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녀 생에 단 한 번.

목례를 나눈 사람이 누구더라도.

by 적적

아직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모란은 창가에 바짝 다가서서 태양을 끌어오는 제사장처럼 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가을 이불을 목밑까지 덥고 덮고 여름 선풍기 타이머를 맞춥니다. 책을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바람이 점점 나른해지더니 몸은 물 위쪽에 둥둥 떠다닙니다.


바람이 멈춥니다. 한참 지나 물속을 허우적거리며 손을 휘젓다 깹니다. 선풍기의 타이머가 멈추고 바람이 끊겼습니다. 옆에 두고 잤던 리모컨을 더듬거리며 찾습니다. 드디어 감은 눈을 뜨고 사라진 리모컨을 찾고 있습니다.


모란이 무언가 몰고 다닙니다. 벽에 부딪히는 소리, 무언가 안고 뒹굴고 깨물고 냄새를 맡는 소리, 신이 나서 눈빛이 밝아지는 소리. 불을 켜고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잠이 깨지 않도록 최대한 눈을 가늘게 뜨고 정신을 흐릿하게 한 뒤 모란에게로 다가갑니다.


처음 보는 물건인 데다 적당한 무게감도 느껴져 몰고 다니기 좋았을 리모컨을 빼앗습니다. 달려드는 모란을 뒤로하고 꺼뜨릴 수 없는 잠의 불씨에 가만히 입김을 불어넣으며 리모컨으로 다시 시간을 예약합니다. 가을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씁니다.


침대에 눕는 동시에 불씨가 꺼집니다. 그렇게 소중히 다뤄 꺼지지 않게 조심했는데….


모란과 함께 살며 바닥에 떨어뜨려 놓은 것들은 대부분 위험한 것들입니다. 전선들을 감았던 빵 끈같이 생긴 철사들, 어디서 침입한 지 기억나지 않는 고무줄-고양이들은 그런 것들에 감동을 넘어 추앙하는 물건이기도-이나 작은 비닐들은 일단 주머니에 넣어둡니다.

간혹 주머니에서 나온 것들을 보면 이런 것들도 있었나 싶게 많은 것들을 몰고 다닙니다.


한때 모란은 고양이 장난감으로 불리는 낚싯대 같은 막대. 길고 가는 줄 끝에 그 무엇이든 상관없는 것을 쫓아다니고 매달렸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제 모란은 소파에 편하게 앉아있습니다. 관객석의 고양이는 냉소적입니다. 혼자서 뛰고 흔들며 모란을 유혹합니다. 공연은 쉽게 끝이나 버립니다.


공원으로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60대가 넘어 보이는 여성분이 어제부터 농구대를 홀로 차지한 채 공을 던지고 있습니다. 번번이 링에 닿지도 못하거나 링에 튕겨 농구공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오늘도 그녀는 농구장을 홀로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세 번 중 두 번은 링에 닿지도 않습니다. 매번 바닥을 구르는 공을 쫓아가 농구공을 들고 다시 골대 아래에 섭니다.


그녀가 공에 대한 예의로 바닥에 공을 튕기며 서있습니다. 그녀는 공과 지면 그리고 골대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그녀는 버뮤다 삼각지대를 지나는 한낯 비행선이나 선박처럼 위태로워 보입니다. 공원을 두 바퀴 이상 돌았을 때 이제는 골대 아래에서는 매번 골을 튕기고 있습니다. 그녀를 바라다봅니다. 그녀의 생에 중 공을 넣는 일을 없을 듯해 보입니다.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가 가볍게 목례를 하자 그녀가 소녀처럼 웃습니다. 공을 튕기는 법과 슛을 던지는 자세를 얘기합니다. 손자가 생긴다면 저렇게 다정한 아이였으면 좋겠구나 생각할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지도합니다. 아이 앞에서 그럴싸한 자세로 공을 던지자 아이가 손뼉을 쳐줍니다.

pinterest

지나며 두 사람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그녀가 흐르는 땀을 바닥에 흩뿌립니다.

햇살이 농구장을 집어삼킵니다. 햇살이 뱉어놓은 그녀가 천천히 공을 튕기며 세워 둔 자전거를 타고 사라져 갑니다.


햇살이 눈 부신 건 어쩌면 그 햇살 아랫사람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코로나의 여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