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을 하는 데 있어 인종 차별이란 은근히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우선은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한다 한들 그것이 확실히 인종차별이란 것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대놓고 혐오 단어나 행동을 한다면 분명하겠지만, 세상엔 의외로 그렇게 당당하게 미친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인종 차별은 피해자의 긴가민가한 기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당하고 나서도 아 기분이 좀 찜찜하긴 한데, 이게 정말 내가 화내도 될 문제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해당 상황은 끝나 있고 만다. 화를 내고 싶어도 언어적 한계때문에 그러기 쉽지도 않다. 그러고 나면 다시 올 일 없고, 볼 일 없는 사이라는 것을 생각하고는 그냥 더러운 꼴 한 번 당했다고 생각하며 털어야만 한다.
독일에 가서 기차를 타다가 환승을 위해 드레스덴에서 내렸다. 풍경이 멋진 곳이라는 말에 2~3시간 정도 여유 있게 경유를 할 계획을 짰다. 도시는 예상대로 멋지긴 했지만, 그곳에서 먹은 점심은 최악이었다.
익숙한 것을 먹고 싶어 서브웨이에 들어갔는데, 들어갔을 때부터 젊은 여직원의 태도가 신경쓰였다. 찡그린 얼굴로 시큰둥하게 서 있는 그 직원에게 주문을 하는 것부터 눈치가 보였다. 다소 부족한 내 영어 실력과 알아듣기 힘든 독일식 영어 발음이 겹쳐지니 주문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독일에 오기 전에도 유럽의 여러 다른 나라를 들렀었는데, 그런 곳들에서는 음식을 주문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었는데, 여기서는 모든 과정이 힘들었다. 철저히 그 여직원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이 아닐까 했다.
주문의 막바지에는 여직원이 나를 비웃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어를 좀 못하는 게 그렇게까지 무시받을 일인지 조금 어이가 없었다. 더 웃긴 건 그녀의 영어 실력도 그닥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따질 영어 실력도, 독일어 실력도 없어서 나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샌드위치를 받아들었다. 서브웨이의 조리대가 오픈식인 게 다행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여직원이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그녀가 내 음식에 무슨 짓을 할 지 몰랐다. 결코 비약은 아니었을 거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 에스테야라는 도시에 들렀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기분 좋게 하루치 순례를 마무리하고 샤워를 하고 도시를 구경했다. 에스테야는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서도 제법 규모가 있는 도시였다. 구경할 것도 많았고, 도시 가운데를 흐르는 강이 멋졌다. 강변에 있던 작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햇볕을 쬐며 여유를 느끼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물이 쏟아졌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한참을 둘러보는데 다시 또 물이 튀겼다. 분명히 고의로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며 열심히 찾아보니 주변 건물의 5~6층 정도 되는 곳에서 10살 정도로 되어 보이는 꼬마가 자신의 동생과 함께 내가 있는 곳으로 물풍선을 던지는 것을 보았다. 내가 그들이 던진 것임을 알아채고 쳐다보는데도 그 녀석들은 숨지도 않고 깔깔대며 웃었다. 무척 기분이 나빴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냥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좋지 않은 일은 겹친다고 했던가, 그렇게 하고 알베르게(순례자 전용 숙소로 많은 인원이 한 방에 묵는 공동 숙박 시설이다.)에 돌아왔더니 무언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무슨일인가 싶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 그냥 침대에 누워 와이파이로 인터넷을 하고 있는데, 경찰 두 명이 올라와 호스피탈레로(알베르게를 운영하데 도움을 주는 봉사자)와 무언가 얘기를 하며 계속 나를 힐끔거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긴장하고 있는데, 이내 그 경찰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서로간의 짧은 영어로 이야기를 해 보니, 내가 전날 묵었던 마을의 숙소에서 한 스페인 할머니가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을 도난 당했는데, 그 할머니가 생각했을 때 같은 방에 묵었던 동양인이 의심이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숙소에 묵었던 동양인들 모두의 여권번호와 이름을 적어 왔는데, 내가 그 안에 있었다고 했다. 경찰관의 종이 쪽지를 슬쩍 보니 실제로 내 이름과 여권번호가 적혀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쪽지에 적혀 있던 다른 이름들도 아는 이름들이었다. 내 또래의 한국인 남자 셋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었는데, 그들도 전날 나와 같은 숙소에 묵었었다. 그 쪽지엔 우리 네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른 세 명의 한국 남자들은 에스테야에 있지 않았고, 나만 묵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경찰관은 내 짐을 좀 뒤져봐도 좋겠냐고 물었다. 부끄러울 게 없던 나는 그래도 좋다고 했고, 당연히 내 짐 속에서 도난 물품은 나오지 않았다. 당황이 지나가니 괜한 의심을 샀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졌다. 경찰관도 그러한 낌새를 느꼈는지 알베르게에 있는 사람들 몇몇에게 질문을 하긴 했지만, 왠지 형식상 질문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단지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화가 나는 순간이었다.
물론 해외 여행을 하다 보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하지만 확실히 이런 일들을 겪고 나면 무언가 맥이 탁 풀려버리는 것도 사실이다. 가장 화가 나는 점은 내가 당한 부당한 것들에 대해 따지기 힘들다는 점 같다.
그렇다고 이런 게 무서워 해외 여행을 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난감하기만 하다. 결국은 조금 더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성숙해지기를 막연히 바라는 수밖에 없다. 난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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