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출근길에 어쩐지 지하철이 한산하다 싶었는데(지옥의 2호선) 샌드위치 연휴라 쉬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았다. 사무실에 나오니 휴가 쓰는 사람이 많아서 사무실도 휑... 상사들도 없어서 편하게 일했다.
(출근 시간만큼 퇴근 시간 지하철도 한가하길 기대했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놀러 나가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퇴근에는 지옥철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이지만 내일 아침 일찍부터 세례(드디어!) 받을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 집에 가서 쉬었다.
25.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세례를 받으러 갈 준비를 했다. 세례를 받기 위해 7~8개월간(올해 5월부터) 계속된 예비신자 교리 교육을 매주 참석했고, 드디어 이 날이 왔다.
정장을 입고 오라고 하여 오랜만에(거의 2년만) 정장을 꺼내 입었는데, 정말 불편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어떠한 긴장과 설렘을 주는 듯 해서 싫지만은 않았다. 11시 미사에서 세례식을 한다고 했고, 예비 신자들은 조금 일찍 오라고 해서 10시까지 성당에 갔다. (셔츠 색이 안 어울리는 것 같아 옷을 갈아입느라 조금 늦었다.) 천주교 신자인 여자친구도 세례식에 함께 해줬고, 내가 세례를 받는다니 자신도 긴장되고 설렜는지 일찍부터 준비를 해 일찍 도착해주었다.
미사 시작 전에 마지막으로 세례식 예행 연습을 하고 나니 시작까지 20여분의 시간이 남았고, 둘러보니 어느덧 성당이 꽉 차 있었다. 세례식 + 성탄절인만큼 많은 신자분들이 성당에 와 있었다.
핸드폰을 할 마음이 들지 않아, 남은 시간은 조용히 묵상을 하며 미사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세례식에 대한 내용은 하단의 포스팅 참고)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세례식 예행 연습때부터 마음에 찡한 울림이 있어서 본식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막상 식을 진행할 때에는 생각과는 다르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예식에서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것 +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다는 긴장감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다만 신부님께서 이마에 성유를 십자 모양으로 도유하시고 안수를 주시는데, 안수의 손길이 생각보다 무겁고 또 따뜻해서 5초 정도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기쁨과, 의무로 인한 책임감이 뒤섞여 복잡한 마음이었다. 그때문인지 처음으로 성체를 모시는데 성체가 목 뒤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세례식과 미사가 끝났을 때는 오롯이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께 축하를 많이 받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는 쭉 아싸로 지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어떤 공식 행사에서 기쁨을 나눌 일이 별로 없었는데 오랜만에 느끼는 이런 감정이 무척 새로웠다.
과연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심을 냉담하지 않고 꾸준히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나도 확신이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기쁨을 늘 소중히 기억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6.
요즘 나에게 있어 꽤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대통령에 대한 악플'이다. 이런 저런 커뮤니티에서 눈팅을 하다보면 전혀 상관 없는 글에 맥락도 없이 대통령 욕을 하는 글을 많이 보는데, 그런 글들이 무척이나 불편하게 느껴진다.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당연히 개인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무척 좋아하는데다가, 국정 운영도 잘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잘못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지금 분위기는 분명히 '이게 다 노무현때문이다'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냥 사람들이 자신이 받는 일상적 스트레스를 처리할 감정의 쓰레기통이 필요한 것 같고, 그것이 대통령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북한과의 관계 호전이야말로 '깔 수 없는' 문재인 대통령의 엄청난 성과이다. 평화란 얻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너무도 쉬운 것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을 쏴대는 북한이었던 것을 다들 잊은 것 같다.
(갑자기 분위기 정치가 되서 좀 그런 거 같긴 하지만, 실제로 내가 요즘 꽤나 큰 고민을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적어보았다.)
27.
근 몇 년간 들은 앨범 중 가장 좋았던 앨범은 'Tobias Jesso jr.'의 'goon' 이었다. 한동안 듣지 않다가 올 가을에 망원동에 있는 독립서점 한 군데에 갔다가 오랜만에 그 앨범 속 노래를 듣게 되었는데, 그 뒤로 꾸준히 goon 앨범을 듣고 있다.
이런 멋진 작업물을 내놓은 예술가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 자신의 작업물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으로 늘 기쁠지, 아니면 그조차도 불만족스럽고 하찮게 느껴질지, 혹은 더 이상 그런 멋진 앨범을 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절망할지.
살아 가는 동안 이렇게 멋진 작업물을 하나 남기는 것이, 나의 가장 크고 간절한 꿈이다.
