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셀들이 밤을 가리고 스크린은 글루건을 쏜다
로딩 바 하나가 천천히 지도를 만든다
내 엄지손가락은 지도 위에서 길을 그으며 춤추고
조이스틱의 축에서 낮과 밤이 점멸한다
적의 이름은 잊힌 군번줄이 되어 흩어지고
보스의 숨소리는 부서진 라디오의 주파수처럼 떨린다
피격 시계는 은은한 초침을 흩뿌리고
체력바는 저울의 노래를 부른다 가벼움이 무거움을 속인다
난 화면을 삼킨 밤의 손바닥을 보았다
그 손바닥 위로 수집품의 그림자들이 스며들어
그림자들은 서로의 눈빛을 빌려서만 말할 수 있다
말들이 무릎을 꿇을 때 업적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이템은 기념품 실패는 연주의 한 박자
죽음은 체크포인트 위에서 잠깐 머무는 손님
부활은 같은 자리에서 다른 표정을 취하는 기술이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몬스터의 광속을 빌려달라고 기도한다
광원은 전투의 펀드 매니저 소리는 금전 출납부
군화소리는 미션의 비밀서류 족적 하나로 탈출구가 열리기도 한다
아군의 짧은 징표는 야광탄 적의 웃음은 지도에 불똥을 튄다
구원은 때로는 버튼 하나 때로는 손가락 끝의 강철 의지
난 HUD를 읽는다 숫자들이 내게 GPS를 건네고
점프 하나가 빅뱅을 일으키고 착지 하나가 역사를 만든다
구르기 동작 속에서 오래된 시가 쏟아지고
그 시는 블랙홀 모서리에 낚싯줄처럼 걸려 있다
광선검 같은 선택지들이 날 유혹하지만
난 자꾸만 창밖의 달을 스크롤한다
게임은 내게 묻지도 않고 많은 이름들을 빌려준다
난 그 이름들을 고이 접어 뒷주머니에 넣어 다닌다
멀티플레이의 목소리들이 밤의 등불을 흔들고
랙 걸린 서버는 너른 바다처럼 답장을 기다린다
딜레이는 때때로 시의 호흡을 바꾸고
바뀐 호흡 속에서 새로운 리듬이 태어난다
결정적인 원샷이 아니라 연결된 수만큼의 숨결이 중요하다
패턴은 춤이고 반복은 문장이고 우리는 그 문장들을 외운다
승리는 불꽃이 아니라 주머니 속의 작은 불씨
우리는 불씨를 나누며 서로를 확인한다
끝맺음 대신 다시 시작이라는 곡을 건네받고
난 컨트롤러를 내려놓지 않는다 손바닥은 아직 잉크가 남아 있으니
이 순간 밤은 저장되었고 누군가 그 저장파일을 꺼내 읽는다
읽을 때마다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화면은 또 다른 상흔을 연다
컨트롤러의 진동은 여전히 심장을 두드리고
픽셀들은 밤의 지도 위에 별을 하나씩 심는다
난 그 별들을 따라가며 길을 잃는 법을 배우고
방황할 때마다 새로운 우주가 내 입술에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