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혼자있는 장소입니다.

by 적적

이 집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습니다. 내가 들어서면 비로서 무언가 기다리는 장소가 됩니다.


어두운 침대에 앉아 하늘을 바라다보고 있습니다. 이불을 개어 한쪽에 놓아둡니다. 침대에 다시 한번 누웠다가 스프링처럼 퉁겨져 일어납니다. 마지막 계단까지 확인하고 거실로 내려 섭니다.


15층 아파트 3층에 살고 있는 친구는 퇴근하고 나면 15층에서 내려 비상구 계단을 올라가 큰소리를 내는 쇠문을 열고 옥상에 올라가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본 뒤 다시 얼굴에 환한 미소를 장착하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내려 벨을 누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문을 열며 아이 이름을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딸아이 세 명이 쪼로로 달려 나와 목에 팔에 다리에 안겨 오고 가방을 받아주는 아내와 눈을 맞추고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나오면 큰아이는 보리차 한잔을 둘째는 수건을 막내 애는 뽀뽀를 해준다고 하였습니다.


여자 네 명이 기다리고 있는 작은 성에서 왕 노릇을 하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빠가 부탁한 일을 서로 하겠다며 싸우는 자매를 보면 행복하다고 했었습니다.

간혹 아이들이 싸우거나 언니에게 밀려 서운한 마음이 생길까 봐 무엇이든 세가지 일을 부탁해서 한 사람이 하나씩 수행해야 성 안이 평온하다고 하였습니다. 매번 세 가지 미션을 선택해야 하는 일이 번거롭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래전 친구의 말은 동화처럼 아름다웠고 사랑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이제 그 아이들이 다 자라 큰아이는 독립을 하고 둘째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막내만이 시중을 들며 웃어준다고 했습니다.


친구의 아내는 이십년동안 어린 시녀들에게 정신이 팔려 이제야 여왕에게 관심을 둔다며 입을 삐죽거린다고 하였습니다.

아직도 막내는 입을 맞추지 않으면 등교를 거부하고, 가끔 문을 닫은 언니가 나올 기색이 없는 주말이면 사고 싶은 물건들을 계속 소리내어 주문처럼 말하며 마지막엔 아빠이름에 여~보라며 애교를 부린다고 했습니다.

혼자인 나는, 딸이 없는 나는. 부러움으로 장화신은 고양이의 애처러운 눈빛으로 친구를 바라보게 됩니다.


마지막 계단을 확인하는 일은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이곳에서 발을 헛디뎌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내팽개쳐진 적이 있었습니다. 아픈데 너무 아픈데 발을 헛디디며 아직 물에 데쳐지지 않은 물오징어 한 마리처럼 바닥에 팽개쳐진 나를 아주 객관적으로 머릿속에서 상상 하면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숨이 넘어가도록 웃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나서야 부딪혔던 무릎과 손바닥 그리고 엉덩이나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넘어지고 나면 반드시 드는 생각.

괜찮아...


혼자라서, 아무도 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휴일의 아침은 단조롭습니다. 단조로움이 아름답습니다.

이전 03화혹시...멍든곳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