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 side

심발즈와 시부야케이

by 매일의 기분

시부야계(渋谷系)라는 장르가 있다. 일본어 독음 그대로 '시부야케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이름의 유래가 재밌다. 시부야케이는 일본 도쿄의 지역 이름인 '시부야'에 '계파' 정도의 의미를 가진 '이을 계(系)'자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시부야케이는 시부야에 위치한 음반 가게에서'만' 유난히 잘 팔리던 특정 가수나 앨범들을 총칭하는 장르의 이름이다.




'시부야'가 시부야케이가 태어나던 시점에 갖던 의미는 상당했다. 지금이야 인터넷 시대로 지역간의 거리와 특성이 썩 중요하진 않지만, 80년대에는 조금 달랐다고 한다. 일본의 중심인 도쿄에서도 가장 번화한 시부야에는 패션과 유행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시쳇말로 시부야케이는 당시에 '가장 잘 나가는 사람들'이 듣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독특한 옷을 입고, 독특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듣는 음악 그 자체였던 것이다.

보통 어떠한 음악 장르를 명명할 때는 음악적 성격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 통기타 한 대로 만든 잔잔한 음악은 '포크'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시부야케이는 단지 '시부야에서 잘 팔린 음악들'을 통틀어 묶은 장르의 이름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안에 속한 음악들의 공통점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시부야케이라는 장르의 정의가 굳어지게 되면서 어떠한 '음악적 공통점'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언어로 치환하자면, 시부야케이는 다분히 팝적이며 발랄하고 밝고 듣기에 편하다. 특정 지역색을 띄기 보다는 보편성을 지향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시부야케이를 대표하는 코넬리우스(플리퍼스 기타), 토와테이, FPM, M-flo 등은 일본을 넘어 세계 각지에 많은 팬들을 거느릴 수 있었다.




2003년쯤이었을까,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티비를 켜보니 당시 Mnet에서 진행하는 '월드팝스world pops'라는 프로그램이 하고 있었다. 가요가 아닌 팝음악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날은 일본의 음악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그날의 주제가 바로 시부야케이였다. 시부야 지역에서 유난히 인기를 얻은 음악들이라는 말과 함께 몇몇 밴드들의 음악을 틀어줬다. 피치카토 파이브, FPM, 카히미 카리, 하바드, 토와 테이 등 당시 주목받고 있던 시부야케이 뮤지션들을 소개해주고 있었다.(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당시만해도 시부야케이의 인기가 상당했다.) 그 중에는 심발즈cymbals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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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케이에서 심발즈의 위치는 실로 애매했다. 인기가 있긴 한데, 또 그렇게 인기가 있냐면 그건 또 아닌 어중간하게 인지도가 있는 밴드였다. 설상가상 진행자는 그들이 해체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밴드의 사운드 자체는 로큰롤이었지만, 보컬 토키 아사코의 귀엽고 듣기 편한 목소리 덕분에 마치 팝음악처럼 들렸다.

그렇게 뮤직비디오만 한 번 봤을 뿐인데(아마 do you believe in magic?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들이 좋아졌다. 하지만 당시에 일본 밴드(그것도 인지도가 애매한)의 노래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내가 구매한 베스트 앨범 anthology는 그 다음 해인 2004년에 정식 수입되었다.) 그래서였는지 어렵게 어둠의 경로로 다운받은 그들의 앨범은 더욱 달콤했다. 내 취향과 딱 맞았고, 나는 한동안 심발즈의 음악을 들었다.

해체 후에도 여차저차하며 활동을 이어나가는 토키 아사코를 꾸준히 응원했다. 음반도 열심히 구매하고, 방한하여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때는 생전 안 듣던 라디오도 들었다. 하지만 역시 토키 아사코의 보컬이 있다 해도 심발즈의 음악은 나오지 않았다.




요즘은 시부야케이도 한물 간 장르가 되어 버렸다. 싸이월드가 한창 잘 나가던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니홈피에서 시부야케이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CF나 드라마에 많이 나왔기 때문에) 다만 지금 남은 건 아, 옛날에 이런 노래 많이 들었었지 하는 아련한 추억들뿐이다.

이 글을 쓰며 심발즈가 생각나 정보를 찾아보니, 사운드의 중심이었던 베이시스트 오키이 레이지가 새로운 밴드(tweedees)를 결성했다고 한다. 약간 찾아보니 여전히 한결같은 스타일의 음악들을 만들고, 연주하고, 부르고 있다. 조금은 감격스러웠다. 오늘은 이 밴드의 음악을 찾아보며 오랜만에 추억에 잠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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