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해안가 모래 구덩이 속에 묻혀있어요. 몸의 등고선을 따라 파놓은 구덩이는 그리 깊지 않으니 그 구덩이 속에 몸을 묻고 나는 잠들기 전까지 손끝으로 발끝으로 생각의 꼬리로 파놓은 모래들을 몸 위로 다시 뒤덮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다들 잠들지 않나요? 눈을 감습니다. 물론 눈을 감고도 나는 가스 밸브를 더듬어 끄거나 욕실 문을 닫거나, 때론 밖으로 나가 오전이나 오후의 어떤 장소를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 내가 내게로 돌아와 온전히 파묻혀버립니다. 모래를 놀라지 않도록 몸 위에 덮어내는 일들로.
생각의 근육들이 뻐근해지도록 모래를 덮는 일.
몸이 바람에 가려져 더 이상 뒤척이지 못하는 그때
가을 이불도 무겁게 느껴져 온몸이 가라앉는 그때 말이죠.
새벽은 아직 날씨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를 말하고 있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해가 뜨지 않고 달이 아직 하늘에서 야근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가방에 짐을 주섬주섬 담아 테이블 위에 가방을 올려두고 길가에 서서 교대근무를 할 태양을 기다립니다.
지난밤 유난히 빛이 나던 눈동자는 자꾸만 내려오는 눈꺼풀을 들어 올릴 힘이 없습니다. 달은 간유리처럼 아침 저편의 하늘까지 건너다 보이는 간유리 같습니다.
그리고 여름이 끝난 겨울 아침은 차가운 바람처럼 불어와 덮어놓은 모래를 헤치고 옵니다.
어둠이 걷히는 시간보다 덮어두었던 모래의 거대한 온기가 사라지는 시간이 더 빠릅니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아침
익숙한 골목길을 걷습니다. 골목길 끝으로 나와 막다른 대문집을 지나고 나면 큰 길가에 다다릅니다. 건널목 앞에서 붉은빛이 사라지길 기다리며 건너편 사람과 교차하는 지점에서 대각선으로 내리쬐는 햇살을 바라다봅니다.
오늘 날씨가 즉결심판으로 받은 형량을 바라다봅니다.
가을이 며칠째 지나고 있습니다.
구류에 처한 가을은 비교적 가볍게 내려지는 형벌이지만, 가을을 보냈다는 전과기록에 남게 될 것입니다.
순장
그리하여 그의 혹은 그녀의 사랑을 받던 그는 혹은 그녀는 그 때론 그녀의 죽음으로 무덤에 같이 묻혀버립니다.
무덤엔 아파트가 있고 쇼핑센터가, 높은 건물의 영화관이, 몸이 뜰 수 있는 바다가 있습니다. 겨울이 있고 봄이 오며 아이가 태어나고 어느 숲으론 수목장이 있습니다.
붉은 글씨로 쓰인 고지서가 있고, 한쪽 모서리가 유난히 닳고 있는 신발이 있고, 잠들지 못하는 밤과 깨어나기 힘든 아침도 있습니다.
햇살이 쏟아지는 모래사장에서 발가락의 마른 모래를 털어내고 있습니다. 반대편으로 서로에게 기울어진 신발을 신고 일요일을 보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