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적적 Nov 17. 2024

일요일의 정물화

눈을 뜨지 않고도.

모란이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어둠 속을 걸어 다니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무리 조용히 걷는다고 해도 건너편 빌딩의 불빛에 몸은 더 커다란 그림자를 방 안 가듯 뚝뚝 흘리며 걷고 있습니다.

     

이 어둠이라면 아직 깨어나면 안 돼 눈을 감고 다시 잠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바케트빵의 겉면처럼 딱딱하고 푸석푸석한 부스러기를 흘리며 눈을 뜹니다. 제가 있는 곳의 하늘은 말을 하기전 헛기침을 내려는것처럼 가라앉아 있어요.          


집으로 배송 되어온 택배 박스들은 하루나 이틀 쯤 집안에 둡니다. 모란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는 택배 박스에 급속도로 사랑에 빠져 박스 안에 액체처럼 담깁니다. 박스를 버리고 나면 반나절 쯤 사랑하는 박스를 찾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리저리 몸을 굴려 가며 흐르는 물처럼 박스 안을 향유합니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파운드케잌같습니다.               


하늘은 고개만 살짝 들어도 눈 안에 가득합니다. 간혹 이런 날엔 누군가의 눈동자에 떠 있을 하늘을 바라다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내가 바라보는 하늘 말고 반사 되어진 하늘처럼 더 간결하고 한정된 하늘을.     


흐린 날들을 좋아하는 나는 흐린하늘에 현혹되어 한참을 늦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을이 가을 하늘에 푹 빠진 아침입니다.     

어제밤에 포효하는 어둠의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잠이 다시 깨곤했어요.          

나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얇고 사각거리는 이불을 개고 베개를 제자리에 놓고 계단을 내려와 정물화 속 모란을 꺼냅니다. 거실바닥에 채색되어 있던 고양이가 체온을 높이며 팔에 와서 안깁니다.      


자꾸만 하늘을 바라보는 이유는 문득 하늘이 낯설기 때문입니다. 모아 두었던 아니 잊고 있었던 아니 미뤄두었던 재활용 쓰레기들을 이끌고 나옵니다. 마치 지난 주 엔 이런 음식을 먹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확인합니다. 일회용 용기들이 서로를 만지며 짤그락거립니다.      


유효기간이 너무나 짧은 흐린하늘이 폐기 처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푸른하늘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되며 햇살은 눈이 부시게 내리쬘 일은 없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유효기간이 지난 문단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일요일 아침이라는 기억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커피 포트에 물을 올리고 물이 끓기를 기다립니다. 커다란 머그잔 안으로 커피나무묘목이 한없이 자라고 있습니다.가늘고 긴 가지끝으로 붉은 점이 돋습니다. 오솔길이 열리며 산책로가 드러납니다. 깊고 아득한 묘목사이를 걸으며 컵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일요일아침이 rpm을 높이고 있습니다.      


정오가 지나면 걷잡을 수 없는 속력으로 하루가 지나갈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가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