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 대나무, 단풍나무, 가레산스이 정원, 천수각
2010.02.16
히메지 성 남쪽 해자를 따라 걸으면 보트 투어를 시작하는 선착장이 보인다. 보트는 가이드 겸 뱃사공이 선미에서 방향을 잡고, 전통 삿갓을 쓴 6~7명의 탑승객들은 그의 이런저런 설명을 듣는다. 해자에서 바라보는 성곽과 하늘로 솟은 천수각의 풍경은 장관이고, 나룻배는 유유히 역사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히메지 성 남서쪽에는 '코코엔(好古園, Kōko-en)'이라는 전통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전체적인 조경 디자인과 개념은 에도 시대(1603~1868)의 정원을 재현했고, 비교적 최근인 1992년에 조성되었다. 원래는 히메지 성 서쪽 성곽의 사무라이 거주지가 있었는데 철거했다.
https://maps.app.goo.gl/WWrfka8XSeztLaxd8
'코코엔'은 옛 것을 좋아하다, 애정하다란 의미. 히메지 출신의 역사학자 '나카무라 쇼토'의 호 "好古堂(こうこどう, Kōkodō)"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선과 함께 코코엔 정원에 발을 들인다. 주말이 아닌 평일인 데다 날씨가 흐린 탓에 정원을 노니는 인적은 드물었다.
정원은 풀과 나무, 개울과 우물, 폭포 그리고 각종 암석과 징검돌이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중앙에 정원을 사방에서 조망할 수 있는 저택이 솟아 있다. 구불구불한 개울이 저택 사방을 포위하듯 두르고 있기에 몇 개의 다리, 횡단하는 데크 복도를 지나야 중앙에 다다를 수 있다.
한데 차오르고 고이다가 졸졸 흐르고, 끝에 다다라 수직으로 낙하하는 청량한 물. 호수에서 헤엄치는 어른 팔뚝만 한 오색 잉어들이 가까이 다가가면 먹이를 달라, 난 배고프다 수면 위로 입을 내밀어 뻐끔댄다. 널찍한 징검돌과 완만한 굴곡을 지닌 돌다리를 건너면 아담한 별채가 나오고 그 안에 분재로 심은 벚나무에 꽃이 점점이 피어 있다.
분명 이 정원은 사시사철 피어나는 다양한 꽃과 나무들을 즐기도록 세심히 조성되어 있지만, 벚꽃이 만개하는 봄 시즌이 가장 절정의 풍경을 자랑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하루니와 (春の庭, 봄의 정원)의 만발한 꽃 풍경에 눈 호강 제대로 하겠지.
그다음은 새벽 눈이 소복이 내린 아침에 이곳을 찾는다면, 가지가 휘도록 눈꽃이 피고 곳곳에 설산이 쌓인 후유니와(冬の庭, 겨울정원)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이 밖에도 정원은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을 즐길 수 있고, 대쪽처럼 뻗은 대나무 정원은 휘이익~ 하는 바람 소리에 밀려드는 서늘하고 강직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휘어지고 뻗은 가지가 일품인 소나무 숲을 지나 몇 개의 문을 지나면 '가레산스이 정원'이 나타난다. 일체의 물 없이 크고 작은 돌과 모래의 결, 파문으로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 때로는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결의, 집념을 표현하는 '젠 불교, 선종 사상'의 정수다.
고요히 어딘가로 흐르고 물결치는 모래와 완고하고 정적인 돌의 하모니. 오랜 시간 마음을 가다듬고 일부를 내보이고, 고이고 가라앉은 감정을 어딘가로 쓸려 보낸 끝에 그것은 푸르른 바다와 깊이 뿌리내린 섬이 되었다. 아무 감시도 없고 제지하는 이도 없는 틈을 타.. 문득 어딘가에서 점박 고양이가 사뿐사뿐 다가오더니 단정한 모래 결에 멋대로 발자욱을 남기고, 벌러덩 옆으로 드러눕더니 사지를 뻗어버렸다. 아이, 기분 좋다! 하고 꼬리까지 좌우로 흔드니 드넓은 모래 바다에 한바탕 폭풍이 일고 파도가 덮치는 듯하다.
아뿔싸..
세상 모든 것은 완전무결하고 질서 정연하고 정형적인 상태보다는, 흠결 있고 자유분방하고 무질서함으로 나아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다고.. 저 멋대로인 길냥이를 통해 깨달았다.
나 또한 그 히피 고양이 옆에 대자로 누워 두 팔과 다리를 크게 휘저으려다 겨우 참았다. 소심하게 발자국이라도 남겼어야 하나? 그저 상상만 했을 뿐인데, 키득 웃음이 터진다. 옆에 있던 선이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내일 아침이면 대나무 갈퀴며 대삽을 든 조경사가 꽤나 열받아하겠는데.."
난 작게 중얼거렸고, 평정심이 흐트러진 그의 불그락 한 얼굴과 바르르 떨리는 눈썹이 떠올라 다시 한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황급히 입을 가리고는 앞서가는 선의 뒤를 따랐다.
얼마 남지 않은 해는 서쪽으로 거의 기울었고, 히메지 성 천수 각의 흰색 외벽은 노란빛으로 경사져 물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노을에 물든 히메지 시를 뒤로하고 동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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