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의 맛

프란츠 요셉에서의 헬기 추락

by 매일의 기분


뉴질랜드 남섬의 프란츠 요셉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을 때 있었던 일이다. 프란츠 요셉은 19세기 중반 독일의 탐험가가 발견한 곳으로, 당시 오스트리아의 황제의 이름을 따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프란츠 요셉 주변에는 도보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23km의 긴 빙하가 있었고, 그 덕분에 관광지로 유명해질 수 있었다.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출발해 그레이 마우스까지 기차로 5시간, 그리고 그레이 마우스에서 버스를 갈아타 프란츠 요셉까지 3시간을 가야만(총 8시간) 프란츠 요셉에 도착할 수 있다. 프란츠 요셉은 그렇게 외진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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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요셉에 온 이유는 명백했다. 내가 아닌 다른 관광객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3백여 명이 조금 넘게 산다는 이 작은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오는 이유는 단지 빙하를 보기 위해서였다. 프란츠 요셉에 오후 4시 경 도착했던 나는 다음 날 빙하가 있다는 곳에 가보기로 하고, 빙하를 둘러 보는 반나절짜리 빙하 패키지 상품을 알아보았다. 프란츠 요셉에는 빙하를 보기 위한 다양한 패키지 상품이 있었고, 나는 도착할 때까지도 어떤 패키지를 신청해 빙하를 구경할지 고민했다.


대표적으로는 헬기 투어가 있었다. 빙하가 있는 곳은 당연히 산 꼭대기에 있었고, 그 아래로는 접근하지 못한다고 했다. 헬기 투어는 빙하를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헬기 투어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비싼 가격이었다. 고작 빙하 한 번을 보는 데 3~40만원을 내는 것은 너무 아까웠다.


반대로 아래서부터 걸어서 빙하를 보는 방법이 있었다. 가격도 저렴해서 나는 이것을 해보고 싶었는데, 알아보니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많이 녹아서 더 이상 빙하가 있는 곳까지 걸어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빙하가 녹아서 쏟아져 내릴 수 있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나는 6~7만원 정도 하는 부쉬워크라는 것을 선택했다. 간단히 말해 빙하가 보이는 곳까지만 도보로 이동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종의 산책 코스였다. 헬기를 선택하기엔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고, 멀리서도 빙하가 잘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프란츠 요셉은 빙하를 뺀다면 아무 것도 없는 산골 마을에 불과했다. 변변한 식당도 없어 식재료를 사다가 호스텔에서 요리를 해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도 할 게 없어 숙소에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숙소 근처에 글로우웜(반딧불과 흡사한 빛을 내는 곤충)을 볼 수 있는 산책 코스가 있다고 해서 숙소 밖을 잠시 나가봤다.


하지만 밖은 너무 어두웠다. 산 속이기 때문에 당연했다. 글로우웜이 있다는 산책 코스의 표지판을 따라 갔지만 그 표지판은 숲 속을 가리켰다. 밤에 깜깜한 숲 속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너무 겁이 나는 일이었다. 나는 발길을 돌려 다시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두 명의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쪽으로 가면 글로우웜을 볼 수 있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표지판은 봤지만 가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들은 나에게 고맙다며 그쪽을 향해 걸어 갔다. 나는 용기를 내어 괜찮으면 나도 같이 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들은 당연히 된다고 했다.




따라가며 간단히 얘기를 나눠보니 그 두 친구는 미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서부쪽에 사는 사람들인데 휴가를 맞아 뉴질랜드에 놀러 왔다고 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언제 이곳에 왔냐는 얘기를 했는데, 다들 오늘 여기에 도착했다고 했다. 자연스레 내일은 빙하를 보러 갈 거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고 나니 그 두 친구가 나에게 헬기가 떨어진 얘기를 들었냐고 물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게 무슨 얘기냐고 반문했다. 들어 보니 이곳 근처 멀지 않은 곳에 '폭스'라는 또 다른 빙하를 볼 수 있는 마을이 있는데, 바로 오늘(!) 그곳에서 투어를 하던 헬기가 떨어져 운전자와 탑승객 모두가 사망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내일 여기서도 헬기가 뜰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얘길 들었다고 했다.


뉴질랜드 날씨가 분초 단위로 바뀌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헬기가 추락할 정도로 심각한 것인지는 몰랐는데, 이렇게 듣고 보니 꽤나 심각한 문제인 것으로 보였다. 나는 다시 생각해도 부쉬 워크를 신청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같은 겁쟁이는 헬기에 타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헬기 투어를 하지 못하다는 것도 그닥 아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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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마리의 글로우웜을 보고 미국 친구들과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숙소에 돌아와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신청해 둔 부쉬 워크를 잘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결과부터 말하면 부쉬 워크는 돈낭비였다. 나는 빙하는 보기 위해 내가 가는 곳이, 위험하거나 가이드가 꼭 있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공원같은 곳이었다.


일반인들도 충분히 걸어다닐 수 있고, 실제로 걸어다니는 곳을 굳이 모여서 가이드의 인솔을 받아 걸어다닐 필요는 없었다. 빙하 또한 멀리 작게 어렴풋이만 보였다. 여러모로 아쉬운 투어였다.


헬기는 예상대로 뜨지 않았다고 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들어보니 여행 기간에 여유가 있는 친구들은 이곳에서 며칠 더 묵으며 헬기가 뜰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고, 여행 기간이 짧은 친구들은 나처럼 멀리서 빙하만 슬쩍 보고 다음 도시로 이동한다고 했다. 프란츠 요셉에 있는 내내 나는 내가 탄 헬기가 떨어지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는데, 생각할 때마다 섬뜩하고 무서웠다. 결국 나는 제대로 된 빙하는 멀리서만 슬쩍 보고 퀸즈타운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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