28.
작년 이맘때 쯤 이사하면서, 출퇴근 시 타는 지하철이 4호선에서 2호선으로 바뀌었다. 4호선을 탈 때까지만해도 나름대로 엄청 끔찍하다고 생각했는데, 2호선을 타보니 그건 천국이었다.
(일단 2호선은 퇴근할 때 보통 지하철 3대를 그냥 보내야 겨우 탈 수 있을 정도니...)
출근 시간에는 그나마 탈 만한데, 퇴근 시간이 정말 끔찍하다. 특히 요 며칠 사이에는 어쩐지 정말 짜증나는 일들이 많아서 더욱 지하철 타는 일이 힘들게 느껴졌다. 오늘도 교대역에서 환승을 하고 2호선을 타려고 긴 줄에 서 있는데, 어떤 남자 하나가 끼어들었다. 두리번 두리번 누구를 찾는 척 하면서 슬쩍 슬쩍 앞으로 새치기를 하는 모습이 참 황당했다. 어이없이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데 또 다른 남자가 내 등을 세게 치고 지나갔다. 알고 보니 그 사람도 새치기 하는 중...
그런 사건 끝에 겨우 만원 지하철에 탔다. 그랬는데... 내 귀에 대고 누군가 엄청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다. 어쩐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느낌마저 들었다.
겨우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데,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마음에 화가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내 감정을 콘트롤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당혹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주님의 기도를 몇 번이나 중얼거리며 집에 갔다. 화를 누르기 가장 힘들었던 이유는 월요일부터 또 지하철을 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쨌건 주님의 기도 덕분인지, 지하철에서 내려 찬바람을 좀 쐰 덕분인지 집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마음이 진정되어 있었다.
29.
원래 한 해의 마지막 - 나이의 바뀜 - 새해의 시작 같은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긴 한데, 그래도 연말이다보니 올해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올해 내게 있었던 가장 큰 일은 역시 종교를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5월부터 12월까지 약 7~8개월 간 매주 교리 교육을 들으며 세례를 받을 준비를 했는데, 그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짧게만 느껴졌다. 매주 비슷한 수업을 듣다보니 계절이 바뀌었고, 어느새 세례를 받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교리 교육을 듣던 동안 회사에서 있던 일들을 돌이켜보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무려 부서 이동을 2번이나 했고, 그에 따라 상사도 2번이나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교'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나의 2018년은 무척 잔잔하고 한결같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반대로 '현생'(회사 생활)이라는 시선에서 보면 나의 2018년은 무척 다사다난했다. 이렇게 다르게 느낀 이유가 무언지 고민해보았고, 내 나름의 (허접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종교는 그것이 가진 '무한성, 영원성, 변화하지 않는 어떤 것'이라는 성질 때문에 짧게 느껴진 것이었고, 그와 반대로 현실 생활의 '가변성, 일회성' 덕에 상대적으로 길게 느꼈던 것 같다.
하나의 2018년을 보냈는데, 지나고 나서 느낀 것들이 이렇게 다른 것이 새삼 신비로웠다.
그렇다면 종교를 가진 상태로 오롯이 보내게 되는 올 한 해는 어떤 모습일까. 무척 궁금하다.
(종교를 갖게 된 후, 삶의 모든 것들을 종교에 영향 속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 또한 신기하다.)
저녁에는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명동 성당에서 모시는 첫 영성체였다. 미사의 순서에 따라 성체를 받으러 나갔는데, 성체를 기계적으로 빠르게 나눠주시던 신부님께서 내 차례에서는 약 2~3초 정도 멈칫 하셨다. 아마 그동안 안수만 받던 내가 성체를 받는 모습을 보고 놀라셨던 것 같다.
비록 본당은 아니지만 자주 와서 미사를 드리다보니 얼굴을 기억하신 게 아닌가 싶었다. 그 순간의 침묵이 신경쓰여 미사가 끝나고는 신부님께 세례받은 것도 자랑할 겸 인사라도 드리려고 하는데, 아쉽게도 자리에 없으셨다. (인사는 다음에 드리는 걸로)
30.
여자친구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돌아보자 2018'의 시간을 가졌다.
한 해 동안 있었던 큰 사건들을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는데, 각자에게 일어난 큰 일들을 새삼 돌이켜 볼 수 있었고 함께 보낸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덧붙여, 내년에는 관계의 변화를 꿈꾸고 있는데 그 모든 과정 또한 행복 속에서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9년 말에 돌아봤을 때, 오늘처럼 '그래도 행복한' 한해를 함께 보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