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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여왕

서로의 야윈 몸을 본다는 것은.

by 적적

이른 아침 문을 여는 작은 가게가 있습니다. 다들 잠이든 사이 밥을 하고 당근과 오뎅을 볶고 아침이 오기 전 연근을 얇게 채 쳐서 달콤한 간장 양념에 졸이기 시작합니다. 밥을 다시 퍼서 조금 식혀둡니다.


커다란 그릇에 담아 참기름과 소금 그리고 깨소금을 뿌려 찰지게 비벼둡니다. 김을 펴서 밥을 얹고 속 재료를 채웁니다. 그리고 김이 찢어지지 않도록 말아줍니다. 떨어진 곳을 밥풀로 붙여 여미고 김 위에 작은 솔로 참기름을 살짝 바른 뒤 참깨를 뿌립니다. 미리 날을 세워둔 칼로 김밥과 김밥이 붙어있지 않도록 한입 크기로 자릅니다. 떨어지지 않도록 한 번에 들어 올려 은박지에 올려둡니다. 은박지를 도로록 말아 끝을 오므리고 살짝 끝을 접어둡니다.


C는 어릴 적부터 사는 일에 꽤 진지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병든 아버지와 철없는 동생을 위해 매일 허리 펼 새 없이 일하는 엄마의 어깨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C는 신문 배달을 해서 모은 돈으로 겨울이 되자 커다란 고구마 통을 헐값에 사서 자기 이름을 붙이고 자기 머리의 두 배는 될듯한 방한용 모자를 썼습니다. 모자는 지상의 모든 바람도 막아주었지만, 눈앞의 보이는 것도 대부분 막아섰습니다. 자꾸만 모자를 뒤로 넘겨야 했습니다.

골목길 어귀에 서서 밤새 불을 지폈습니다. 그때는 늦은 밤 문을 여는 가게도 없어서 군고구마 한 상자를 이틀 만에 팔아 치웠습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을 두 해 지나는 동안 밤이면 리어카를 끌고 거리로 나섰고 퇴근 시간이면 환하게 달아오른 C의 고구마 통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때론 그 뻣뻣한 종이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월급날인 친구는 남은 고구마를 다 싸 달라고 하고 다 함께 리어카를 몰고 그녀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리어카에 튼튼한 쇠사슬을 묶고 자물통을 채우는 동안 그녀를 기다리곤 하였습니다.


물건은 안 팔면 그만이다. 네 몸이 가장 소중한 거다. 마음을 놓지 말아라.


C와 그녀의 어머니는 동맹을 맺은 국가처럼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서로의 상황에 참전하며 가장 용맹하게 싸우는 동지 같았습니다.


그런 C가 김밥을 싸기 시작한 것도 20년이 넘었습니다.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 가득히 김밥을 가득 담아 새벽이면 전철역 입구에서 김밥을 팔았습니다.

병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아버지를 따라가시자 그녀는 김밥을 팔고 잠이 들고 김밥을 싸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김밥은 점점 더 터진 곳 하나 없이 늘 평균을 유지하며 팔려나갔습니다.


한동안 C의 김밥을 매일 먹던 사내가 호감을 갖은 건 꽤 오래전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무런 관심도 없노라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코로나로 한동안 들썩이던 당시 강철 같던 C도 코로나에 걸려 한동안 전철역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온갖 코로나 증세로 집 안에서 나오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삼시 세끼를 문 앞에 걸어두고 늘 같은 메모가 남겨졌습니다.

일단 먹고 힘내요 얘기는 나중에 해요


C가 열흘 이상 앓고 세상에 나온 뒤에도 간혹 기침이 나고 혀 끝으로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으며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을 때 한동안 김밥을 만들 수 없다는 걸 직감한 뒤에도 문 앞에 걸린 음식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배달이 되고 있었습니다.

반찬의 양념과 윤기 있는 밥의 찰기 그리고 밥을 담은 모양에서 정성이 느껴지는 일은 너무나 생소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것, 그런 기분 누군가의 따스한 손에 놓여 작은 병아리처럼 손바닥을 쪼아 대는 것처럼 따스했다는 나날들.


그 사내가 그녀를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늦은 밤 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C와 그 사내는 함께 살고 있습니다. 새벽이 오기 전 김밥을 싸고 차로 전철역에 도착해 김밥을 팔고 돌아와 같이 샤워를 하며 야윈 몸을 바라볼 것입니다. 배가 고플 때까지 잠을 잘 것입니다.


C는 말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죽을 뻔했고 이 남자 때문에 살았다고.


그 남자는 그녀가 없을 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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