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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차 쿠팡 근무 후기

by 라미루이








새벽의 버스는 노동자의 목을 조른다

피로와 졸음은 그들을 점령해 쿠펀치를 찍는다

흘린 땀은 바코드에 스며들어 검게 번지고
창고는 한증막처럼 폐부를 절여 모조리 증발시킨다

사십 도의 공기는 온도계를 질식시키고
냉풍기는 일부만 돌아 전력의 계산서를 비추는 섬광이 된다
불타버린 날개 아래 사람들은 좀비처럼 걷고
걸음마다 한 조각씩 피땀이 떨어져 깨진다

피를 흘리는 여자들의 어깨가 내려앉을 때

로켓이라는 이름은 그들을 더 숨 막히게 한다
견디다 못한 조퇴는 블랙리스트의 자국으로 돌아오고
누군가가 쓰러지면 119는 구원과 회피의 번호가 된다



화장실에서 오래 머문 날 매니저가 심문하듯 불렀다
'죄송합니다'를 내뱉는 입술은 이미 족쇄에 갇힌 발목을 닮았다
도식화된 그의 노트북 화면은 우리를 인질로 잡고
우리는 숫자 위에서 방황하는 현대판 노예일 뿐이다

점심 한 시간 그나마 남은 고도리 같은 쉼표 하나
그 외 시간은 연장된 문장처럼 허리와 폐를 꿰맨다

검은 흙먼지와 뒤엉켜 사지를 윽박지른다
관리자의 처소는 시원하고 그의 손은 모니터 위에서 성전처럼 치장한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휴게실은 텅 빈 의자들만이 휴식을 취한다
우리는 박스에 갇혀 박스보다 먼저 포장될 뿐이다

선풍기 하나가 꺼지는 순간 심장은 더 빨리 타오르고
절약 & 비용절감이라는 말은 산 채로 우리를 불태우는 화형식이 된다



우리는 노동의 리듬을 빼앗긴 가짜 노동자로 살고
자본은 때때로 사람의 이름을 잊게 만든다

쿠팡의 하루가 저물면 거대한 물류창고는 잠시 숨을 고르고
부재하는 쉼 속에는 허물어진 모래 인간과

아직 배달되지 않은 내일이 섞여 있다
외국의 친근한 로고는 광택을 유지하고
그 위선 아래 우리의 손등은 더 어두워진다

난 오늘도 그 대열을 기록한다
기록은 시가 아니라 매번 타오르는 증언이 되고
생존한 증언은 다른 노동자의 입으로 옮겨진다
한국의 노동은 이 땅의 뼈가 되어 세워지고

다시 스러진다



우리는 박스가 아니고 라벨이 아니다

철인 AI 로봇도 아니고 불타는 로켓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숨 쉬는 사람이고 이름을 가진 존재이며
신성한 일터는 정의의 무게로 재어야 한다
사는 법은 숫자가 아니라 인권으로 계산되어야 한다

오늘도 누군가는 절룩이고 조퇴하고 기어이 쓰러지고
내일도 누군가는 다시 버티려 돌아오고
무참한 반복의 끝에 우리는 손을 모아 말한다
더 이상 인간을 기계로 취급하지 말라

우리는 무법자로 폭주하는 로켓이 아니다

더 이상 미래와 숨을 빼앗지 말라

먼지 자욱한 창고의 불빛 아래 모두의 목소리는 작은 알람이 되고
알람은 연대하고 울려 퍼져서 우리의 손목을 윽박지른 PDA

관리자의 얼어붙은 노트북을 날려버린다
깨어난 손들이 서로를 부축하고 일으키면
그제야 삭막한 일터는 다시 사람들을 위한 터전으로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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