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의 맛

달과 별이 새겨진 우쿨렐레

이스탄불에서 산 현악기

by 매일의 기분

'아이 일디즈'(ay yildiz)는 터키의 국기(國旗, national flag)를 부르는 말이다. 아이 일디즈의 뜻은 터키말로 '달과 별'인데, 터키 국기를 본 사람은 쉽게 그 이름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터키의 국기엔 초승달과 별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이 일디즈는 무척이나 단순하고 직관적일 수 있지만, 멋진 이름임에 틀림 없다.

IMG1844.jpg 아일 일디즈는 단순하면서도 멋스럽다.


나는 고등학교 때 세계사를 배우면서부터 늘 터키에 가보고 싶었다. 비잔티움과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이스탄불이 된 그 도시에 가보고 싶었다. 지중해와 흑해가 만나고 유럽과 중동이 만나는 이스탄불의 역사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유럽 여행의 마지막 경유지에 이스탄불을 억지로 끼워넣었다. 경로상으로, 경제상으로는 분명히 효율적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나는 늘 터키에 가보고 싶었다.


로마에서 이스탄불행 블루 익스프레스를 탔다. 비행기는 이스탄불의 아시아 구역(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어서 도시의 절반은 아시아, 절반은 유럽이다. 정말 흥미로운 곳이다!)에 있는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비행기에 내리는 순간부터 이스탄불이 좋아졌다.


IMG1793.jpg 공항 버스는 지중해와 흑해가 만나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탁심 광장에 도착했다.


이스탄불에서 보낸 며칠 동안 나는 모든 것에 만족했다. 저렴한 물가, 맛있는 케밥과 아이스크림, 고풍스런 갈라타 탑,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한 그랜드 바자르 등등. 특히 아야 소피아 성당과 대칭하여 서 있는 블루 모스크가 함께 보이는 풍경은 말 그대로 절경이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하루 전날, 이스티크랄(한국으로 치면 명동같은 곳)의 악기상이 모여 있는 악기 거리를(한국으로 치면 낙원상가) 걷다가 문득 악기를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달 가까이 유럽 여행을 하면서 나는 늘 배낭 하나만을 메고 다녔다. 쉴틈없이 도시와 도시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를 이동해야 했다. 많은 짐은 곧 힘든 여정을 뜻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필요한 것만 챙겼고, 여행을 하는 내내 짐을 늘리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이제 내일이면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날이었고, 그래서 이제는 뭐라도 하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때마침 악기 거리를 걷고 있었기 때문에 악기가 갖고 싶어진 것이었다. 이를테면 문화적 허영인 것이었다.


IMG1801.jpg 이슬람 문화권에는 현악기가 상당히 잘 발달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다양한 악기들 중 우쿨렐레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우쿨렐레를 칠 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우쿨렐레를 골랐다. 기타나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가 아니라 우쿨렐레인 이유는 단순했다. 다른 것들은 크고 비쌌다. 내가 가진 돈의 범위 안에서, 비행기의 기내에 싣고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고, 딱 맞는 것은 우쿨렐레였다.

우쿨렐레를 사기로 결심하고 우선은 몇 군데의 악기 상점을 돌아다니며 우쿨렐레의 시세를 살폈다. 우쿨렐레들은 마냥 싸진 않았다. (당연하지만) 예쁘고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일수록 더욱 비쌌다. 결국 나는 그 우쿨렐레들 사이에서 달과 별이 새겨진, 터키의 국기가 새겨진 우쿨렐레 하나를 골랐다.

같은 브랜드의 다른 색깔보다, 달과 별이 새겨진 그 우쿨렐레는 조금 더 비쌌다. 여러 번의 흥정 끝에 200리라(약 75,000원)의 값을 치르고 우쿨렐레를 들고 숙소에 돌아와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울림통의 한 구석에는 made in china가 흐릿하게 적혀 있었다.

코드를 잡을 줄은 몰랐지만 마구잡이로 줄을 퉁겨 보았다. 가볍고 경쾌한 소리가 났다. 이스탄불과 딱 어울리는 소리였다. 구석에 적힌 made in china도 이스탄불과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나는 그 우쿨렐레를 들고 무사히 한국의 집에 돌아왔다.

나는 우쿨렐레를 칠 줄 몰랐다


그 뒤로 몇 번의 이사와 입사와 퇴사와 해외 여행이 있었다. 미처 적기 힘든 더 많은 일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장롱 속을 찾아보니 초승달과 별이 새겨진 우쿨렐레는 여전히 잘 있다. 악기 본연의 기능보다는 기념품으로서의 역할을 더 잘 해내고 있는 그 우쿨렐레 덕분에 나는 아직도 이스탄불의 국기를 잘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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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나는 여전히 우쿨렐레를 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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