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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안개처럼.

차창에 글씨를 새겨 본 적이 있나요?

by 적적

날씨는 이제 막 따스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젖은 머리로 나간 초봄처럼 춥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저마다 살아있는 화초처럼 물기를 머금고 마르지 않은 시간의 결대로 녹아내리는 수초들처럼 흔들립니다.


가을밤의 산책로는 안개가 피어오릅니다. 봄밤의 안개와 여름 새벽의 안개 그리고 가을의 안개는 하나의 기원에 뿌리를 두고 여러 갈래로 진화하며 이젠 서로에게 어떤 개연성을 찾아볼 수 없는 종으로 달라진 것처럼 이 밤의 안개는 소리 없이 내리는 눈처럼 혹은 창가에 후-우하고 입김을 불면 수증기의 표면이 매끄러운 메모지처럼 눈앞에 펼쳐집니다.

언젠가 한 사람이 내리고 그 자리에 앉아 버스 창가에서 어두운 밤을 바라다보다 창가에서 얼핏 글자를 읽어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입김을 불어넣자 ‘미안해’라는 글귀가 확연히 떠올랐습니다.

그였는지 그녀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글자를 쉽사리 손으로 지울 수가 없어 그 글자 아래 ‘괜찮아’라고 쓰고 버스에서 내리며 내가 앉은자리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습니다.

글을 쓰지 않는 동안 글을 쓰고 있던 사람들을 보며 존경하는 마음과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으로 마음이 불편하였습니다. 이제 머리가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마르고 있습니다.


오래전 어느 다이빙 선수인터뷰가 떠오릅니다.


정확한 자세로 떨어지면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다. 바닥에 닿을 일은 없다 나는 그 공간에서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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