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적적 3시간전

가을 영수증

절취선을 따라 뜯어내세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 주니까.     


그러니 반란을 일으키렴 작은 조약돌이 큰 물결을 일으키듯 시인과 화가와 광대들로 하여금 말이지     


난 인생의 위기가 좋아 인생이 나에게 날리는 펀치를 계속 맞는 거야 그러다 코너에 몰린 순간 결정적인 반격의 펀치를 날리는 거지     


네게 소중한 걸 지키자고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건, 오히려 네가 좋아하는 재즈를 망치고 실패하게 만들어. 네가 좋아하는 재즈를 지키길 바란다면 프리재즈를 사람들이 좋아하게끔 만들어.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 거지?     


낭만적이란 말을 왜 나쁜 말처럼 써?     


<영화 라라랜드 중에서>


그게 그런 거지 오늘 아침에 피어난 민들레 가족을 보러 갔는데 그 옆 그 건너편 누군지 몰라도 여름으로부터 상을 받아 마땅한 그 꽃은 저걸 흙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은 자리에서 흙을 증명하느라 한껏 피어 있었지.     


내 머릿속엔 한 편의 영화가 떠 오른 거야. 보고 있던 찰나에는 너무 유치하군. 닭살이야 했던 그 영화가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될지 몰라서 생각날 때마다 보게 되는 그 영화. 읽을수록 다른 것이 보이는 책처럼 그 색 그 멜로디가. 온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거야.     


내 머릿속은 난지도, 버려진 비디오 대여점, 불타버린 악기점, 폐점된 서점, 아직 무슨 나무인지 모르고 서 있는 작은 묘목, 묘비명도 없는 봉분, 유통기한이 이틀 지난 크림빵, 이제 입을 수 없는 겨울 체크무늬 외투, 무릎이 튀어나온 츄리닝 바지.

나는 나는 나는...    

 

가을은 절취선을 잘못 뜯어낸 계절 같아.

생선 가게에서 보았던 지느러미가 잘리고 껍질이 벗겨져 손바닥만 한 칼에 베어지던 흰 살 생선은 아직 녹지 않아 떨어지는 살점마다 사각거렸어요. 그리고 도마 위로 살점에서 떨어지는 그 눈부신 살얼음은 신문지에 둘둘 말아 엄마에게 건네졌어요.     


시장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생선 가게에 들러 산 생선은 늘 제가 들고 엄마를 따라 집으로 왔어요.     

가을 햇살을 보면 그 흰 살 생선의 사각거림과 노란 백열등 아래 살점 위로 내려앉은 살얼음을 떠올렸어요. 햇살마저 차가운 날엔 그 비닐봉지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걸었어요. 엄마가 보지 않을 때만 말이죠.


늘 엄마보다 뒤처져 걸었었고 엄마는 앞서 걸으라고 잔소릴 했죠. 너무 많이 누르면 살이 뭉개졌다고 엄마가 속상해할지도 모르니 세 번 정도만 손으로 가만히 눌러보았어요. 그 햇살만 녹아내리도록 살며시 말이에요.     

아침이 지나가는데 햇볕이 따스하지 않아요.      

커피를 마시고 나자 병아리 아니 그건 너무 귀여우니까

중닭처럼 졸 거예요. 병에 걸린 건 아니고 그냥 중닭처럼 물에 빠진 꿈 꾼 사람처럼 졸 거예요.     

잠에서 금방 깨어난 사람은 계속 물에 빠지는 꿈을 꾸다가 돌연사한 사람의 사망원인 퍼럼, 이유를 알 수 없는 피곤으로 휴일이 갈 거예요.     

매거진의 이전글 한 편의 글을 출항시키는 도선사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