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아시겠지만, 복층으로 된 집은 아래쪽은 대부분 소파와 책상 그리고 싱크대 냉장고 그리고 벽에 붙어 있는 장롱이 있습니다. 다른 집은 어떻게 집안을 배치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배치가 최선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책상 왼쪽으로 고양이 모란의 밥그릇과 물그릇이 있습니다. 오른쪽엔 작은 서랍장이 있습니다. 고양이 모란이 서랍장 문을 열 때마다 그 안이 궁금해서 열린 문안을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이 층으로 올라가면 최소한의 프레임에 매트리스만을 깔고 머리맡으론 터치식 버튼으로 불이 들어오는 침대 머리가 있는데 손으로 살짝 누르면 눈이 부실 만큼 환한 불이 켜집니다.
처음 침대 머리를 고를 때는 침대 머리맡에서 환히 불을 밝히며 책을 읽을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불을 끄고 잠이 드는 것이었죠. 그 계획을 무산시킨 건 모란이었습니다. 침대 머리맡을 돌아다니며 버튼을 누르면 불이 켜지는 것을 알게 된 모란은 눈부신 불이 켜지면 일어나는 사람을 보며 잠들기만 하면 불을 켰습니다. 결국 전원을 뽑아버렸습니다.
이제 침대에선 잠을 자는 일에 충실해지기로 하였습니다.
모든 물건에는 이력이 있다고 생각해. 작은 빵집에 진열된 바게트에서 그 빵을 묶었던 금빛이나 은빛 빵 끈이나 고양이 모란이 토해놓은 헤어볼의 시간까지도 말야.
한 줄도 쓰지 못할 것 같은 날이 있지. 그런 예감이 드는 날이 있어. 더 정확히 말하면 한 줄을 쓰고 그 줄을 지우고 다시 쓰고 한 번 더 지우는 시간이 오늘 아침을 침범해 내 몸을 온전히 잠식해서 초조하고 불안해지기도 하지.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여느 때처럼 산책하러 나갔다가 이 풍경을 발견했어.
사진을 찍고 신발이 온 힘을 다해 소리치는 소리를 받아 적기로 했어.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사진을 바라다보며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지, 그것은 마치 멀리서 싸움 구경을 하듯이 내게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멀지 않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끊임없이 신경이 쓰이는 일처럼 서로의 고함과 욕지거리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둔탁한 소리 같았어.
버려진 신발이었지. 뒷굽이 높고 저 정도면 신었을 때 허리가 당겨지고 자세가 꼿꼿해져서 키가 한 2~5cm는 커질 것 같은데 걸을 때도 상당히 신경이 쓰였을 테고 말이지. 음…. 구두 색으로 봤을 땐 젊은 사람 것이 아닐 것 같아.
40대 이상의 여자가 골랐을 것 같은 디자인과-이건 물론 편견에 불과하지만-어떤 특별한 날에 신었을 것 같은 느낌이잖아. 선물을 받았을 것 같은 신발을 신었던 여자는 신발을 선물을 받고 무척 기뻤을 거야 그런 신발을 선물 받아본 적이 없었을 거야. 그리고 선물한 사람을 위해서만 신발을 신었을지도 모르지, 저 신발을 신으려면 스키니 한 청바지를 입거나 프릴 원피스를 입었을지도 모르지…. 물론 속옷도 한참을 골랐을 테고 마지막으로 화장은 속눈썹을 올리느라 몇 개의 성냥개피를 태웠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너무 오래 신어서 그러니까 낡아서 버린 건 아닐 것 같아 한쪽은 구두 앞코가 심하게 벌어져 있잖아. 다른 쪽은 그보다 덜 벌어져 버려진 걸 보면 분노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거친 악력으로 신발 한쪽을 훼손하고 나머지 한쪽은 화가 조금 사그라든 뒤 훼손되었을 거야.
가지런히 버린 걸 보면 차에 타고 있었겠지, 운전석 방향이 아닌 걸 보면 보조석에 앉아있었겠지. 그녀는 신발을 버리기 전 이미 다른 신발을 신고 있었을 거야. 신발을 선물한 사람과는 같이 있지 않았겠지.
차 안에서 신발을 훼손시키지 않았을 것 같아 우발적으로 훼손된 신발을 가지고 다니다 이곳에 유기한 것이겠지.
그녀는…. 추억을 분노로, 시간을 후회로, 복수를 훼손으로, 기억을 유기로, 범행 현장을 떠났을 거야. 어쩌면 이곳을 다시 지날 때 한 번쯤 저곳을 힐끗 쳐다볼지도 모르지
아주 오랜 뒤에 말야.
그리고 어느 날 그곳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다보는 여자를 내가 본다면 오늘 보았던 구두가 분명히 떠오를 것 같아.
우리가 목격자였으니까.