 어느 것 하나 맛이 떨어지는 음식이 없었다. 반주로 즐긴 흑맥주 또한 훌륭했다.
아쉽게도 <Yoshi-Cho 요시초> 식당은 현재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15년의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른 만큼, ChatGPT에 관련 정보를 물어봐도 흔적을 찾지 못하겠다는 답뿐이다. 혹시 이 식당의 근황에 대해 아는 분이 있다면 댓글로라도 알려주시길 바란다. 디카로 찍은 몇 장의 생존한 사진을 여기에 남긴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은 어느 야트막한 산의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이었다. 야간의 희미한 가로등과 일본어로 적힌 작은 표지판 뿐이었는데도 선은 곧잘 길을 찾아 날 이끌었다. 숙소는 산골에 위치했지만 저렴했고, 한적한 분위기라 쉬어가기 좋은 곳이었다. 아침에는 따뜻하게 데운 크루아상과 커피, 우유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여행자의 허기를 달래주었다. 남녀 구분된 공용 욕탕이 꽤 깨끗하고 시설이 좋아서 틈틈이 이용했던 것이 떠오른다.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면 솔솔 잠이 오고, 오래지 않아 여독이 풀리곤 했다. 아쉽게도 숙소 이름은 망각의 저편에 묻혔다. 선 또한 자신이 예약하고 체크인했음에도, 그날의 사진을 보여줘도 기억이 가물하단다. 구형 디카로 찍은 사진이라 GPS 정보도 남아있지 않고.. 그 숙소를 다시 찾을 리는 없지만, 이름이라도 떠올리고 싶은데 외진 곳에 웅크린 숙소라 실제로 존재했는지조차 증명하기 쉽지 않다. 기억이 꿈틀꿈틀 살아 움직일 때 디테일한 기록을 남겼어야 했다. 신혼에 사회생활이 겹쳐 당시 운영하던 블로그는 거의 접다시피 했고, 이듬해 가을 솔이 태어나면서 그날의 기억은 점점 스러져갔다. 아무튼 우리는 하코네 익명의 '그 숙소'에서 좋은 기억으로 머물렀다. 이제라도 흐릿한 기억을 되살리고자 한다.
다음날, 26일은 근방에 위치한 온천 테마파크 <코와키엔 유넷상 온천>에 다녀왔다. 당시는 방수 팩 & 카메라가 대중화되기 전이라 사진이 전무하다. 구글 포토 상에도 2010년 12월 26일은 공백으로 남겨져 있다.
오전부터 우리는 바삐 움직였다. 사전에 종일권을 구매하여 유넷상 워터파크와 모리노유 온천을 이용할 수 있었기에, 선과 나는 매표소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는 남녀 탈의실 입구로 흩어졌다.
내부는 다종다양한 냉온탕과 물놀이의 천국이었다. 오후로 들어서자 온몸은 물에 불어 쭈글 해졌고, 끝없는 물의 세계에 들어선 것이 그제야 실감이 되었다. 한겨울인지라 외부 슬라이드와 일부 물이 쏟아지는 놀이시설은 운영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와인탕, 사케탕, 커피탕, 녹차탕, 히노키탕 등 다양한 콘셉트의 온탕을 즐기는 것만으로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유넷상을 벗어나 '모리노유 온천'으로 들어서자 수영복이 아닌 알몸으로 출입 허용되었다.
https://maps.app.goo.gl/cpdeNieLQiurMjwC7
야외에 마련된, 데크길로 연결된 노천탕들과 숯탕은 장시간 몸을 담근 이들로 붐볐다.
한참 반신욕을 즐기는데 선이 보이질 않았다. 부예진 증기 사이를 헤매다가 그녀를 찾았는데, 한쪽 뒤꿈치에 대일 밴드를 붙이고 있는 게 아닌가. 다친 연유를 물었더니 어디서 넘어졌다고만 말하고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종일 온천을 즐기다가 급 일어서서 움직이면 어지럼증이 오는 경우도 있어 조심조심 다니라고, 쉬엄쉬엄 움직이라고 일렀다. 지금도 그 일이 종종 떠올라, 그때 왜 그런 거냐? 물어봐도 묵묵부답이다. 다친 부위로 보아 따라오던 누가 뒤에서 발길로 찼거나, 벌러덩 미끄러져서 긁힌 상처인 듯한데.. 크게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일 뿐이다. 지나간 일이니 그리 생각하고 넘기려 한다.
워터파크에서 제공하는 음식이 퀄리티가 좋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하코네 유넷상 워터파크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며 턱에서 물을 뚝뚝 흘리면서, 가끔 엄습하는 추위에 벌벌 떨면서.. 햄버거와 덮밥 류를 주문했는데 그냥 허기를 면하기 위해 꾸역꾸역 먹었던 듯하다. 주변 식당도 앞서 호평한 '요시초'를 제외하고는 인상적인 곳이 없었다.
덧붙여 집으로 돌아가면 꼭 수영을 배우겠다! 다짐했었는데 여태껏 수영을 익히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난 물을 좋아하지만 선뜻 물에 깊이 잠기어 호흡하는 것이 두려운, 호불호가 명확한 겁보에 게으름쟁이가 아닐까 한다. 집에 어항을 몇 개나 돌보는 물 생활 집사이지만, 직접 물에 뛰어들기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건 무슨 연유인지.. 3년 내에 수영을 익숙하게 하는 것이 재설정한 목표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둑해져서야 물이 아닌 온전한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선의 가슴까지 내려오는 머릿결은 물기를 머금어 찰랑거렸고, 청초한 샴푸 향이 풍겼다. 우리는 덜컹대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아마도 아사히 아니면 기린 맥주캔이었으리라. 초록 완두를 닮은 와사비콩이며 우마이봉 같은 주전부리를 먹다가 따스하고 푹신한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우리는 다음 날을 기대하며 단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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